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1호의 치사한 자리싸움

by 나무Y

날씨가 쌀쌀해지면, 그러니까 초가을부터 늦은 봄까지 우리 집 거실에는 작은 황토매트가 깔린다. 황토매트는 보통의 수건 보다는 대략 한뼘 정도 길고 넓은 크기라, 내가 등을 대고 누우면 아주 맞춤한 사이즈이다. 아침 저녁으로 그 매트에 누우면 엉덩짝 부터 목까지가 따땃해지며, 마치 어릴 적의 황토방에 누운 듯 몸도 마음도 안온해진다.


그러니, 거실 바닥에 주저 앉아 TV를 보거나 책을 읽을 때, 혹은 이른 새벽에 깨어나 거실로 나오면 습관처럼 매트를 뎁히고, 그 따땃한 온기에 젖어 들게 된다. 어쩌다 몸살 기운이라도 있으면, 온도 조절기의 레벨을 한두 단계 올려 등짝을 지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나는 황토매트를 사랑하여, 늘 끼고 산다고나 할까... 다행히도 우리 집에서 황토 매트 주위를 맴도는 사람은 나 밖에 없어서, 나는 원할 때 마다 황토매트의 따뜻한 온기를 즐겨 왔다.


2020년 겨울, 애기 고양이 꽁이가 우리 집 식구가 되었다. 폭신 폭신한 담요를 좋아하고, 따땃한 햇살 아래 낮잠을 즐기는 여자 애기 꽁이. 날씨가 우중충하거나 내 등짝이 시러운 계절에는 우리 꽁이도 추워 보였다. 그래서 꽁이가 서늘한 거실을 헤매이거나, 햇빛이 숨어 버린 창가에서 옹크리고 있으면, 황토매트를 또꼰 또꼰하게 데우고, 꽁이를 납작 안아다 매트 위에 올려 주었다. 어느 날 부터인가, 꽁이는 틈만 나면 황토매트 위에 올라가 앉아 있곤 한다. 가끔씩 외출했다가 돌아오면, 전원을 켜지 않아 냉기를 품고 있는 매트 위에 오도카니 앉아 있는 꽁이를 볼 때도 있다.

'꽁아, 너 거기서 뭐해?' 하며 다정하게 물어보면

'옴마, 이게 웨케 추워요?

어디 고장 났나 얼릉 고쳐봐요!' 하는 듯...


'꽁아, 말이지... 옴마가 없을 때는 말이지...

이렇게 이 단추 같은 거 보이지?

이걸 네 앞발로 꼭 누르란 말이야.

그럼 이렇게 빨간 불이 딱 들어오지...

이렇게 이렇게... 알았지... 그럼 따땃해져요.

알고보면 옴총 쉬어요...'

궁시렁대며 짠한 마음으로 전원부터 켜주게 된다. 이제는 두살이 넘어 숙녀 냥이가 되었지만, 3키로그램을 겨우 넘긴 작은 꽁이는 내 맘을 아는지 모르는지... 동그랗게 말고 있던 몸을 슬슬 펴고, 눈이 점점 가늘어진다. 따뜻한 황토바닥을 좋아하는 꽁이, 옴마랑 취향이 비슷하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집 황토매트를 맴도는 생명체가 둘이 되고 말았다. 901호의 보통날의 저녁은 알고보면 눈치게임이 장난이 아니다. 꽁이 보다는 적어도 열다섯배 이상 덩치가 큰 내가 또꼰 또꼰한 매트 위에 엉덩짝을 깔고 앉아 TV를 보는 저녁, 말 못하는 꽁이는 내 발치 근처쯤에서 몸을 말고 식빵을 굽는다. 마음 약한 내가 옆으로 물러 앉아 한 쪽 엉덩짝만 매트 위에 걸친 채로, 꽁이에게 자리를 내어주면, 꽁이는 지 엉덩짝은 포기하고 상체를 매트 위에 걸치고 나를 가만히 바라본다. 그러다 내가 화장실에 가거나 물한잔 마시러 잠깐 자리를 비우면, 어느새 홀라당 매트를 차지하고 대짜로 누워 있다. 덩치도 작은 녀석이 한 쪽 귀퉁이 쪽에 드러누우면 매트의 삼분의 일 쯤은 내가 차지할 수도 있건만. 생각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떡하니 가운데에 드러 눕는 경향이 있다. 기가 찬다. 참내... 이걸 쫓아 낼 수도 없고... 어쩔 수 없이 소파에 올라 앉아, 꽁이가 차지한 매트의 온기를 부러워한다.


그러나, 901호의 강자가 누구인지는 새벽에 분명해 진다. 서늘한 새벽에 깨어난 나는 비몽 사몽 거실로 나와, 한 단계 높은 온도로 매트를 뎁히고, 끙하며 드러 눕는다. 뜨끈 뜨끈해 지는 등짝의 기분좋은 온기에 취해 다시 잠에 빠져드는데, 어느새 꽁이가 나타나 주위를 어슬렁거린다. 이른 새벽, 이불도 없이 자는 꽁이, 황토매트의 온기가 엔간히 그리울게다. 그러니, 벌떡 일어나 또꼰 또꼰한 매트를 꽁이에게 내어 주어야지 한다. 다만, 마음만 그렇다. 어설프게 깨어나 잠에 취한 내 몸은 매트에 납작 붙어 일어날 수가 없다고 버틴다. 그러니, 불쌍한 꽁이는 옴마 주위를 빙글 빙글 돌다가 어디론가 사라진다. 아마도 세상에 믿을 사람 없다는 걸 깨달았을 수도.


'꽁아... 미안타...

옴마가 말이지..

너한테 말을 안해서 그렇지 목 디스크도 있고...

허리도 아파요.

아마 너도 옴마 나이쯤 되면 자연스레 알게 될거여.

그러니 네가 이해해라...


그라고... (말이 나온 김에...)

너 어제 저녁에 말이야.. 호시탐탐 노리다가

옴마 자리 비울 때, 냉큼 매트 차지하는 것은 좋은데 말이여.

왜케 매트 중간에 벌러덩 드러눕는겨?

너 덩치도 콩알 만한게...

옴마랑 나눠 앉으면 좋잖어...'


30여년의 직장 생활 중에, 말하자면 이런 저런 자리 싸움을 해 왔었다. 대놓고 하기도 하고, 뭐가 뭔지 모르면서 살아남겠다고 아등바등하며 자리 싸움도 했을 것이다. 전일제 직업인으로는 은퇴를 한 지금의 내 삶에, 이제는 자리 싸움 같은 것은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 다시 자리 싸움을 하게 될 중이야. 한평도 안되는 매트를 두고서, 저 작은, 말못하는 생명체와 말이다.


어쨌거나 오늘 새벽에도 나는 또꼰 또꼰한 매트에 납작 드러누워 일어나지를 못했다. 사회적 약자인 우리 꽁이, 말이 없는 편인데... 어쩐 일인지, 단단한 목소리로 "냐용 냐용" 뭐라고 하더라는.


"꽁아... 너 새벽에 옴마더러 뭐라고 한겨?

사람이.... 참... 없어 보인다고?...

미안타... 대신에 내가 아침 츄르 좀 더 많이 주꾸마...."


"냐옹 냐옹...

옴마... 진.짜로 없...어 보이..네...

안.. 그런 줄 알았... 는데..

옴.. 마.. 원래 이런 사... 람... 이었...

쩝쩝... 일..단은 츄르..는 챙겨 먹..고...

냐~아용... 냐~아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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