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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Oct 05. 2018

나를 불편하게 하는 말들

1. 서로에 대해 잘 모르는 상황, 예를 들면 소개팅이나 미팅같은 자리에서 내가 심리학을 전공했다고 하면 꼭 이런 걸 물어보는 사람이 있다. “그럼 제가 지금 무슨 생각하는지 다 알겠네요?!” 또 노래를 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면 노래 잘해요?” 이럴 땐 정말 이 사람이 할 말이 없어서 빈틈을 채우기 위해 아무 말이나 막 하는 건지, 감각이 떨어지는 관계로 최선의 유머가 저것인지 궁금해진다. 심리학과에서는 결코 독심술을 가르쳐 주지 않고, 노래 잘하는 법은 나도 알고 싶다!    


2. 이 나이쯤 되면, 아는 사이긴 하지만 전혀 연락은 없다가 백년 만에 연락이 올 경우엔 그 불길한 느낌이 딱 온다. 아, 청첩장이구나. 전화가 오는 경우도 있고 카톡이나 문자가 오는 경우도 있는데, 과히 기분이 좋지는 않다. 심지어 문자나 카톡으로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이런 경우에는 대부분 결혼식 날이 지나고 나면 다시 연락두절이다. 예전엔 얄미워도 꾹 참고 축하하는 마음을 애써 붙들며 갔는데, 요즘은 그냥 다른 일이 있다며 거절한다. 물론 가끔은 백년 만에 연락이 와도 진심으로 축하해주고 싶은 사람들도 있다. 이렇게라도 연락해준 것이 고맙고 그런 사람들.    

 

3. 자주 이야기하지만 나는 남들보다 몇 배, 아니 몇 십 배로 낯을 가린다. 그런 나에게 아직 친해지지도 않은 상황에서 같이 밥을 먹자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럴 때 정말 난감하지만, 또 마음 한편으로는 나와 친해지고 싶어 하는구나 하는 생각에 고맙기도 하고. 거절을 잘 못하니 결국 밥을 먹으러 가지만, 밥 먹는 내내 이 시간이 즐겁고, 음식이 매우 맛있다는 것을 어필해야만 할 것 같은 부담감에 그 시간이 참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4. 요즘은 이런 일이 잘 없지만 어릴 땐 주변의 친구들이 싸우고 각자의 불만을 나에게 털어놓은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그럼 나는 이 친구 얘기를 들을 땐 이 친구의 감정에 공감해야 하고, 저 친구 얘기를 들을 땐 저 친구의 감정에 공감해야 하기 때문에 굉장히 피로한 상황이 온다. 이런 경우 명심할 것은 이 친구와 저 친구 험담을 하고, 저 친구와 이 친구 험담을 하는 일은 금물이다. 왜냐면 그 둘은 머지않아 언제 싸웠냐는 듯 화해를 할 것이기 때문이다.    


5. 내가 듣는 것도, 하는 것도 불편한 말 중에 최고는 돈 빌려달란 말인 것 같다. 일단 나는 살면서 어떻게든 돈을 빌려야 되는 상황을 만들지 않는 편이다. 물론 앞날은 어찌될지 모르니 쉽게 단정 지어서는 안 되겠지만, 일단 지금까지는 그래왔다. 심지어 카드 할부도 하지 않는다. 그저 있는 만큼만 쓴다. 물론 지갑을 안 가져 나왔다든지 하는 돌발 상황에서 소액의 돈을 빌려본 경우는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최대한 빨리 갚지 않으면 내 머릿속은 온통 그 생각으로 가득차서 잠을 못 이룰 정도가 된다. 지갑을 안 가져나와서 차비가 없는 경우에도 정말 웬만한 거리는 그냥 걸어가는 것이, 밥 먹을 돈이 없으면 그냥 굶는 것이 몸은 힘들지언정 마음은 편하다. 누군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경우에는 내가 빌리는 경우보다는 조금 덜 불편하긴 하지만, 그래도 결국 불편하긴 마찬가지이다. 거액의 돈은 빌려줄 능력도 안 되니 대부분 소액을 빌려주게 되는 경우기는 하나, 만약 이 돈을 돌려받지 못하게 되면 난 굉장히 우울해진다. 그 돈이 아까운 것도 아까운 것이지만, 그 보다는 돈을 빌려간 사람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나와의 관계를 가볍게 생각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게까지 확대해석할 필요는 없을 수도 있지만, 누군가와의 관계가 소중하다면 돈을 빌리는 일도, 빌려주는 일도 모두 굉장히 조심스러운 일일 수밖에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일은 종종 그 관계에 대한 시험이 되곤 한다. 차라리 내가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그냥 주는 게 내가 덜 우울해지는 길인 것 같다. 내가 너무 피곤하게 살고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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