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맥주잔을 꿈꾸는 소주잔만한 연구원이 글을 쓰는 까닭은 -
어느새 은퇴가 멀지 않았다. 출구가 보이는 위치 쯤에 다다르고 나니, 나하고 상관없는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가도 무심코 내 지난날을 돌아보게 되고는 한다. 많은 것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나 자신을 이해하고, 세상을 수용하고, 가끔씩은 성찰의 단계에도 이른다.
살면서 종종 떠올리는 이야기 하나. 오래전 어느 회식 자리에서인가 누가 해준 이야기이다. ‘소주잔만한 사람이 스스로 맥주잔이라 여기며 더 채워 주지 않는 세상을 탓하고, 소주잔만한 사람을 맥주잔만하다고 여겨 넘치게 부어주다 그만 실망을 하고 만다’는 ...
큼직한 옹기만하지는 않더라도 그저 맥주잔만은 하기를 바라기는 했다. 그러나, 실상은, 세상의 작은 차이에 집중해서 시시비비를 가리고, 효율의 잣대로 세상을 보는 프레임에 나날이 익숙해져 왔다. 내 업의 특성상 일종의 직업병이라고 핑계를 대어 본다. 그렇지만, 앞서 달리라고 아우성치는 내 속의 경쟁 본능은 어느 누구를 탓할 것인가? 내 그릇은 커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어영부영 작아지고 있는게 아닐까 싶다. 그래서, 버릇처럼, 타인의 눈에 비친 내 그릇의 크기를 재보며, 모자란다 더 부어달라... 안달복달 살고 있다. 더 부어달라고 하는 와중에도 내 잔은 흘러 넘치고 있는 것을.
그래서, 내 마음을 키우는 연구원 일기를 써 보려고 한다. ‘일로서 만난 사람’들을 통해 나를 보고, 내 마음을 스쳐 가는 내 일터의 맑고 궂은 풍경들을 적어 보려고 한다. 자칫 지나치기 쉬운 이런 작은 이야기들, 일상의 사소함, 세상의 작은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며, 내 마음에 남기는 흔적을 살피다 보면, 어쩌면 세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하고, 조금 더 너그럽게 받아들이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나, 솔직히 털어 놓자면......
‘연구원 일기’ 라는 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글방을 열며, 시작하는 창대한 마음이 그렇다는 것이다. 앞으로 이 이야기들은 어디로 미약하게 흘러가게 될 것인가.. 사뭇 기대가 된다(창대하게 시작해서 미약하게 흘러가는 여정이 기대가 된다니....)
그런데, 사실은, 핵심은 이것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이러한 나의 글쓰기가 타인에게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사실 이 질문 앞에만 서면, 어느 가수가 노래했듯이, 나는 작아진다. 이 세상 한구석에 어떤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이런저런 사소한 일에 울고 웃고 있다는... 한 평범한 사람의 흔한 서사 정도 아닐까... 그래서, 내 글쓰기는 자주 길을 잃는다.
아마도, 십중팔구는 그저 마음가는 대로, 써보고 싶은 이야기들을 주절주절 풀게 될 것이다. 이렇게 주절주절 하다보면, 언젠가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담거나, 혹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는 날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속으로 가만히 다짐한다. 그래도, 걷다보면 길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그러니 사소한 이야기라도, 졸졸 흘려 보내자고... 물길 마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