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면허 시험에서 매너는 안 보나요
순식간이었다. 1차선에 있던 차가 깜빡이도 안 킨 채 2차선에 들어섰고 피할 곳이 없었던 우리 차는 왼쪽 문부터 뒷바퀴까지 주욱 긁히고 말았다.
왼쪽 뒷자리에 앉은 나는 반사적으로 아기가 앉은 카시트를 끌어안았다.
7개월 아기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앉아있었고 놀란 내가 눈물을 글썽이며 쳐다보자 고개를 갸우뚱했다. 두 눈으로 보기엔 외상이 없는 듯했지만 나는 불안한 마음에 아기의 이곳저곳을 바쁘게 살폈다.
상대방 차량은 소형 SUV, 우리 차량은 중형 세단이다. SUV는 오른쪽 앞 범퍼에 흠집이 난 반면 우리 차는 왼쪽 앞뒤 문, 트렁크 옆면에 굴절과 흠집이 생겼고 뒷바퀴에 스크레치가 났다.
18년 차 무사고 운전병 출신인 남편은 처음 경험하는 사고에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기와 나를 살폈고 사고를 낸 차주가 내리길 기다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사람은 내리질 않았고 남편이 먼저 차에서 내려 상대방 차량 창문을 두드렸다.
저기요, 차 사고가 났는데 안 내리세요?
아 지금 내리고 있잖아요!
퉁명스러운 말을 쏘아붙인 어린 여자와 옆 자리에 앉은 여자는 느릿느릿 차에서 내려 보험사에 전화를 걸었다.
상대방 차와 우리 차의 보험사 직원이 도착했고 나는 아기를 카시트에서 꺼내 무릎에 앉혔다. 몸을 휙 돌려 카시트를 안은 터라 허리와 어깨가 바짝 긴장한 것이 느껴졌다. 카시트를 얼마나 꽉 잡았는지 양손도 얼얼했다.
아기는 자동차 안이 답답한 듯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어디가 안 좋아서 그런가? 많이 놀랐나? 하는 찰나에 구수한 냄새가 차 안에 진동했다.
쥬쥬야 이 상황에 똥은 아니잖아... 아기는 대변을 지린 듯했고 나는 부랴부랴 기저귀를 갈며 눈물을 떨궜다.
주말 오후에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 차 보험사 직원은 아기가 너무 어려서 차 안을 살펴보기가 부담스럽다고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을 우려한 조치다.
남편은 블랙박스 영상을 보험사에 보내기로 했고 자동차 센터에 전화를 걸어 차 수리를 문의했다. 그리고 자리를 이동하려는 순간.
근데 너무 이상하지 않아?
뭐가? 우는 애 달래느라 진 빠졌어. 얼른 가자.
아니, 차 사고는 저 쪽에서 냈는데 왜 사과를 안 해?
상대편 운전자는 보험사 직원이 차를 살피는 사이에 차 안에 들어가 다시 나오지 않았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여자가 보험사 직원의 질문을 대신 답 했고 그 역시 우리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차를 산지 일 년도 안 된 우리는 속상한 마음이 컸지만 잘못을 따지다가 아기가 탄 차에 해코지를 할까 조용히 자리를 떠났다.
다음날 나는 온몸이 쑤시듯 아팠고 주먹을 쥐는 게 고통스러울 만큼 손이 욱신 거렸다. 아기는 밤에 울기를 반복하고 새벽에 소리 지르며 깨는 일이 많아졌다. 50일부터 통잠 자던 아기에게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상대편 보험사가 제시한 과실 비율은 100:0. 대인, 즉 우리가 병원을 가지 않고 차를 수리하는데 합의하는 조건이다.
남편은 아내가 아프고 아기가 많이 놀라 병원 진료를 받겠다고 말했고 보험사는 90:10을 제안했다. 처음엔 과실을 전부 인정하더니 대인을 하니까 90%만 인정하는 건 무슨 경우인가.
남편은 사고를 낸 어린 여자도 똑같은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입에 담지 못할 말을 내뱉었다.
여보, 우리 이제 어른이니까 그런 험한 말은 하지말자.
근데 그 차에 아기가 탔을 때 누가 빵빵 크락션을 세게 울려서 모두가 크게 놀랐으면 좋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