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랫동안 여름은 나에게 곧 ‘바다’였다. 외할머니가 부산에, 친할머니, 친할아버지가 울산에, 이모가 삼척에 살고 계셨기 때문에 여름방학이면 어디에 가던 바다가 있었다. 바다에 들어가 한참을 놀다가 나와서 입술이 새파래진 채로 먹는 치킨은(그땐 고기를 매우 즐겨 먹을 때였지), 정말이지 맛있었다. 파도에 휩쓸려 죽을 뻔한 기억도 몇 번 있는데, 그럴 때마다 신기했던 건, 그 와중에도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살 방법을 궁리하는 내 모습이었다.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굉장히 침착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안될 것 같은데, 그땐 간이 되게 컸다. 수영도 할 줄 모르면서 가라앉았다가 떴다를 반복하며 부표가 떠 있는 곳까지 기어코 가야만 속이 시원했다.
다 커서 생각나는 바다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두 가지가 있는데, 첫 번째는 대학교 1학년 엠티로 제부도에 갔던 기억이다. 으레 그렇듯 바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덩치가 큰 친구가 다른 아이들을 하나 둘씩 빠뜨리기 시작했고, 거의 모두가 빠지고 나서야 숙소에 들어가 씻을 수 있었다. 그 숙소는 밥도 해 먹고 설거지도 할 수 있는 실내의 마당이 방들로 둘러싸인 특이한 구조였는데, 샤워실이 좁은 관계로 그 마당에서 남자애들이 씻고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여자애들이 있는 방의 미닫이문이 열리지 않도록 한 명이 붙들고 있었던 거 같은데(정말 바보같이 한쪽만 붙잡고 있었다), 원래 한시도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인 나는 한시라도 빨리 나가서 놀고 싶었다. 남자애들이 문 밖에서 씻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했던 나는, 이상하게도 안 열리는 쪽의 문을 피해 다른 쪽 문을 힘차게 열었고, 문을 잡고 있던 친구의 안돼!!! 라는 절규와 동시에 허둥지둥 옷으로 대강 몸을 가리고 흩어지는 남자 아이들과 그 사이로 이 엄청난 긴급사태를 모른 채 알몸으로 열심히 머리를 감고 있는 한 친구가 있었다. 물론, 뒷모습이었다. 정말이다...지금도 친구들이 모이면 이 일로 그 친구를 놀리고, 그 친구는 사자후에 가까운 비명을 지른다. 아마 90살이 되도 우리는 그때의 얘기를 하겠지.
두 번째는 친구와 갔던 해운대의 이야기이다. 내가 부산에서 공연이 있었고, 여느 때처럼 친구 한 명이 동행했다. 공연을 마치고 그냥 서울에 올라가기가 아쉬웠던 우리는 해운대 바다에 들렀다. 본격적으로 놀 생각까진 아니었는데, 막상 바다를 보니 물에 들어가지 않을 수가 없었다. 젊은 우리는 뒷일 따윈 생각 안 하고 일단 바다에 들어가 신나게 놀았다. 집에 가야 할 시간 즈음이 되니 슬슬 씻을 곳을 찾아야 했고, 너무나 다행히 공용샤워장을 발견했다. 돈을 내고 들어가서 씻고 나오면 되는 거였는데, 처음인지라 정해진 시간이 되면 물이 꺼진다는 사실을 모른 채 들어갔다. 우린 여유롭게 씻기 시작했고, 불행히도 머리에 샴푸를 듬뿍 바르고 풍성하게 거품을 내고 있던 찰나에 물이 꺼졌다. 옆에서 씻고 있던 몇몇 사람들도 아마 이러한 상황을 예측하지 못한 듯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들은 거의 다 씻은 상황이었고, 우리 같은 최악의 경우는 아니었다. 그때였다. 곤경에 처한 우리를 발견한 사람들이 거의 다 끊긴 샤워기의 물을 마지막 한 방울까지 탈탈 털어가며 우리의 머리를 행궈주려 혼신의 힘을 다했다. 그 순간 나는 정말 이전엔 느껴보지 못한 인류애를 느낄 수 있었다. 처음 보는 우리를 위해 자신의 물을 포기하다니. 거의 눈물을 흘릴 지경의 감동이었다. 우린 다 함께 옷을 입고 옆 화장실에 가서 남은 거품과 모래를 씻으며 웃었다. 아, 그 하나 되는 기분이란. 사지에서 함께 살아 돌아온 전우가 되는 느낌이었다.
참, ‘하나 되는 기분’이라고 하니 내 인생의 가장 행복했던 2002년 여름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졌다. 내가 기억나는 월드컵에 대한 기억은 94년 미국 월드컵부터인데, 경기가 끝나고 나면 아빠가 엄청나게 화가 나 있었던 게 생각난다. 급기야 화내며 집을 나가신 적도 있었다. 아마 월드컵뿐만이 아니라 그 중간에 있던 평가전이나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등 때도 우리나라가 지면 집안 분위기가 한없이 어두워졌다. 그러던 우리나라 대표팀이 2002년에 드디어 아빠를 웃게 만든다. 비단 우리 아빠뿐만이 아니었겠지. 온 국민이 다 같이 환호하고 웃었던 순간으로 그때만 한 때가 있었을까. 아마 광복 이후로는 최고의 순간이 아니었을까 싶다. 이탈리아전이었나, 안정환이 결승 골을 넣자마자 우리 가족은 소리를 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밖에는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벽 사이로 응원을 함께 하던 얼굴도 모르는 동네 사람들이 이미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기쁨의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평소엔 인사도 안 하던 이웃이었건만, 눈만 마주치면 서로 대~한민국을 외치며 그렇게 올림픽 공원까지 행진했다. 난 그때 느꼈던 ‘우리’라는 단어의 끈끈함과 가슴 벅참과 심지어 아름다움을 잊을 수가 없다. 그 이후로 누군가 나에게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냐 물으면 난 망설임 없이 2002년 월드컵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