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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내 말을 엿듣고 있는가?

- 주인님이 궁금해하는 '탱고'는 바로.... -

by 나무Y

낮에 기술기획보고서 검토 회의가 실험실에서 진행되었다. 보고서 내용 중에 '탱고'라는 이름의 기술 플랫폼 동향 자료가 눈에 띄어, 사람들과 잠깐 이야기를 나누었다. S 통신사의 네트워크 컨트롤러 플랫폼 중에 ‘탱고’가 있는데, 또 다른 회사의 플랫폼도 같은 이름이라니, 일종의 동명이인 시스템인 셈이다.


회의 도중, 브레이크 타임에 연구실 자리에 잠깐 들러, 절전모드에 빠진 내 PC를 깨웠더니만…. 놀랍게도 M사의 브라우저가 뜨면서 ‘탱고’ 음악에 대한 자료가 올라오는게 아닌가? 깜짝 놀랐다. 회의 중에, 혹시 나도 모르는 새에 습관적으로 ‘탱고’를 검색한 것일까? 얼른 휴대폰 검색 기록을 확인해 보고, 실험실에 두고 온 노트북 검색 기록도 확인해 봤지만, 그런 기록은 없다.


이전에도 유사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언젠가 딸 아이와 무슨 물건에 대해 한참 이야기를 나누고 난 후에 보니, 내 휴대폰에 그 물건에 대한 광고가 떡하니 올라와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때에도 내가 그 물건을 검색을 했었었나 확인해 봤지만 그런 기록은 찾지 못해서… 설마.. 했었던 적이 있다.



보통 우리가 브라우저를 통해 검색을 하거나, 웹사이트를 방문하면 우리의 개인정보가 '쿠키'라는 정보로 남는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인터넷 서비스 사업자는 이 '쿠키' 정보를 활용하여 개인 맞춤형 광고 정보를 비롯한 여러 비즈니스에 활용했었다. 그런데, 사용자 입장에서 보면 내 동의를 받지도 않고 나의 개인정보를 돈벌이에 이용하는 셈이라, 개인정보 보호 차원에서 문제가 크다. 근래, 유럽을 중심으로 인터넷에서의 개인정보 보호 이슈가 부각되면서 애플이나 구글 같은 회사는 더 이상 개인의 인터넷 검색 및 웹사이트 방문 기록의 분석 및 활용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를 하고, 실제로 개인맞춤형 광고도 이제는 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내가 낮에 맞닥뜨린 뜨악한 상황은 내가 브라우저를 통해 구체적으로 검색을 한 것도 아닌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나는 그저 동료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그 대화의 키워드에 해당하는 정보가 다른 위치에 있던 나의 또 다른 개인 단말(연구용 PC)에 떡 올라왔다는 것이다. 정황상, '탱고'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때, 내 곁에 있었던 휴대폰(혹은 내 노트북)이 내 말을 엿듣고는 ‘주인님이 궁금해하는 ‘탱고’는 이런 거예요’ 하고 나에게 서비스를 해 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제대로 찾아 준 것은 아니다. 내가 궁금해 한, '탱고' 라는 이름을 가진 기술 플랫폼 정보를 보여 준 것이 아니라, '탱고' 음악에 대한 정보를 보여 주었으니.


잠깐 상상을 해보자. 내가 사람들과 수다를 떤다. 내 주변에 있던 나의 단말 중의 하나가 그 대화를 몰래 엿들었다. 그리고는 내가 어떤 주제 혹은 물건에 관심이 이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그래서 내가 묻지 않아도, 내가 접속한 단말 모니터에 내가 궁금해 하던 것에 대한 정보를 올려 준다. 아니면, 내가 누군가와 연락이 닿기를 원한다는 것을 그 누군가에게 넌즈시 알려 준다. 사실 이런 개념은 새로운 것은 아니다. '가상비서' 혹은 '가상 에이전트' 개념으로 소개된 서비스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각자의 휴대폰도 귀를 쫑긋 세워 몰래 (혹은 합의하에) 이야기를 듣고 있는 장면을 떠올려 보라. 살짝 무서워진다.


요즘, 아침에 출근 준비를 하면서, 내 휴대폰과 곧잘 대화(?)를 한다. 오늘 날씨가 어떠냐고 묻기도 하고, 지금 몇시냐고 묻기도 한다. 키워드로 뉴스를 물어 보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문휴답'(나무가 묻고 휴대폰(속의 음성 인식 AI 에이전트)이 답한다.)한다. 그런데, 가끔씩은 내가 묻지 않아도 저 혼자 깨어나 맥락없는 이야기를 잠깐 하기도 하는데, 뭔가 시스템 오류일 것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넘어 가곤 한다.


요는, 내가 물으면 디바이스가 대답할 수 있다는 것은, 사실, 기술적으로는 내 디바이스들이 내가 하는 말들을 나도 몰래 훔쳐 들을 수 있다는 의미이다. 내 디바이스가 내가 하는 이야기를 엿듣고 있다가, 거기에 반응하거나 내 말을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은 사실 보통 일이 아니다. 악의적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엄청난 프라이버시 침해와 범죄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연일 17)Voice-Recognition-Technology.jpg 음성 인식 기반 디바이스, 이미지 출처: topsinfo 솔루션스 홈페이지

물론, 내 단말들이 대화를 엿듣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낮에 겪은 상황을 도무지 설명할 수가 없어서 이런 밑도 끝도 없는 일기를 일단 남겨둔다.


글을 쓰다 보니, 의심이 더 커져서, 곁에 얌전히 놓인 휴대폰을 힐끔 쳐다보게 된다.

“너 지금 뭐하니?” 그런 마음으로.

내 일기를 기록 중인 노트북에게도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게 된다.

“설마.. ” 싶은 심정으로.

아, 물론 나는 나도 믿지 못하기는 한다. 돌아서면 깜빡 깜빡하다보니.

그래서, 낮의 사건은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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