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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종교에 대한 단상-1

by 남예지

아직 신도시가 되기 전의 원당에 살던 어린시절이었다.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는데, 아마도 좋아하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오던 길이었던 것같다. 어느 교회 앞을 지나는데 동네 사람들이(우리 엄마도 있었던 것 같다)모여 있길래 뭔가 하고 들여다봤더니, 그 교회 목사님이 죽어서 지옥엘 다녀왔고, 방법은 모르겠지만 다시 살아난 뒤 지옥에서 찍어온 영상을 보여준다는 내용의 광고 전단지가 붙어있었다! 뭔가에 홀린 듯 들어간 어두컴컴한 그 곳에서 사람들은 화면에 보이는 초록색 괴물(아마 사탄이었겠지)과 불에 타는 죄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때의 엄청난 충격이란! 난 모태신앙이었으니 마치 공기같이 함께 하던 그 분께 그날부로 거의 복종(?)을 맹세했던 것같다. 그리고나서 당시에 유행하던 휴거며 666 같은 것들에 빠져들었고, 그 공포는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혹시라도 누가 내 손바닥에 666을 찍어놓을까 싶어 잘 때도 손바닥을 하늘로 향하지 못할 지경에 이르렀다. 웃기지만 이건 지금까지도 나에게 고칠 수 없는 버릇으로 남아있다.


중학교에 이르러서야 그 두려움을 조금 극복했던 것 같다. 덕분에 난 방탕한 신자가 되었고, 교회는 심심할 때만 갔다. 하지만 우리집엔 늘 기독교 신자들이 있었고, 명절 때면 제사대신 예배를 드려야만 했다. 교회는 잘 안갔지만, 도리어 나의 그 분에 대한 감정은 회복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었다. 거대한 공포의 대상에서 다정한 친구로써의 그분이 다시 돌아오셨다. 나는 그분과 또 다시 사소한 대화들까지도 함께하게 되었고, 우리의 관계는 회복의 국면을 맞이 하였다.


이후로 내가 다시 교회에 갔던 것은 엄마를 따라서였는데, 엄마가 예배를 드리고 교회의 식사당번 같은 일을 하는 동안 나는 교회의 어린 아이들을 맡게 되었다. 표면상으로는 내가 아이들을 '돌보는' 것이었지만, 실은 내가 정신연령이 낮았던 탓인지 나보다 한참 어린 유치원생들과 노는 것도 그런대로 재미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유치원생들은 도무지 '의리'라곤 없었다. 내가 뭔가 섭섭하게 만들면 바로 엄마한테 달려가 나의 죄를 고했다. 난 그때 인간의 본성은 성악설을 따른다고 확신했다. 그러던 차에 외고시험을 준비하며 시간이 없단 핑계로 또다시 교회와 점차 멀어졌던 것 같다.


엄마와 상관없이 다시 교회를 내발로 찾았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는데, 친한 친구와 조금이라도 더 붙어있기 위함이었다. 그 친구와 교회에 갔다가 끝나면 같이 친구의 집으로 가 라면을 끓여먹고,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온갖 수다를 떨다가 스르륵 낮잠을 자고 나면 그렇게 하루가 갔다. 교회의 수련회며, 여름성경학교, 달란트시장, 그 모든 것이 우리를 위한 놀이터였다. 심지어 고등학교 3학년 수능이 끝난 어느날엔가는 술을 먹고도 송구영신 예배를 갔던 기억이 난다. 술 한잔 마시고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앉아있는 우릴 보며, 어른들은 아마 사탄이라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우리는 대학에 갔고,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대학 생활에 더이상 교회라는 놀이터가 필요없게 되었다.


대학 때는 거의 교회를 가지 않았는데, 아직도 기억에 남는건 당시 이민을 가게 되었던 친구의 마지막 소원으로 과 친구들이 우루루 몰려 그 친구의 교회에 갔던 일이었다. 그곳은 일단 규모가 엄청났다. 교회가 아니라 흡사 하나의 마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런 곳이었다. 사람들은 과도하게 친절했고, 워낙에 건물이 많은 탓에 목사님의 얼굴은 스크린으로만 볼 수 있었다. 말은 꺼내지 않았지만 모두가 느끼고 있었을 그 두려운 낯설음에 대해 누구도 언급하지는 않았다. 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종로로 가서 친구의 송별회를 했다. 후에 알았던 것이지만 그 교회는 이단 시비로 한동안 논란이 있었다고 한다. 우리는 이후로도 항상 그 친구를 그리워했는데(기억은 안나지만 한국에 돌아올 수 없는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 작년에 친구는 놀랍게도 스스로 하늘나라 행을 택했다. 그러기 며칠 전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었는데, 우린 당연히 누구도 그것이 친구의 작별인사일꺼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그 친구에 대해서는 이후에 다시 말하려 한다.)


기도는 여전히 하고 있었고 하나님과의 대화도 마찬가지였지만, 이상하게도 교회를 가기는 쉽지 않았다. 나이가 서른을 훌쩍 넘었던 어느 날, 뜻밖에도 난 소개팅 상대를 따라 교회에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몇번의 만남동안 수차례 나에게 물은 것이 '넌 구원을 받았니?'라는 물음이었다. 처음 나의 대답은 너무도 당연히 예스였다. 난 항상 그 분과 함께인걸! 하지만 그의 물음은 점차 교묘하게 나의 빈틈을 파고 들었고, 점차 나는 구원에 대한 확신을 잃어버렸다. 혹시, 내가 구원받았다고 착각하고 있었나? 이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찾아간 그 곳은 교회 간판도 없는, 굉장히 자유로워보이는 분위기의 장소였다. 그날은 설교라기보다는 강의같은 것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내용은 정말이지 생전 처음 접하는 것이었다. 성경에서 숫자를 찾아내서 사칙연산을 통해 나오는 결과를 해석하는 그런 방식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워낙에 숫자계산에 약하기도 했거니와 나를 뺀 모두가 과도하게 집중하며 감탄하는 그 분위기가 왠지 숨이 막혔다. 그리고 다른 종교에 대해 지나치게 배타적인 것도 내 심기를 건드렸다. 결정적으로 내가 존경해마지 않던 이태석 신부도 기독교가 아니란 이유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라 말하는 것에 배알이 뒤틀렸던 것 같다. 그와는 그날을 마지막으로 연락을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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