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 바람 불 때 핫초코 말고 맥주
치열한 육아전쟁이 끝나면 격렬하게 혼자 있고 싶다. 조용하다 못해 고요한 시간에 아무 말도,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안 하는 정지 상태 말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그 무언가의 만족감은 채워지지 않는다. SNS나 둘러보며 시간을 낭비할 뿐, 쉬어도 잘 쉬었다 생각이 들지 않는다.
돌이켜보면 어릴 적 나는 외향적인 사람이었다. 집 보다 밖이 좋았고 친구들과 늦은 시간까지 어울려 놀았다. 일찍 집에 와서 침대에 누우면 몸 안에 남은 에너지가 살아 움직여 쉽게 잠들기 힘들었다.
여름엔 친구들과 바다에 놀러 갔고 겨울엔 스노우보드를 즐겼다. 연애할 땐 남자 친구(현 남편)를 이끌고 등산도 했다.
얌전하게 노는 남친 산으로, 스키장으로 끌고 다녔더니 남친 부모님(현 시부모님)은 '결혼하려고 그러나. 사람이 변했다'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뛰어놀던 내가 아기와 집콕 생활을 한 지 8개월 차, 임신 시기부터 시작하면 대략 2년이다. 아 결혼 후에 내향적으로 바뀌었으니 7년이 지났나.
이제는 밖에서 보내는 시간, 적극적인 활동, 만나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막상 멍석을 깔아주면 뭘 하고 놀아야 할지 모르겠다. 사실 만날 사람도 없다.
여보, TV 예능 프로그램을 보면 막 연예인들이 친구들이랑 수다 떨고 놀잖아. 난 그런 친구가 없는데, 당신 친구들 소개해주면 안 돼?
내 친구들? 애들이 좋아할까? 근데 내 친구들도 재미없어.
내가 재밌게 해 줄게. 연애 때부터 봤으니까 어색하지 않잖아.
아... 그래... 물어볼게...
심각하게 묻는 나를 보고 남편은 난처한 표정이다. 다음주 와이프와 아이들이 없을 때 집에 놀러 오라는 친구의 전화에 내가 진심으로 '같이 가자'라고 할까 두려운 눈치다.
안 간다...(나도 눈치는 있어...)
난 가끔 철이 없는지, 아직 젊은 건지 모르겠다. 낼모레면 마흔인데, 육아하느라 매일 지치는데, 머리는 너무 쌩쌩하고 가슴은 바깥 바람에 살랑인다.
'노세 노세 젊어서 노세'는 다 해본 것 같은데. 찬 바람이 불면 집에서 따뜻한 핫초코를 마시는 것 말고 땀나게 뛰어놀고 거품 가득한 맥주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싶다.
밤늦게까지 편의점에서 맥주 한 병에 오징어를 뜯으며 수다도 떨고 싶다. 그러다 흥이 오르면 포장마차에서 찐한 소주 몇 잔에 뜨거운 우동 국물도 마시고 쓸데 없는 얘기에 시간을 보내고 싶다.
현실은 아기 이유식을 맛있게 만들고 옆에서 두유를 마시며 아~를 외쳐야 겠지. 배즙이 잘 식었는지 한 입 마시고 쥬쥬 컵에 넣어줘야지. 잘 씻은 딸기는 과즙망에 넣어서 '너무 맛있다'며 같이 먹어야 겠다.
엄마는 아직 에너지가 쌩쌩해. 얼른 커서 엄마랑 신나게 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