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으로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한 방법들
안락사(혹은 존엄사)는 치료 및 생명 유지가 무의미하다고 판단되는 생물 혹은 사람에 대해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생물을 고통 없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이다. 인간으로서 누구나 피할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는 존엄한 방법으로서 안락사는 보통 적극적 안락사와 소극적 안락사, 의사 조력사 등으로 구분이 된다고 한다. 의사조력사는 소생 가능성이 없는 말기의 환자가 의사의 도움을 받아 고통을 줄이며 품위 있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이 책 '죽음의 격'은, 의사조력사의 실제 사례들을 소개하는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쓰기 위해 만났던 대다수는 존엄성 있게 죽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대부분 그 단어, '존엄성'을 언급했다. 대체 존엄성은 무슨 뜻일까? (... 중략)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는 가장 마지막 순간까지 자기 자신으로, 자기가 정의한 자신으로 사는 것이 중요했다. 인생의 며칠, 몇 주, 몇 년을 희생하더라도 말이다.
- 케이티 엥겔하트, <<#죽음의격>> 485쪽 -
영국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 저자 케이티 엥겔하트는 2015년 영국 의회에서 의사조력사(Physician Assisted Death, PAD)에 대한 합법화를 논의하자 이에 대한 다수의 기사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이 책을 쓰게 되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심신의 병과 나이 듦, 기억을 잃어가는 고통을 겪으며 죽어가는 환자들이, 그들이 속한 사회의 의료 시스템이나 안락사에 대한 법 제도 속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과 어려움을 겪는지를 이야기로 전달해 준다. 이를 위해 인간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이끄는 대표적 사례로 6명의 환자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말기암 환자(현대의학), 노쇠하여 일상을 혼자서 꾸려가기 힘든 노인(나이), 진행성 불치병에 걸린 젊은 여성(신체), 치매에 걸린 60대 여성(기억), 심각한 정신적 문제를 겪는 젊은 청년(정신)이 그들이다. 환자와 가족, 지인들, 안락사를 지원하는 의사 혹은 조력자들을 만나 심층 인터뷰를 하고, 그들의 일상과 그들이 속한 사회를 촘촘히 쫒으며, 삶과 죽음의 과정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소개한다.
존엄한 죽음을 원하는 개인들이 의사조력사가 합법화된 사회(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및 스위스, 미국 오리건주, 캐나다 등)와 그렇지 못한 사회에서, 죽음에 대해 각기 어떤 생각과 철학을 가지고 어떤 선택을 할 수 있는지, 존엄한 죽음을 선택하는 권리에 대해 실제적으로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기록이다.
최대한의 생명 연장을 목표로 하는 현대 의료 시스템 안에서 병들고 나이 든 인간은 고통스럽게 지연되는 죽음의 과정을 겪게 된다. 비록 연명치료 거부나 호스피스 의료 등 의료서비스가 개선되고 있다고는 하나, 그 영향은 제한적이어서, 여전히 고통스러운 죽음의 과정을 겪게 된다. 그래서 저자는 그녀가 만난 환자들의 사례를 통해 품위 있게 죽을 수 있는 권리로서 의사조력사를 함께 논의하고, 법 제도를 생각해 봐야 한다는 논의의 단초로서 자료들을 내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의사조력사에 대해 최대한 가치중립적으로 접근하고자 하며, 저자 본인의 생각이나 판단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
책은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로서 의사조력사를 다루고 있지만, 의사조력사 확대가 끼칠 사회적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을 함으로써 관점의 균형을 유지하고 있다. 인간의 권리로서 품위 있는 죽음을 선택하는 것을 허용하게 되는 경우, 자칫 의사조력사가 죽음의 비용을 줄이기 위한 사회적 의무로서 은연중에 구성원에게 강요될 수도 있음을 우려한다. 탄탄한 의료복지 인프라를 기반으로 의사조력사의 법 제도화에 매우 진보적인 서유럽 국가들과 달리 미국과 같이 의료 복지가 취약한 사회에서는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인간 권리의 확대 관점에서 의사조력사를 위한 법과 제도 들이 유연해지는 경향에 기대어 죽음을 상술로서 비즈니스화하는 문제도 다루고 있다. 자유 의지에 따라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한이 커지는 경우, 젊은이들이 삶에서 도피하기 위해 의사조력사 제도를 잘못 이용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도 언급을 하고 있다.
