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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Y Jul 25. 2022

잘 있어라는 인사도 없이

    1989년 여름, 난생처음으로 해외 출장을 가게 되었다. 어느 자리에선가 엄마는 딸이 시카고라는 미국 대도시로 출장을 가게 되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를 꺼냈다 한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전해 들은 누군가가 시카고라는 도시는 해만 지면 총든 깡패들이 설쳐서 사람들이 죽어 나가는 아주 위험한 도시라고 아는 척을 했단다. 놀란 엄마는 노심초사하다가, 출국을 몇일 앞둔 어느날, 몇시간이나 걸리는 시외버스를 타고 우리집에를 오셨다.


    엄마는 내가 출장길에 입고 다닐 예정이었던 까만 슈트의 자켓  쪽에  주머니 하나를 감쪽같이 달아 맸다.  주머니에 비상금을 꼬깃 꼬깃 접어 넣고 꽁꽁 꼬매 주시며,  일이 있으면,  숨겨둔 비상금만 빼고 가진   줘버리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나는  비상금  주머니가 달린 자켓을 입고, 시카고 학회를 무사히 다녀왔다.   넣어 주셨던 비상금이 얼마였던가... 이제기억나지 않는다.


    지난 7월 11일 토요일 오후에 엄마가 저 세상으로 머언 여행을 떠나셨다.  기약없는 먼 여행길을 떠나시며, 엄마는 얘들아 잘 있거라, 나중에 어디 어디서 만나자라는 이야기를 하지 않으셨다. 세째딸의 그깟 해외 출장길을 염려하여 비상금 주머니를 달아주며 무사히 다녀오라고 신신당부하던 엄마가, 잘 있어라는 인사도 없이, 연락도 안되는 저 세상으로 건너 가 버리신거다.


    기운없던 엄마가 안녕이라고 하지 않으셔서, 곧 집에 돌아갈 것이라고 하셔서... "고마운 엄마, 안녕... 우리 나중에 다시 만나요~" 라고 인사도 못한 나는 엄마가 달아주었던 그 기억 속 시카고 속주머니를 풀었다 묶었다 한다. 저 세상도 시카고 처럼 소문만 무성하지 알고 보면 살만한 동네일지...  나중에 어디서 엄마를 다시 만나야 할지 장소도 못 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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