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원더 휠(Wonder Wheel, 2017)』
1950년대의 미국은 전후의 사회적 질서가 재편되며, 경제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보이던 시기였다. 대기업의 출현으로 화이트칼라(white collar)가 급속히 늘어났으며, 직업에 관계없이 국민들의 소득은 비슷해졌다. 이에 어느 가정이든 비슷한 삶의 방식을 갖게 되었으며, 텔레비전이나 신문과 같은 대중매체의 보급은 이러한 획일화 현상을 더욱 가속화시켰다. 급기야 사람들은 남과 다른 것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으며, 점점 더 획일화된 삶의 방식에 순응해갔다. 코니아일랜드는 그 시절, 찬란한 미국 자본주의의 한 조각이다. 형형색색의 놀이기구와 끝이 없는 듯 펼쳐진 해변, 떠들썩하게 먹고 마시는 사람들, 그곳에서는 모두가 행복해야만 한다.
이렇게 의심의 여지없이 행복할 것만 같은 세계에도 그림자는 있다. 회전목마 관리인인 험프와 음식점의 종업원인 지니, 둘은 부부라고 불린다. 그 이전에 지니에게는 재즈 드러머였던 첫 남편이 있었다. 그의 존재는 지니에게 드럼 소리의 환청으로 여전히 남아있다. 그가 아직 지니의 곁에 있었을 때, 지니는 주인공을 꿈꾸던 연극배우였다. 화려한 드레스를 입고 무대에 서던 그날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른다. 그런 그녀에게 남편이 떠나고 꿈도 사라진 지금의 현실은 멈추지 않는 편두통처럼 끔찍하기만 하다. 그녀가 살아남는 법은, 자본주의의 최하층 노동자로서의 현실을 그저 연극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나는 잠시 종업원 역할을 연기하는 것뿐이라고.
코니아일랜드는 자본주의의 격렬한 환상이다. 그곳은 꿈과 모험의 나라이며, 아직 자본의 권력에 휘둘리지 않았던 동심으로 돌아가 모두가 행복하기만 한 세계이다. 그러나 우리가 꿈과 모험과 동심을 얻기 위해서는 입장권도 사야하고, 기구 이용료에, 음식이며, 기념품까지 결국 모든 것에는 돈이 필요하다. 자본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경험할 수 있는 꿈과 모험과 동심인 것이다. 자본과 교환된 이상 우리는 그곳에서 행복해야만 한다. 행복하지 못하면 돌아오는 것은 죄책감이라는 처벌뿐이다. 코니아일랜드라는 행복의 환상 속에서 회전목마를 수리하고, 음식을 나르는 존재들은 철저한 타자인 셈이다. 코니아일랜드에서 가장 돋보이는 놀이기구인 원더 휠(wonder wheel)은 그들의 쳇바퀴 도는 듯한 일상을, 그리고 더 이상 올라갈 수 없도록 그들을 옥죄고 있는 계급의 상징이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지니의 욕망은 아들 리치의 방화에 대한 충동과 맞닿아 있다. 지니가 믹키를 만나기 위해 미용실에서 머리를 하는 장면, 믹키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전 재산을 털어 선물을 사는 장면, 믹키가 떠난 뒤 감당할 수 없는 상실감에 괴로워하는 장면이 리치의 방화 장면과 교차되며 결핍과 충동의 오묘한 줄다리기를 보여준다. 첫 남편에 대한, 그리고 배우라는 꿈에 대한 지니의 결핍은 믹키에게 전이되어 그를 온전히 소유하고자 한다. 그러나 그녀의 상실감은 결코 채워질 수 없는, 존재의 빈틈일 뿐이다. 충동은 그렇게 영원히 반복된다. 끝없이 불을 지르는 리치의 행위처럼.
자신의 비극적 결함이 지나치게 로맨틱하다는 것이라 말하는 믹키는 남편이 있는 여자를, 그리고 그 여자와 한집에 사는 또 다른 여자를 저울질한다. 누군가와 ‘고마워서 같이 살고, 적적해서 같이 사는’ 지니는 이 새로운 관계가 비로소 자신을 지옥으로부터 구원해줄 것만 같다. 각자의 존재는 서로의 삶에 균열을 일으키고, 그 틈은 온통 사랑이라는 환상으로 덮인다. 비극을 쓰는 작가라는 자신의 삶을 그럴듯하게 꾸며 줄 등장인물이 필요한 남자와, 아무리 채워도 채워지지 않는 상실감이란 밑빠진 독에 또다시 물을 부어보는 여자, 그리고 어두운 과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의 터전에 뿌리내릴 이유가 필요한 젊은 여자, 믹키의 방백은 이들 관계의 행방을 예측 가능하도록 만들고, 덕분에 관계의 지푸라기라도 붙들려는 지니의 모습은 우리에게 더욱 비참하게 비친다. 영화의 결말 부분에서 모든 관계를 종식시키는 지니의 극단적인 선택은, 우리 안에 도덕이란 이름으로 단단히 억압되어 있을 욕망을 자극함으로써 그녀를 정상의 범주에서 탈락시킨다. 미친 사람이 되어버린 지니는 어설프게 칼을 들고 믹키에게 외친다. ‘날 죽여서 복수하지 그래요!’
캐롤라이나의 실종으로 상심한 험프는 지니의 모습을 보고 미쳤다며 비난을 퍼붓다가 이내 떠나지 말아달라고 간절히 애원한다. 어딘지 모르게 익숙한 모습이다. 그제야 지니는 딸에 대한 상실감을 사랑이란 환상을 통해 덮어보려는 험프에게 자신의 모습을 온전히 투영해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마지막 장면에서 리치가 여전히 불을 지르듯, 그녀 또한 여전히 다른 ‘사랑’을 찾아낼 것이다. 차마 마주할 수 없는 존재의 결핍을 덮어줄 영원한 환상을. 그렇게 인생은 원더 휠처럼 돌고 또 돈다.
-본 텍스트는 문화뉴스의 <남예지의 영화 읽어주는 여자>에 연재하고 있는 칼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