- 쫄쫄이 성장기 (1)
첫 아이 가졌을 때, 유산기가 있어서 고생을 했다. 당시 대흥동에 있던 현대 산부인과가 난임으로 유명하다 하여 그 곳을 다녔는데, 의사가 초반 몇 주는 누워서 지내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였다. 그래서 두달 정도를 휴직을 하고 그저 누워서 지냈다. 누워서 밥 얻어먹고, 누워 있는 내 머리를 남편이 감겨 주기도 했다.
입덧이 심했다. 어디 해장국이 먹고 싶다 하면, 퇴근한 남편은 군말없이 냄비를 들고 나가 음식을 사오고는 했다. 그러나, 막상 사온 음식 냄새 만으로도 비위가 상해서 고개를 돌리고는 했다. 어느 날 저녁 퇴근한 남편이 저녁 꺼리가 마땅잖아서 라면을 끓였다. 내가 그 냄새를 힘들어 하니, 작은 방 문을 꼭 닫고 혼자서 살금 살금 저녁을 먹었다. 입덧으로 쫄쫄 굶고 있는 마누라를 옆에 두고, 혼자서 밥을 챙겨 먹는 남편이 그 때는 야속했다. 그 먹성 좋던 사람이 참 힘들었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참으로 미안하다.
임신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잠깐 대구 친정집에 가 있었을 때이다. 기차역에서 파는 가끼 우동이 그렇게 먹고 싶었다. "가끼 우동, 가끼 우동" 타령을 불렀다. 잔정이라고는 모르시던 친정 아버지가 가끼 우동 파는 곳을 수소문해서 나를 데리고 가 우동을 사 주셨다. 앞산 밑 어느 동네였는데, 그 맛이 어땠는지는 기억이 없다. 아마도 우리 친정에서 입덧한다고 아버지한테 무얼 얻어 먹은 사람은 내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요즘도 어쩌다 우동집에 가서 “OO 우동 하나 주세요” 할 때, 문득 아버지의 그 때 그 우동이 생각나곤 한다. 마음 한 쪽이 아릿해 진다.
9월에는 포도를 엄청나게 먹었었다. 아마도 내 인생에서 포도를 가장 많이 먹은 해였을 것이다. 나중에 쫄쫄이 태어났을 때, 애기 머리가 어찌나 동글동글한 지 포도를 많이 먹어 저리 동그란가 하고 혼자 생각하곤 했었다.
서너살 무렵 부터 쫄쫄이라는 웃기는 별명으로 불리우게 될 아들은 1월의 추운 겨울에, 2.6키로가 조금 안 되는 작은 아기로 태어났다. 조금만 더 작았으면 인큐베이터로 들어 갈 뻔했는데, 애기가 아주 똘똘하여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의사가 말했다.
쫄쫄이 태어난 날, 남편은 온 세상을 얻은 듯 기뻤다고 한다. 시골 부모님께 첫 아들의 탄생을 알려야 한다고 한 달음에 달려 나가 더라며, 친정 엄마가 몇 번이나 말해 주셨다. 그 말을 전하는 친정 엄마의 눈에서도 기쁨과 대견함이 넘쳤었다. 출산 구완을 위해 병원에 오신 친정 엄마는 갓난 아기를 들여다보며, 애기가 어쩜 이렇게 이쁘냐고 감탄을 하셨다. 친정 엄마는 눈도 못 뜬 갓난쟁이를 들여다 보며 “아이구 착한 애기, 아이구 이뿐 우리 새끼” 틈만 나면 노래를 하셨다. 착하다 착하다 하면 착한 사람으로 큰다고! 그 때만 해도 건강하셨던 중년의 내 친정 엄마, 마음 시리게 그립다.
아기 쫄쫄이는 은근히 예민하여, 한 밤중에 깨어나 자지러지게 울곤 했다. 마치 바늘에 찔린 듯이 쫄쫄이가 울면, 초보 엄마 아빠는 무엇이 잘못 되었나 근심에 잠겨 잠을 설쳤다. 어떨 때는 우는 애기를 안고 나도 따라 울었다. 공부하듯이 ‘스포크 박사의 육아 백과 사전’을 끼고 살았는데, 마침내 ‘영아 산통’이라는 것을 발견하였다. 분유 소화를 잘 못 시켜서 가스가 배에 차서 더부룩 해지며 통증을 느끼게 된다는 영아 산통. 예민한 첫 아기에 잘 나타난다고 하여, 첫 아기인 우리 쫄쫄이를 밤에 재울 때 오랫동안 배를 쓰다듬어 주곤 했다. 삼 개월쯤 지나니, 바뀌었던 밤낮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며, 아기 쫄쫄이도 마침내 잠을 잘 자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