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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Y May 04. 2023

벚꽃과 온천을 찾아 떠난 북규슈(1)

- 드디어 료칸에 들다.

    지난 3월말, 남편과 북규슈를 한바퀴 돌고 왔다. 벚꽃과 온천을 찾아 다닌 6박 7일을 짤막하게 라도 정리해 봐야지 하며 하루 이틀, 어느새 한달이 훌쩍 지났다. 반 은퇴자의 삶이건만, 무엇이 이리 바쁜지.....  규슈에서는 한국의 일상이 까마득하더니만, 어느듯 규슈에서의 날들이 흐릿하다.  


북규슈, 벚꽃과 온천을 찾아


3/23~ 3/29

첫째날: 인천 ~> 후쿠오카 ~> 벳푸

둘째날: 벳푸 ~> 유후인

세째날: 유후인 ~> 쿠로카와 온천 마을 ~> 아소산 일대 ~> 구마모토

네째날: 구마모토 성 및 성하마을

다섯째날: 구마모토 ~>후쿠오카

여섯째날: 후쿠오카 인근

일곱째날: 후쿠오카 ~ 인천


    초봄, 북규슈 여행길에는 비가 오락 가락했다. 산은 높고 깊었는데, 빽빽하게 들어선 삼나무 숲은 오래 전 아이들과 다녀왔던 캐나다 로키 산맥 일대를 떠올리게 했다. 차창 밖으로 스쳐가는 시골 마을의 기와집들은 대나무 숲이 무성하게 둘러 싸고 있었다. 벚꽃은 이제 막 피어나기 시작했는지 혹은 지고 있는지 그 기세가 약해 보여서 내심 아쉬웠다. 저 멀리 높은 산에 구름이 흩어지고, 잠깐씩 나타났다 사라지는 햇빛 속에 연핑크 벚꽃이  바람처럼 스쳐가고... 오이타현 벳푸로 가는 고속도로에서 스쳐가는 차창밖 풍경은 어쩐지 어디 머언 북구의 풍경 같기도 하고, 난데없이 낯이 익기도 했다, 몇몇 생을 거쳐 어쩌다 돌아온 고향 처럼, 낯설고도 편안했던 6박 7일의 일정 중, 내 마음에 흔적을 남긴 순간들과 공간, 그리고 사람들 이야기를 몇개 건져 올려 본다.


드디어 료칸에 들다!


   소설 설국을 여러번 읽었다. 눈이 많이 내리는 산골 마을의 료칸, 그 료칸을 배경으로 끊어질 듯 이어지는 시마무라와 고마코의 인연, 그 인연은 겨울날 아침 햇살에 녹아 사라지는 새벽 눈 같았다. 현실에서 지극히 허무하고, 그러기에 마음 속에서 그 사랑은 되려 생생하다. 소설을 읽다가 눈을 감고, 일본 산골 마을 료칸의 아침과 저녁 풍경을 상상해 보곤 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일본 산골마을의 이름없는 료칸에 한번 묵어봐야겠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일본 산골 마을을 여행할 기회는 많지 않았고, 료칸은 턱없이 비싸더라는.


    이번 여행 길, 둘째날 밤에 마침내 유후인 작은 마을의 H 료칸에 머물렀다. 달랑 두사람임에도 2층 짜리 넓디 넓은 독채를 덜렁 내주어서 당황스러웠지만, 유카타를 입고서 가이세키 요리도 먹고, 뜨끈 뜨끈한 온천도 맘껏 즐겼다. 나름 가성비를 따지다보니 시설이 특별히 훌륭하지는 않았지만, 료칸 안주인이 무릎 꿇고 나의 가이세키 저녁 식사를 챙겨 주지는 않았지만. 어쨌든 드뎌 오래된 료칸, 다다미가 깔린 시골 마을의 료칸에 들었다는, 나름 실속있게.

유휴인 료칸 앞에서

    방에 딸린 가족 온천탕에 깊숙이 몸을 담그고서,

        "으흐흐 좋다...

        다음에는 우리 자매들... 언니랑 동생이랑 다같이 한번 와야 겠다..." 고.

설국과 그 산골마을의 료칸은, 그러니까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뒤늦게 여행기를 정리하다 보니, 잠깐 슬프다. 나의 상상 속에서 너무나 생생했던 일본 온천마을의 풍경은 이제 없다. 다시 설국을 읽어보면, 그러면 나는 다시 그 북국 온천마을의 료칸을 상상할 수 있을까?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중략>....

눈이 쌓이지 않도록 하려는 것인 듯, 욕탕에서 넘치는 더운물을 여관 벽을 따라 임시로 만든 도랑으로 끌어 댔는데 현관 앞에서는 그것이 얕은 샘물처럼 퍼지고 있었다. 검고 당당한 아키타견이 거기 있는 디딤돌에 올라 앉아 오랫동안 물을 핧고 있었다. 광에서 내온 듯한 손님용 스키가 널려 있는데, 그 은은한 곰팡내는 수증기로 달콤해지고, 삼나무 가지에서 공동탕 지붕 위로 떨어지는 눈덩이도 따스한 물체처럼 형체가 부서졌다.

그리고 세모에서 정월이 되면 저 길은 눈보라로 보이지 않게 된다. 기생들은 몸뻬에 고무장화, 망토를 두르고, 베일을 쓰고 손님 술자리에 불려 다녀야 한다. 그 무렵의 눈 깊이는 열 자나 된다. 그렇게 말하며 언덕 위 여관 창문으로 여자가 새벽녘에 내려다보던 언덕길을 시마무라는 지금 내려가고 있다.....

<출처: 설국 천우학, 가와바타 야스나리 지음, 범우사>

<To be continued...>


두번째 이야기 : 벳푸에서 유후인 가는 길- 산중턱 소박한 식당에서의 한끼 식사

세번째 이야기: 구마모토에서 후쿠오카 가는 길- 휘늘어진 수양벚꽃은 바람에 날리고

네번째 이야기: 아소산 고원, timber line 을 저 발아래에 두고-문득 유리안느를 떠올리다

다섯번째 이야기: 구마모토, 마쯔리?

여섯번째 이야기: 후쿠오카 나카스 야타에서 오뎅을 먹으며- 라면 총각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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