요 몇 년 사이, 지인들의 부모님 부음을 자주 접하게 된다. 나만 하더라도 얼마 전 엄마가 돌아가셨다. 내가 겪거나 전해 들은 죽음의 과정은 길고, 고통스러운 경우가 많다. 오랫동안 자리보전을 하고,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 장기 입원을 하시고, 응급실을 들락거리다가, 결국 중환자실에서 돌아가시는 어른들 이야기를 접할 때면, 안타깝기가 그지없다. 그러나, 죽음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생각을 해 보거나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는 않는다. '죽음에 관해서는 최대한 입을 다물자'는 일종의 암묵적 약속 같은 것이 되어 있다고나 할까?
뻔히 예견되어 있는 죽음에도 잘 준비하기보다는, 닥치면 허둥지둥하며 어설프게 겪어 내게 되는 것 같다. 그리고는 일상으로 돌아와, 마치 영원히 죽지 않을 것처럼 살아간다. 하루 이틀 떠나는 여행도 꼼꼼히 계획하는 사람마저도 죽음에 대해서는 대체로 계획하거나 준비하지 않는 것 같다. 죽음이란 그냥 속절없이 당하는 것, 사람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의지의 영역이라는 생각을 부지불식 간에 하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주위에 고통스러운 죽음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100세 시대니, 기대수명이니 건강수명이니 하는 이야기가 흔해지는 만큼, 동네 건물에 들어서는 요양원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부지불식 간에 당하는 죽음으로서 모른 채 하고 언제까지나 지낼 문제가 아닌 것이다.
나 역시 필멸의 생명체이기에 내 앞에도 감내하기 어려운 고통만이 남아 있는 날이 마침내 다가오게 될 것이다. 내 삶의 과업은 이미 완성되었고, 오직 타인에 의존해 연명해 가야 하는 상황에 놓인다면, 내 의지와 상관없는 무의미한 연명의료 시술을 거부하고, 경우에 따라 호스피스를 선택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에도 천천히 흐르는 시간을 견디며, 무너져가거나 고통을 감내해야 할 때, 과연 어떤 선택이 가능할까? 어떤 선택을 하고 싶을까? 책 속의 마이아 칼로웨이가 그랬던 것처럼 나도 스위스로 날아가고 싶을 것 같다. 너무 늦기 전에.
이제 우리 사회도 죽음에 대해 논의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아니, 실제로 논의가 시작되었는데, 마침 어저께 경향신문에 흥미로운 기사도 실렸다.
https://m.khan.co.kr/people/people-general/article/202209062049005
그러니까, 이 책은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고,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인간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뛰어난 통찰이나 메시지를 전하는 책은 아니다. 그러나, 이 책을 읽다 보니, 앞으로 내가 겪게 될 미래, 우리 사회가 나아갈 방향에 대해 생각도 해 보게 되고, 사회적 논의에 동참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게 하는 책이다.
이 책을 권합니다
우리 사회가 전통과 관습의 경계를 허물고, 진보해 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들께 이 책을 권합니다.
다만, 완독 하는데 약간의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군요. 아마도, 저자가 환자들의 삶과 죽음의 기록자, 사례 전달자로서의 역할에 치중하고 있다 보니, 보기에 따라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꽤 담겨 있습니다(사람이 산다는 것이... 사실 그렇지요?) 책을 읽는 중에 반복해서 읽게 만드는 구절도 조금 있는 듯한데, 번역이 매끄럽지 못해서 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