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양벚꽃은 바람에 휘날리고
첫번째 이야기 : 드디어 료칸에 들다!
두번째 이야기 : 유후인 가는길, 고개 마루 소박한 식당에서의 한끼 식사
벚꽃과 온천을 찾아 북규슈 여행을 다녀온 것이 지난 3월말, 어느새 계절은 여름이다. 북규슈 여행에서 담아온 몇개의 여행지 풍경을 정리해 보기로 했으나, 그 세번째 이야기에서 소식이 감감하니 민망하다. 하는 일 없이 바쁘다고? 그래도 자! 다 잊기 전에 힘을 내보자!
경상도 어느 시골학교 교정을 둘러싼 왕벚꽃들이 떠오른다. 유년의 내가 자라 초등학교를 다녔던 마을에 봄이 오면, 애기 주먹만한 벚꽃들이 무수히 피어나, 학교가 온통 꽃대궐에 파묻혔다. 무슨 일이었을까? 어렸던 내가 신작로가 있는 내 건너 동네에 까지 갔다가 논 사이 길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봄 날. 저 멀리 우리 집은 잘 보이지 않고, 마을 가운데 연분홍 솜 같은 벚꽃들이 보였다. 아스라한 연분홍에서 더 짙은 분홍까지. 저 꽃 구름을 찾아가면 그 아래 쪽에 우리 집이 있겠구나 하던 아련한 봄 날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 대궐 차리인 동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라는 노래가 나오면, 나는 유년의 저 왕벚꽃들을 떠올리게 된다. 나른한 봄 아지랭이 속, 저 멀리 산 아래의 분홍 꽃 구름, 어린 걸음으로는 너무 멀어 언제쯤 가 닿을 수 있을까 싶었던 그 마음까지. 그러니까, 내 유년의 왕벚꽃은 흐릿하면서도 생생하다. 어쩌면 어느 영화 속의 한 장면 같기도 하고, 꿈을 꾼 것 같기도 하나, 그 왕벚꽃이 피어난 날 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생생해지며 그립다.
주변에 꽃을 좋아라 하는 이들이 많다. 아니 함께 나이가 들어가니 꽃들이 좋아지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이들과 꽃 배틀을 하게 되면, 몇년 전 어느 봄날, 개심사에서 만났던 '내 인생의 벚꽃'을 이야기한다. 여기 벚꽃은 겹벚꽃이라고 해야 할 듯 하다. 연분홍, 진분홍, 우아한 아이보리에서 살짝 녹색(청색?) 빛이 돌던 꽃 까지, 색깔부터 자태까지 그렇게 고울 수가 없었다. 특히나 개심사 돌 계단 아래 쪽 창고처럼 낡은 흙 집 지붕위를 덮고 있던 그 고운 분홍 벚꽃이 만들어내던 봄날 풍경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몇해 전 겨울, 교토 여행길에 작은 수양벚꽃 한 그루를 만났다. 사람들로 붐비는 산넨자카 골목길에서 내 마음 잠시 길을 잃었더랬다. 북적대는 가게들을 지친 마음으로 바라보다, 골목길 끝 낡은 나무 담장에 기대어 선 작은 수양벚꽃 한 그루를 보았다. 검은 색 담장 너머로 가지를 뻗은 나무 한 그루. 겨울 한가운데 서서 문득, 봄날을 생각하며, 오래 오래 눈길을 주었다. 휘늘어진 가지에 봄이 오고, 하늘 파아란 날 살짝 바람이라도 불면... 그래서 해마다 봄이 오면, 나는 교토 골목길의 작은 수양벚꽃 안부가 궁금하여 이리 저리 묵은 사진을 뒤적이고는 한다.
북규슈 여행 3일차, 유후인에서 아소산으로 넘어가는 길에 수양벚꽃 한 그루를 만났다. 멀리서 부터 눈에 띈 이 수양벚꽃은 아마도 그때까지 내가 만나 본 수양벚꽃 중 가장 키가 컸지 않나 싶다. 국도변 외딴 집 마당 끝에 서 있는 나무를 살펴보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집 앞에 차를 세웠다. 아직은 이른 오전 시간, 다행히 집에는 인기척이 없어 한참을 살펴 볼 수 있었다. 날씨가 흐려 아쉬웠지만, 외딴 집 수양벚꽃은 활짝 피어나 바람에 흔들리며, 낯선 이에게 그 아름다움을 보여 주었다.
그리고 여행 5일차, 구마모토에서 후쿠오카로 올라 오다가 우연히 구루메시의 야오니 유적지에 들렀는데, 거기서 이번 여행길 최고의 수양 벚꽃 나무들을 만났다. 오래된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굵은 나무 둥치, 구불 구불 뻗은 가지 끝에 휘늘어진 꽃가지. 그 자태가 너무 고와서 감탄을 거듭하며, 이 나무 저 나무들을 한참 동안 살펴 보았다. 마침, 수양 벚꽃 나무 아래에 일본 여인네들이 꽃놀이를 나와 도시락을 펼쳐 두고 있었다. 이렇게 수양벚꽃이 멋들어지게 피어난 날에는 봄 햇살이 화창하고, 산들 산들 봄 바람이 불어야 하건만, 여전히 날씨가 흐렸다. 나이가 지긋한 한 할머니와 마주 앉아 이야기 삼매경에 빠진 저 여인네들, 딸들과 나왔는가? 아니면 동네 사람들일까? 나도 저 여인네들 속에 끼어 앉아 봄 날의 정취를 즐기고 싶었다.
<To be continued...>
네번째 이야기: 아소산 고원, timber line 을 저 발아래에 두고-문득 유리안느를 떠올리다
다섯번째 이야기: 후쿠오카 나카스 야타에서 오뎅을 먹으며- 라면 총각 화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