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킹맘의 커리어 고민
육아휴직 8개월 차, 잊을만하면 회사에서 전화가 온다. 전화의 주인공은 부서 부장이다.
이유는 다양하다. 잘 지내냐, 연락 좀 해라, 밥 먹으러 나오라는 등 안부전화다. 간혹 일할 때 참고할 만한 서류를 보내줄 수 있냐는 전화도 있다.
부장의 등쌀에 못 이겨 후배도 전화가 온다. 선배가 쉬면서 자신이 과도한 업무에 시달린다는 푸념이다. 그녀가 회사의 욕을 쏟아내고 무언갈 부탁하면 나는 서류를 넘겨준다.
예상과 달리(?) 내 이미지는 회사에서 사람 좋은 사람이다. 선후배들과 잘 지내고 임원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할 정도로 소통에 자유롭다.
하지만 휴직 중에는 회사와의 관계도, 소통도 쉬고 싶다. 아니, 아예 끊고 싶었는지 모르겠다.
경주마처럼 달리던 내가 아기를 낳고 주변을 다시 보게 된 걸까. 까맣게 잊었던 회사가 툭 튀어나오면 종료 버튼을 더 세게 누른다.
아, 회사 어떻게 다녔지.
나는 주변인에게 명절이나 생일, 경조사 등으로 안부를 묻는 사회적 인간이 아니다. 사회생활을 잘하려면 그런 걸 잘해야 한다는데 그러질 못한다.
휴직하며 알게 된 건 죽어라 매달렸던 일이 별게 아니란 점이다. 더 솔직하게 표현하면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하면서 아등바등 살았나 싶다.
물론 회사일이 불만족스러운 건 아니다. 동기들 중에 가장 먼저 진급하고 성과를 인정받았다. 힘들어도 습관적으로 했던 일인데 잠시 멈추고 나니 가치가 점점 희미해진다.
내가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세상은 잘 굴러가고 내 인생은 너무나 평화롭다. 통장의 잔고가 예전만큼 풍족하지 않아도, 매일이 버라이어티 하게 재밌지 않아도, 지금의 고요함이 좋다.
엄마가 되고 사회와 단절돼 슬퍼했는데 내 속에 진짜 자아가 탈을 벗은 건 아닌지 아리송하다. 웜뫄, 응! 이 전부인 아기와 소통하는 하루가 충분하니 말이다.
복직이 아니라 이직, 전직을 결정해야 하나. 나중에 쥬쥬가 엄마는 직업이 뭐야?라고 물을 때 '기자'가 아니라 뭐라고 말하게 될까.
엄마가 되고 진로적성 검사를 다시 하고 싶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