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연구동 중정의 배롱나무 잎들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고, 새들은 명랑하게 노래한다. 하늘은 눈이 부시게 맑고, 산들바람이 가볍게 분다. '아! 아름다운 오월의 하루'라고 감탄하다가, 눈길 닿는 저 하늘 어드메에 고운 벚꽃 스티커를 살포시 붙여 본다.
개인적으로 이쁜 문구류에 열광하는 편이라, 가끔씩 문구류 구경을 가곤 한다. 십여 년 전쯤에 스티커 코너에서 아주 고운 벚꽃 스티커를 발견했다. 그런데, 이쁜 벚꽃 스티커를 사긴 샀으나, 이걸 붙여줄 데가 마땅치 않았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자주 사용하고 아끼는 사무용품들, 손이 자주 가는 이런저런 개인 물건 들에 벚꽃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했다. 나의 물건들에 벚꽃 스티커를 붙이기 시작한 작업은 차츰 진일보하였다. 물건을 고를 때, 과연 '나의 벚꽃 스티커‘를 붙여줄 수 있는 물건일까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일테면 나는 손 맛이 있는 P사의 특정 펜을 찾아냈고, 이제는 그 펜만을 구매하고, 벚꽃 스티커를 붙여서 사용한다. 또는 집에 같은 모델의 아이팟이 여러 개 놓여 있더라도, 벚꽃 스티커가 붙은 것은 나만의 아이팟으로서 고유해진다.
이처럼 고운 벚꽃 스티커가 붙어 있는 소소한 나의 애장품들, 애장품이라고 부르기에도 뭣한 작은 내 물건들을 이제 그냥 물건이 아니라 나의 일부이기도 한 듯. 그러니까 말하자면, 나의 개인 브랜드는 '벚꽃'이고, '벚꽃 스티커'를 붙여서 내 브랜드를 나타낸다고나 할까?
가끔씩은 사람들에게도 '벚꽃' 스티커를 붙여준다. 아쉽게도 얼굴에 직접 스티커를 붙여 줄 수는 없으니, 그들이 갖고 있는 노트북이나 볼펜 같은 것에 장난스럽게 스티커를 붙여준다.
그들 심성의 무언가가 내 마음에 슬쩍 와닿아 내 마음에 파동이 일 때, 문득 나의 벚꽃 스티커가 발행되는 듯하다. 내친김에 내가 벚꽃 스티커를 붙여 준 몇몇에 대해 생각해 보니 그들의 특성 몇 가지가 보인다. 왕성한 호기심으로 일상을 벗어난 다양한 주제에 대해 공부한 것을 들려주고, 내 생각을 묻는 사람들에게 나의 벚꽃 스티커는 망설임 없이 발행되는 듯하다. 돈이 되지 않는, 얼핏 무언가 무용해 보이는 것에 빠져 자기만의 색깔로 자신의 세계를 만들어 가는 사람에게도 나의 벚꽃 스티커는 발행되는 듯하다.
그런데, 요즘 들어 나의 벚꽃이 날아가 앉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따뜻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넓게 품어주는 이들이다. 굳이 말하지 않거나 혹은 말할 수 없는 것들을, 마음으로 알아듣고,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고개를 끄덕여주는 그 마음에, 나도 마음으로 벚꽃 스티커를 붙인다.
벚꽃 스티커가 붙은 지인을 맞닥뜨리면, 벚꽃이 흩날리는 봄날처럼 세상이 잠시 빛난다. 그들은 모른다. 내가 붙여준 고운 '벚꽃 스티커'가 나비처럼 그이 머리에서 팔랑이고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