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냥이나 사람이나 영역동물이라 힘이 든다 -
서울 사는 h군이 여차 저차 한 사정으로 우리 집에 내려온 지 두 주일이 되어 가고 있다.
인간계의 언어로 h군을 소개해 보자면, h군은 k양의 조카뻘인 셈인데, 생일이 지난해 9월 모일이어서-상세한 날짜를 나는 아지 못한다- 12월 5일에 태어난 k양에 비해 약 3개월 정도 빠르다. 덩치는 어떠한가? 고양이계의 쪼꼬맹이를 자처하는 k양에 비해 무려 두배 반 이상은 차이가 날 것이다.
얼핏 보면 새끼 사자 같은, 있어 보이는 풍모의 h군이 우리 집에 들이닥친 날, 우리의 가여운 k양은 길지 않은 묘생 최대의 위기와 맞닥뜨렸다. 사실, 예고 없이 들이닥친 것은 아니었다. 우리 가족은 h군의 한 달 정도 장기체류가 결정되자, 이것저것 의논하고, 요것조것 준비해 왔는데, 이 화급한 소식을 k양에게 전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튼, k양 입장에서 보자면, 멀쩡히 잘 쓰고 있던 제 방에서 어느 날 느닷없이 쫓겨나, 자기 가재도구들(밥그릇, 물그릇, 화장실, 노리개 같은)이 거실과 언니 침실 쪽으로 나가 앉은 셈이다. 온 집안을 헤집고 다니며 맘 내키던 대로 널브러져 잠을 잤는데, 갑자기 밤에는 꼭 언니 방에서 자라는 엄명도 떨어졌다.
우리는 k양이 정말로 걱정이 되어, 최대한 충격을 줄여 주고자 나름 최선을 다했다. 일테면, 고양이계의 소식통에 따라, k양의 화장실이나 밥그릇은 이쪽에서 저쪽으로 갑자기 옮겨서는 안 된다기에, 이삼일에 한 번씩 30cm 정도 감질나게 옮겨졌다. 그에 더해, 시시때때로 k양을 끌어안고, 조곤 조곤 일러 주었다.
"우리 꽁애기...
이제 몇 밤 자고 나면...
서울에서 덩치가 이잇다만한 h 군이 내려올겨~~
울 꽁이에게는 ... 말하자면 조카인셈이여~~
그러니....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야혀~~
그나저나.... 울 꽁이,
h군이 한번 툭 치면.. 저 부산까지 날라갈텐데..
울 꽁이 불쌍해서 워쩐댜~~
h군이 딱 한 달만 있다가 다시 간다 항께로...
우리 꽁애기가 좀 양보해..
알았지? 알았다고? 아구 착해라 ~~"
마침내 운명의 날은 닥치고, h군이 제 살림살이를 이고 지고 불쑥 나타났다.
뭔 일이 생길까 봐, h군은 두 번째 방에 갇히고, k양은 언니 침실에 갇혀 장장 이틀을 지낸 후, 언니 품에 폭 안긴 채로 k양이 드뎌 h군과 상견례를 하였다. 철들고 처음 만나 본 털 많은 동물 앞에 k양은 경악을 하는 것 같더만... 하악 하악... 정말 처음 들어보는 이상한 소리를 내며, h군을 노려 보았다.
그렇게 k양은 하루 수십 분씩 h군과의 내키지 않는 대면식을 감내해내야 했다. h군이 대체로 무심한 듯 태평스러운데 비해, k양은 이 상황이 너무 싫은지 거의 식음을 전폐하고, 화장실도 가는 둥 마는 둥 하며 온 몸과 마음으로 거부를 하는 것 같았다.
어린 k양이 다칠까 봐, 노심초사하다가 어쩔 수 없이 거실 현관 쪽에 요가매트로 바리케이드를 쳐주었다. 우리의 k양은 바리케이드 이쪽, 언니 방에 틀어박혀, 놀란 토끼마냥 침대 아래 숨어들어 웅크리고 있거나, 우울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침대에 널브러져 있곤 했다.
k양의 상심이 심상치 않아, 아침저녁으로 h군을 두 번째 방에 가두어두고, 요가매트 바리케이드를 치워주었다. k양은 한 때 자신의 영토였던 이곳저곳을, 냄새를 맡으며 조심스럽게 돌아다녔다. 자신의 방이려니 했을 두 번째 방, 닫힌 방문 앞에서 한참을 서성거렸는데, 그 아련한 눈빛이라니. 보는 내가 마음이 아팠다. 퇴근 후 저녁을 먹고 나면, k양을 품에 단단히 끌어안고, h군을 가까이 불러 모아, 간식을 주며, 달래기를 며칠!
어느 날 퇴근해서 들어가니, 바리케이드가 치워져 집안이 훤했다. 대신에 난데없는 식탁의자가 거실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게 아닌가. 드디어! 마침내! k양과 h군이 우다닷 쫓고 쫓기며 함께 논다는 것인데, 어찌나 정신없이 몰려다니는지, 층간 소음이 걱정되어, 의자로 장애물을 설치했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니, 대체로 k양이 아슬아슬하게 쫓겨 다니는 것 같은데, 어느 순간 홱 돌아서서 거꾸로 h군을 우다다 추격을 한다. 하여튼 노는 것인지, 싸우는 것인지 긴가민가 싶은 모습도 곧잘 보인다. 한 번은 쫓고 쫓기다가 h군이 펄쩍 뛰며, 쪼꼬맹이를 확 덮치는데, 어찌나 놀랐던지! 깜짝 놀라 쫓아가 h군을 한 대 꽁 쥐어박으며 한마디 했다.
"너어..! 꽁이 털 한 오라기라도 다치게만 해봐..
당장에 아빠한테 보내버릴겨~~"
그리고, 너 할매가 때렸다고
아빠한테 일러주기만 해 봐라 응..."
어제저녁에 보니, h군과 k양이 어두운 창 밖을 내다보며 나란히 서 있었다. 그 뒷모습이 어찌나 웃기는지...
“ 얘... 너네들 뭐해? 흐흐흐”
h군의 등장으로 야단법석을 떨다 보니, 어느새 우리 꽁이가 쑥 커버린 듯하다. 애기 꽁이는 오데 가고, 언니 꽁이가 되었다. 엄마나 언니 품보다는 h군과 우다닷 쫓아다니며 노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 어쩐지 뿌듯하고도 섭섭한 마음이 왔다리 갔다리 한다. 이 마음이 낯설지 않아, 슬며시 웃음이 난다. 아주 오래전, 엄마품만 찾아쌓던 아이들이 어느 날 친구가 더 좋다고 쌩 가버리더라니!
‘에효~~~ 그나저나
사람 손자를 키워도 뭐할 판에...
털 복송이 딸에, 털 북숭이 손자라니...
아... 내가 시방 뭐하는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