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어달 전 h군이 우리집에 왔을 때 하악질을 해대며 불편해 하던 애기 꽁이는 h군과 함께 살며 몸도 마음도 훌쩍 컸다. 한 줌 거리도 안되어 보이던 아깽이였든 꽁이가, 어느새 하루에 몇 번씩 h군과 레슬링을 붙거나, 둘이가 우다닷 정신없이 쫒고 쫒으며 논다. 낮잠에 취했다 깨어나, 한 녀석이 안 보이면 서로 찾아다니는 것도 같다. 어떤 날은 캣 타워에 나란히 올라가 서로 몸을 기댄 채 다정하게 낮잠을 즐기기도 한다.
밥을 주면, 제 그릇의 밥은 대체로 본체만체하고, 남의 밥그릇을 탐하는 모습이라니. 냥이 들도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일까? 사정상 사료를 달리 먹여야 하다보니 밥 먹일 때마다 이런저런 꼼수를 써 보다가 결국 실소를 머금게 된다. 밥그릇을 서로 바꿔본다든지, 밥 먹는 식당(으로 쓰고, 거실 이 구석탱이 저 구석탱이로 읽고)을 서로 바꿔준다든지, 아무튼 여러모로 신경을 쓰이게 한다.
그런데,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을 것을 앞두고 서로의 밥을 탐할 때의 자세를 보면 그 그릇을 알 수 있다. h군은 꽁이가 제 밥을 탐하면, 그냥 말없이 물러나 앉아 꽁이가 먼저 먹도록 배려를 해 준다. 나는 그 모습을 볼 때마다 놀라 감탄하며 ”아... 우리 h군은 보통 냥이가 아녀. 양반이야, 양반!“ 식구들에게 호들갑을 떨고는 한다.
그에 비해, 꽁이는 그냥 그 쪼그마한 고개를 남의 밥 그릇에 들이밀고 제 배 채우기에 바쁘다. 일종의 단골 맛집이라도 발견한 것 같다. 그러나 h군의 고단백 사료는 꽁이에게 알러지를 유발해, 먹고 나면 눈물이 흥건하다. 그렇게 눈물 젖은 사료를 허겁지겁 먹고 있는 꽁이를 보는 심정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눈치를 보아하니, 이방 저방 오고 가는 길에 h군 식당에 들러 살짝 살짝 훔쳐 먹기도 하는 듯 하다. 나는 유난히 덩치가 작은 꽁이 편을 들어주기로 하고, 딸아이에게 일러바치지 않는다. 십중팔구, 우리 딸도 꽁이가 h군 식당에 들렀다가 입맛 다시며 나오는 모습을 보고도 못 본체 하고 있는 듯 하다.
”그래. 그래.
울 꽁이 덩치가 조래 조래 작으니.. 어떡하겠어.
뭐라도 많이 먹어~ 얼릉 커야지! “
가끔씩은 딸아이 눈을 피해, h군 사료통에서 사료 한 조막 훔쳐다가 꽁이 밥그릇에 몰래 섞어 주며 당부한다.
”꽁아. 다 좋은데...
눈물 많이 흘리지 마. 언니가 엄마 혼내요 “
그런데, 요즘 꽁이는 h군에게 레슬링 한판을 청하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 같다. 아침밥 먹으면서 보고 있노라니, h군이 세상 편한 자세로 거실에 턱 누워 있다. 꽁이는 그런 h군 주위를 빙빙 돌며, 무엇이 못마땅한지 얼굴에 불만이 가득 해지는 눈치다. 눈에 힘을 팍 주고 가만히 노려 보다가, 살글살금 다가가 h군 가슴팍을 힘껏 파고들며 나름 공격을 한다. h군은 귀찮다는 듯이 대응을 안 하다가, 큼지막한 앞발로 슬쩍 밀어내는데, 꽁이는 그 짧은 뒷발로 앙 버티며, 파고든다. 그러나, 결과는 늘 택도 없다. 나름 요리조리 힘껏 덤벼들며 무는 시늉을 하다가, 어쩔 수 없이 뒤로 밀려나, 두 귀를 뒤로 바짝 세우고, 눈에 힘을 팍 주고, 꽁하며 노려보는 꼴이라니. 천하에 못된 냥이 표정을 지어 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h군은 상대도 잘 안 해 주는 듯하다.
”꽁아, 뭐가 그케 억울해? “
”엄마.. 제가요.
말을 안(못) 해서 그렇지...
내 방도 뺏기고,
엄마 침대도 뺏기고, 편케 낮잠도 못 자고..
요새 제가 사는 게 사는 게 아니라고요.
허~엉...”
h군이 내려온 후, 잃은 게 많은 꽁이, 억울할 만도 하다.
“그래도 꽁아...
너, h군 밥그릇에 막 덤벼들어 먹을라 치면..
h군이 어케 해?
암말도 안 하고 비켜 주잖아!
네가 오매 가매, 밥 훔쳐 먹어도
암말도 안 하고...
고맙지? 그래, 안 그래?”
“췟, 그깟 밥알 좀 먹었다고...
밥이 지금 문제냐고요?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자존심이 겁나 상한 꽁이를 붙잡고, h군이 얼매나 양반 냥이인지, 까잇거 자존심 따위 살짝 잊어버리면, 이인자의 삶이 얼매나 편한지, 삶의 지혜를 나누려는 내 시도는 솔직히 같잖기만 하다.
이게 밥 먹을 때 쓰윽 물러나 앉아 주는 것만으로 해결될 일이 아닌 게다. 아아, 901호의 두 냥이가 꼬리를 높이 쳐들고 명랑하게 하루를 열게 할 묘수는 무엇인가? 크고 복잡한 인간 세상이야 내 관할 밖이니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