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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의 MBTI는 무엇인가?

- 내 머리 속의 나, 내 휴대폰 속의 나 -

by 나무Y

내 친구가 ESFJ라서 그런가봐...


이십 대인 딸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MBTI 이야기가 자주 나온다.


”그런데.. 엄마, 있잖아..

내 친구 oo이가 몇일 전 회사에서 어저꾸 저저꾸했는데...

그게 속상해서 몇일째 자다가 이불킥하고 있다네...

그런데, 걔가 ESFJ이거든! 그래서 그런지 걔는 정말 혼자서 다 끌어안고

어저꾸 저저꾸 하더라고...“


딸은 친구 소식을 전해 주거나, 유명인들의 이런저런 이야기에 양념처럼 MBTI 유형을 이야기하곤 한다. 어떨 때는 엄마로서 딸의 생활에 대해 무어라 한 마디 훈계라도 할라치면

”엄마, 내가 oooo 이잖아. oooo들은 원래 그래!“ 라고 싹둑 자르기도 한다.

얼마 전에는 저녁을 먹다가 딸의 성화로 온 가족의 MBTI 유형을 따져 보기도 했다. 예전에 직장에서 나름 전문가를 불러 유형 분석을 해 본 터라 나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다만, 이런 거에 도통 관심이 없는 남편이 난데없이 난타를 당하다가 심지어 비난까지 받기도 했다.

”거봐... 거봐... oooo 유형...

이거 딱 아빠네. 아빠.

아빠가 N이 아니라 S 유형이라서...

P가 아니라 J라서...

맨날 따지고, 들여다보며 옴마를 피곤하게 하는거라고...“

허허... 백번 맞는 말인 듯. 애꿎은 남편은 밥 먹다 말고 억울한 표정으로 한숨만 쉬더라는.


소싯적에는 나도... 그러나, 사람이란게 복잡하기가..


나도 한때는 MBTI나 애니어그램 같은 성격 유형 분석에 꽤 관심을 가진 적이 있다. 대체로 재미 삼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유료 검사 같은 것을 해 보기도 하고, 소통이나 협력 능력 강화 같은 업무교육을 통해서 여러 번 접하기도 했다. 어설픈 짬밥이 좀 쌓였다고 할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무심코 상대방이 무슨 유형이겠구나 하는 생각을 가끔 하게도 된다. 때로는 어떤 현안이나 관점에 대해 토론을 하다가 영 이야기가 안 모아지면 ”에고... 당신 oooo 유형이지요~“ 하는 말을 장난삼아 나누는 경우도 종종 있다.


아무튼, 개인적으로 나는 MBTI 유형 분석이 나 자신과 사람들을 이해하는데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얼마나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사는지, 의사 결정을 할 때 무엇을 중요하게 보는지, 이성적인지 혹은 감성적인지, 그저 현상을 받아들이는지 아니면 틀을 가지고 판단을 하며 세상을 보는지 라는 어떤 분류의 체계화를 시도하고 있고, 이러한 분류의 틀이라는 것이 나름 사람이 어떻게 행동하는가에 대한 중요한 특성을 잘 잡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러나, 복잡하기 그지없는 인간을 어떤 유형이라고 단순화한다는 것이 사실 사람에 대한 큰 편견일 수도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을 더 많이 한다. 무엇보다, 문제는 복잡한 인간이 복잡한 세상을 살아가며 드러내는 성격이나 행동이 대체로는 모호하다는 것 아닌가 싶다. 그래서 성격 유형 검사를 위해 받아든 질문지에서, 매우 그렇다 라든가 혹은 대체로 그렇다, 전혀 그렇지 않다 등등에 대해 자신있게 똑 부러지게 체크하기가 애매하다는 것이고, 대충 그런가???!!! 라거나 긴가 민가 하며 두루 뭉수리하게 넘어가게 되는 것 같다. 또는 사회적으로 보다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쪽으로 본인도 모르게 슬쩍 편승하게도 된다.

출처: https://www.visualdive.com/

요는 개성이 아주 분명하지 않은 보통의 사람은 자기 자신을 자기도 잘 모른다는 것이다. 뭐.. 스스로 생각하기에 이런 것도 같고 저런 것도 같고, 그러다보니, 대체로 어떤 성격적 경향을 갖는것 같다는 참고사항 정도의 결과 아닐까 싶다. 그러니 누군가 MBTI 유형 이야기를 꺼내면 어떨 때는 맞장구를 치고, 또 어떨 때는 괜히 편견 만들지마라고 한마디 하게도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발견한 MBTI 유형별 절대 못하는 것이라는 저 그림에서, 우리 가족 각자의 MBTI 유형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기도 해서, 놀랍다.


우리는 스스로를 얼마나 잘 아는가?
내 머리 속의 나, 휴대폰 속의 나...


우리는 사실 스스로를 잘 모른다. 스스로에 대해 나는 대체로 이런 사람이야 라고 생각으로 만들어낸 상(像)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그러니, 나는 이래요, 혹은 저래요 하며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이 그냥 이런 사람이고 싶어요에 가까울 수도 있는 것 같다.

마음속의 자신의 모습을 잠깐 밀쳐 두고, 함께 상상해 보자. MBTI 유형 검사를 (내가 받는 게 아니라) 그냥 내 휴대폰이 받게 하는 것이다. 나에 대해 어마어마한 빅데이터를 가진 휴대폰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을 것이다. 예를 들어 내 휴대폰의 연락처 정보, 지난 몇개월 동안 내가 휴대폰을 통해 한 모든 대화와 통화, 인터넷 접속 활동, 물건 하나를 사기 위해 얼마나 많은 검색을 했는지, 내가 많이 쓴 단어가 무엇인지... 어떤 사진과 동영상에 관심이 있는지...를 AI가 들여다 보며 데이터 분석을 하게 하는 것이다. 만약 ’내 휴대폰의 MBTI 유형 검사‘ 라는 앱을 만든다면 아마도 가장 정확하게 유형을 알려 줄 것이다.(어쩌면 이런 앱이 이미 있을지도!)

물론, 이것은 아주 두려운 이야기이다. AI가 우리 휴대폰의 빅 데이터 분석을 해 보면, 우리의 MBTI 유형 뿐이랴.. 우리들이 얼마나 외롭고 불안한지, 변덕스럽고 불합리하며... 위선적이고 질투심이 많은지, 경우에 따라 사회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는 위험 인물인지를 낱낱이 알려 주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니 우리의 삶이 쌓은 데이타를 통해 스스로의 민낯을 포장없이 보게 되는 것을 인간은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러니, 내 휴대폰의 MBTI 유형이 무엇인지 분석해 달라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상상 속에서 생각해 보는 이야기이다. 그럼에도, MBTI 유형이 무엇인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질문지를 받아 들었다면, 있는 그대로의 솔직한 모습을 직면하기 위해, 휴대폰에 쌓인 스스로의 삶의 흔적을 잠깐 생각해 보는 것은 아마 도움이 될 것이다.


”당신 휴대폰의 MBTI 유형은 무엇인가요?“

그러면, 우리는 멈칫하며, 우리 머리 속의 (멋진 혹은 못난) 내가 아니라, 직접 살아낸 지난 날들의 삶의 흔적들이 알려주는 실존적 존재의 MBTI 유형을 생각해 보게 될 것이다.


아하… 재미삼아 나눌 이야기에 또 정색을 하고 있는 나의 MBTI는… ???!!!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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