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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판적 사고를 대하는 자세

by 나무Y

어제 연구실에서 Segment Routing(SR) 기술의 튜토리얼 세미나를 진행했다. 세미나에 참석 중이던 A박사가 SR 기술이 대단히 새로운 무엇이 아니라, 기존 기술들을 조금 더 단순하게 한 것에 불과하므로, 그 기술의 가치에 대해 지나치게 과대평가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을 피력하였다. 나도 A 박사의 비판적 의견에 공감하였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존의 복잡하고 다양한 요구사항들을 이렇게 단순한 메커니즘을 통해 풀어냈다는 것은 그 자체로 대단하다는 생각을 또한 하였다.


A박사는 내 주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비판적인 사고체계를 가진 연구원 중의 한 사람이다. 이렇게 표현을 하고 보니, A박사가 상당히 부정적인 사람일 것 같다는 느낌이 와 닿는다. 그러나, 비판적 사고 체계, 영어로는 ‘Critical Thinking’ 이라고 표현될 수 있는 이 사고체계는 우리가 가급적 현명한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태도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비판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세상 사람들이 어떤 것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때 그 말이나 상황을 액면 그대로 단순하게 받아 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 말이나 상황이 내포하고 있는 여러 면들을 의심하며 깊이있게 생각해 봄으로써, 그 말이 갖는 진짜 의미와 반대급부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보는 태도가 아닐까 싶다.


따라서 이러한 비판적 사고는 세상의 헛된 말이나 이런 저런 쏠림 현상에 휘둘리지 않으며 현명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 꼭 필요한 바람직한 태도일 것이다. 예를 들자면, 정치권에서 이런 저런 포퓰리즘적인 공약을 남발할 때,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해 보지 않는다면, 장기적으로 나쁜 결과를 낳을 정책들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하는 오류를 범하게 될 것이다.


특히나 연구원이라는 나의 직업적 특성을 고려하면, 나는 비판적 사고를 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사람이라고 할 수 있다. 일을 잘 하기 위해서는 어떤 기술적 이슈를 바라보거나, 기술 대안들을 선택할 때, 비판적 사고를 통해 예견되는 문제에 대비하고, 더 나은 선택을 찾아낼 수 있도록 비판적 사고 능력을 계속 키우고, 트레이닝하는 것이 꼭 필요하다 하겠다.


그런데, 문제는 비판적 사고 체계가 자칫 부정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처럼 보이게 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팀 내부에 부정적 에너지를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비판적 사고라는 것 자체가 어떤 말이나 현상 뒤에 숨어 있는 문제들을 찾아내서 밖으로 드러내는 과정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현상일 것이다.

이를테면…

“그런데 말이야,

이 기술이 아주 좋아 보이지만…

알고 보면.. 이런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어.

또 저런 문제도 있어…” 라는 생각을 펼쳐 보이는 것이다.

아니면…

“뭐.. 얼핏 보면 대단해 보이지?

그렇지만 한번 더 들여다보면, 사실 별거 아니야. 그냥 눈속임에 가까워”

라며 눈 앞의 현상 뒤에 숨은 문제점들을 찾아내는 것 자체가 바로 비판적으로 생각하며 접근하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자. 어떤 팀이 가능성 높은 어떤 신기술에 환호작약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자꾸 이런 저런 문제가 있다거나, 별거 아니라고 평가절하하는 발언 목소리를 높인다면 어떨 것 같은가? 시간이 지날수록 부정적인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해져서 아예 피하게 되거나, 심지어 발목 잡는 것 처럼 받아 들여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판적 사고는 사실 권장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비판적 사고를 활성화시키되, 팀에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게 할 수 있을까?


우선, 우리는 개인으로서, 비판적 사고능력을 계속 키워야 한다. 이러한 비판적 사고 과정을 통해, 스스로 더 깊이 종합적으로 생각할 수 있게 되고, 더 나은 선택들을 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의 비판적 사고의 결과나 과정을 타인이나 구성원에게 force 하는 것은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 상대에게 force 하면, 그 때 부터 비판적 사고의 순기능은 희미해지고, 부정적 사고로 받아 들여질 가능성이 커져서 되려 역효과가 커질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한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관점이 있다. 우리가 비판적 사고를 해야 하는 것은 개개인의 삶 뿐만 아니라 우리가 속한 크고 작은 집단들이 더 나은 결정을 하기 위해서 이다. 그렇다면, 누군가의 비판적 사고의 결과는 집단 내에서 최대한 공유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말하자면, 비판적 사고를 통해 어떤 기술의 숨어 있는 문제를 먼저 인지를 했다고 하면, 그것을 혼자만 깨닫고 다른 사람들에게 알려주지 않아서(가르쳐 주지 않아서), 그룹 전체가 좋지 않은 결정을 하는 것을 두고 봐야 하느냐 라는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force 가 아니라 nudge 아닐까 한다. 일 테면…’이 기술에는 이런 저런 측면도 있으므로, 그런 관점에서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넌지시 쿡 찔러 주는 정도로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이런 nudge만 전달되어도, 어떤 사람은 비판적 사고 체계가 활성화되어 더 깊은 사고를 하고 더 나은 선택을 고심할 수 있다. 물론 어떤 사람은 그렇게 넌지시 찔러 주기만 해서는, 아예 못 알아듣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그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개개인이 어떤 생각을 하고, 그 결과로 어떤 어리석은 혹은 현명한 결정이나 선택을 하는 것은 결국 그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 각자는 비판적 사고 능력을 키우고, 비판적 사고를 생활화하여, 결과적으로 더 현명한 개인이 되기 위한 노력을 계속 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판적 사고에 능숙하고, 비판적 사고를 통해 더 나은 대안을 찾거나 문제에 대비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위에 많아질수록 우리가 속한 집단도 더 발전하고, 현명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잠깐 돌아보자. 주변에 늘 비판적 사고를 하는 연구원이 있어 회의 시간이 자주 피곤해 진다면, 생각을 바꾸어 보아야 한다. 그 연구원의 비판적 사고 체계가, 과제가 제대로 방향을 찾아가는데 아주 중요한 관점들을 던져 줄 것이라고 기대하고, 귀담아 들어 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만약에, 내가 바로 그 비판적 사고를 하고 있는 멤버라면, 비판적 사고의 과정이나 결과를 사람들에게 전달할 때는 nudge 정도에서 한번 가볍게 콕 찔러주는 수준이면 적당할 것이다. Force하지 않는 것이 좋다.


(사족으로… 만약, 만약에 말이다. 과제가 방향을 잘 찾아가는지는 별로 관심이 없고, 그저 문제만 자꾸 찾아보고 있다면, 당신은 그저 부정적인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 발목을 잡고 있으니 그 입을 다물어야 한다.)


아무튼 연구원으로서 우리는, 직업적으로 비판적 사고를 해야만 하는 숙명을 타고 난 사람들이다. 이것을 잊지 말고, 비판적 사고 능력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또한 팀 전체가 긍정적으로 성장해 갈 수 있도록 서로의 비판적 사고를 잘 주고 받을 수 있는 nudging 훈련을 계속 해야 한다.


* 이미지 출처: pixabo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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