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숨

우연히 태어나 속절없이 무너지고 사라져 가는 것

by 나무Y

며칠 전, '올해의 가장 잔인한 사진'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우연히 보았다. 아프리카 어느 평원일까? 표범이 어미 원숭이를 물고 있다. 그런데, 이미 죽어버려 축 늘어진 어미 품에, 아주 작은 아기 원숭이가 꼭 매달려 있다. 어쩌면 내 평생의 가장 잔인한 사진 중의 하나 아닌가 싶다.


야생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인간의 언어로 무어라 하는 것이 부질없지만, 지난 몇일 느닷없이 그 사진을 떠 올리며, 그 어미와 어린 새끼의 심정을 헤아리게 된다. 사실 야생의 세계만 잔인한 것은 아니다. 죽은 어미의 몸에 매달려 있다가 새끼 표범들의 노리개로 던져지고, 마침내 지극히 짧은 생을 마친 애기 원숭이처럼, 사람 사는 세상에서도 생명은 어이없고도 속절없이 피고 또 진다. 느닷없이 태어나고, 병에 걸리고, 사고가 나고, 죽도록 미워서, 화가 나서, 또는 이유도 없이 죽고 죽이기도 한다. 그러니, 목숨이 태어나고 또 죽어 간다는 것, 아주 대단한 일 같지만, 사실은 그저 우연히 태어나고, 우연한 일로 속절없이 무너지고 사라지는 것 아닐런지 싶은 요즘이다.


그러나…, 오늘 살아있고, 내일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로서의 무거움을 짊어지고 있는 우리는 우리의 목숨에 나름의 명분이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런데, 우연히 태어나고, 뜻하지 않은 상황에 놓여 기뻐하고 고통스러워하다가, 속절없이, 때로는 어이없이 사라지는 목숨들을 직시하노라면 여기에 무슨 대단한 섭리가 있거나, 우주적 목적 의지가 있는 것 같지 않다. 그저 우연히 생겨나 존재하고, 갑작스럽게 스러지는 것이다.


어제 저녁 퇴근하여, 의자 천막 속 저 만의 카렌시아에 널부러져 비몽사몽하는 꽁이를 들여다보다가, 또 문득 표범과 원숭이를 떠올리며 목숨의 덧없음을 생각하였다. 꽁이 눈 속에서, 우연과 우연이 억겁의 세월을 넘나들며, 바람이 되고, 풀잎이 되고, 내가 되고, 사바나의 맹수가 되고, 또 길냥이가 되고, 애기 원숭이가 되며 우주를 떠도는 목숨을 본다.


이 지구 상에,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목숨의 입자들이 먼지처럼 떠 돌다가,

어느날 비가 되고 바람이 되어

어떤 풀잎에 스며 들고,

그 풀잎은 오래 전 내 조상의 몸이 되고,

그 조상의 몸은 불현듯 스러져 다시 흙이 되고,

바람에 날리고…

곡물을 키우고, 어느 동네의 소가 되고.

떠돌다 떠돌다 내 어미의 몸이 되고,

내가 태어 나고…

속절없이 다시 흙이 되고,

가로등 불 빛 아래 나무가 되고.

어느 세월에는 어느 동네의 길냥이의 몸이 되고...

다시 바람에 날리고,

바닷물에 실려 아프리카 사바나의 풀잎이 되고,

애기 원숭이가 되고, 어미 원숭이가 되었다가,

표범의 몸으로 들어가고...


그러니 표범과 어미 원숭이가 조우한 그 찰나의 순간에 일어난 그 끔찍한 일도 서로를 스치며 그저 목숨과 목숨이 서로 맞교환되는 우연한 작은 사건에 다름 아니다. 다만, 우연과 우연이 부딪히며, 내가 되고, 네가 되어 스칠 때, 애닯거나 아픈 마음들 또한 생겨나 순간이 영원인 냥 머물려하고 잡으려 하는 것일게다. 그러니 우연에 너무 휘둘리지 말고, 그저 자유롭게 살다 때 되면 미련없이 훌쩍 떠날 일이다.


그러나, 나이가 들며, 나는 외려 우연히 마주친 작은 인연에 오래 눈길을 주고, 애닯아 한다. 작디 작은 꽁이가 우연히 우리 집에 깃들어, 그 작은 꽁이의 먹고 자고 싸는 일을 돌보다 보니 나도 모르는 새에 작은 목숨, 길 위의 삶들에 눈길이 오래 머문다. 퇴근 길 연구실 빌딩을 나서다, 어둠이 내리는 찬 바람 부는 길로 멀어지는 길냥이를 만난 날, 꽁이와 딸아이를 앉혀 두고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왠지 모를 한기에 몸서리를 치게 된다. 또 어느 날에는 동네 산책 길에 빌딩의 환풍기 바람을 온 몸으로 맞고 선 나무에 새삼 눈길이 머물고, 그 나무의 고통을 생각하게 된다... 아.. 한 30센티만 옆으로 비켜 옮겨 주지... 쉴새없이 흔들리는 가지를 한참을 바라보게 되었다.


목숨, 한 없이 가볍지만, 스쳐가는 그 순간에 전 우주의 무게로 나를 스치는 것. 꽁이 등을 토닥 토닥이는데, 꽁이도 내 마음을 아는겐가. 어디 머언 아프리카 사바나의 사막을 헤매는 듯… 꿈꾸는 표정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지난 여름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