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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Y May 16. 2023

벚꽃과 온천을 찾아 떠난 북규슈(2)

유후인 가는 길, 고개 마루 소박한 식당에서의 한 끼 식사

첫번째 이야기 : 드디어 료칸에 들다!


두번째 이야기


    여행 둘째 날이었던 3월 24일, 호텔의 온천을 다녀온 후 일본식 조식까지 느긋하게 챙겨 먹고, 벳푸의 유명한 온천 지옥순례 길을 나선 시간이 9시 30분경이었다. 관광지라기에는 상당히 조용한 마을에는 아침 습기가 내려앉아 마음까지도 차분해지는 듯한데, 저 멀리 산 아래 여기저기서 하얀 수증기가 피어올라  낯선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산 아래 마을의 좁은 길을 긴가 민가 하며 이 골목 저 골목을 지나 마침내 도착. 하얀연못 지옥을 필두로 가마솥 지옥, 괴산 지옥, 바다지옥 등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진흙탕이 부글부글 끓고, 유황 냄새가 진동하는 곳이라 지옥 순례라는 어마 무시한 이름을 붙여 놓았는데, 그런 온천 옆에는, 나무 담을 끼고 기와를 인 주택이 들어서 있고, 그 담벼락에 기대어 선 벚꽃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어, 그저 평화로워 보이기만 하다.

    족욕도 하고, 뜨거운 온천물에 삶은 계란도 먹고, 노닥 노닥하며, 마지막으로 피지옥과 용지옥까지 알차게 구경하였다. 용지옥에서는 타이밍을 기가 막히게 잘 맞추어  마침 간헐천이 솟구치는 장면까지 구경하고 나니, 점심때가 훌쩍 지나 있었다. 근방에서 마땅한 식당을 찾지 못해, 바로 유후인으로 넘어가기로 하고, 갈길을 재촉하였다.


    그렇게 유후인을 향해 고갯길을 올라가다가 우연히 길가의 작은 식당을 발견하여 들어갔다. 테이블이 대여섯 개쯤 될까... 그곳이 닭구이 전문의 소박한 식당 '히데상'이었다.  식당 내부는 특별히 신경 쓴 것 없이 수더분한데, 가재도구들이 대체로 나무 아니면 대나무 물건이다. 그 하나하나가 적지 않은 세월을 겪은 듯. 주인인 듯 중년의 아주머니 한분과 젊은 여성이 입구 쪽 주방에서 일을 하고 있고, 입구 쪽 창가 테이블에는 까만 양복을 입은 일본 젊은이가 혼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우리도 일본 젊은이 뒤쪽의 테이블에 앉아 창밖을 내다보았다. 저 멀리 벳푸시내가 훤히 내려다 보인다. 고갯마루에 올라앉은 식당 창밖으로 펼쳐지는 풍경, 와아~ 이런 절경이!


    메뉴를 받아 들고, 어설픈 일본어와 한자어를 읽어 내다가 결국은 번역기 도움을 받아 도리텐과 가지구이 기반의 소고기 볶음 요리 비스무리한 것을 시켰다. 밥은 대봉 하나, 중봉 하나 시키고. 기다리는 동안, 배는 고프지만, 저 멀리 벳푸의 풍경, 창 한쪽의 대나무 숲, 가리개 건너편 일본 남정네가 굽고 있는 고기 냄새에 취해, 나는 마침내 바쁠 것 없는 여행자의 마음이 되었다.


    안주인이 내어준 밥은 아주 맛있었는데, 생각보다 양이 적어 아쉬웠다. 우리도 그냥 작은 일인용 화로에 각자 닭고기를 굽고 싶었지만, 어쩌랴! 이미 늦었다. 대신에 핫사케 한 도꾸리를 시켰다. 밥그릇을 밥알 하나까지 남기지 않고, 소고기 알맹이 하나하나 야무지게 긁어먹으며, 사케를 마시는데.. 기분 탓일까? 혼자 마셔서일까? 결코 크지 않은 도꾸리에 담긴 술이 부어도 부어도 자꾸 흘러나오는 듯. 이런 횡재가 있나! 앞 테이블의 일본 총각이 고기를 추가 주문하는 것일까? 주인장을 불러 무어라 무어라 대화를 나누었다. 부러워라! 나도 고기를 굽고 싶다고요! 그래도 사케는 느긋하게, 양껏 마신 기분이 들더라는.

    아쉽지만 유후인 가는 여정이 바쁜지라, 자리를 털고 일어나 계산을 하려고 카드를 내미니 "Only Cash"라고 했다. 기술 문명의 선봉에 서 있을 것 같은데, 알고 보면 아직도 아날로그 세상이 펼쳐지는 곳.


   


 일상으로 돌아와 문득문득 그곳을 떠올린다. 고개 길에 올라앉아 저 아래 벳푸시를 내려다보던 작은 식당, 히데상. 맛난 음식, 고기 굽는 냄새, 두런두런 내용을 알 수 없는 대화, 혼자서 마시던 사께...

그 곳, 그 음식, 그 시간들이  왜 생생하냐고 물으면, 딱히 뭐라고 하기 애매하다. 그냥 종종 '히데상'을 떠올리고는 한다. 어쩌면 히데상에서의 한끼가, 낯선 장소에서 우연히 만난 타인과 뜻밖의 깊은 대화를 나눈 것 처럼, 우연히 다가와 온전히 나의 감각으로 머문 순간이어서 일 지도 모르겠다.


<To be continued...>


세번째 이야기: 구마모토에서 후쿠오카 가는 길- 휘늘어진 수양벚꽃은 바람에 날리고

네번째 이야기: 아소산 고원, timber line 을 저 발아래에 두고-문득 유리안느를 떠올리다

다섯번째 이야기: 구마모토, 마쯔리?

여섯번째 이야기: 후쿠오카 나카스 야타에서 오뎅을 먹으며- 라면 총각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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