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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Oct 05. 2018

한글날에 즈음하여

1.

  손으로 직접 글씨를 쓸 때만 해도 맞춤법이 이렇게 헷갈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핸드폰이나 컴퓨터 메신저를 이용한 대화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본의 아니게 한글파괴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중요한 메일이나 글을 쓰고 있을 때 아무렇지 않게 맞춤법을 무시하는 나를 발견하고 흠칫 놀란다. 예를 들면, ‘마음이’를 ‘맘이’라고 쓴다든지, ‘안된다’를 ‘안댄다’로 쓴다든지, ‘어떻게’를 ‘어케’라고 쓰는 나를 보며 부끄럽다는 생각이 들어 얼굴이 화끈거릴 때도 있다. 내가 이러니 초등학교 때부터 카톡이나 문자에 익숙한 학생들은 말할 것도 없다. 가끔씩 학생들에게 레포트를 내주고 읽어 보면서 배꼽을 잡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다. 이러한 변화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한 사회의 언어라는 것이 영원불변의 것이 아니고 사회가 변화함에 따라 함께 변화해온 것이라는 점에서, 예를 들면 줄임말이나 신조어 같은 경우에는 무턱대고 잘못된 사용이라 비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도 일견 들고.    


2.

가요 중에는 정말 아름다운 가사의 노래가 많다. 특히 1970-1980년대에 유행하던 포크나 민중가요의 경우에는 음악이라기보다는 차라리 시같이 느껴지는 곡들이 많다. 특히 나는 정태춘.박은옥의 노래 가사들을 정말 좋아한다. 북한강에서, 떠나가는 배 같은 노래들을 듣고 있노라면 기억에도 없는 그 시절이 눈에 보이는 듯 하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압구정은 어디’와 같은 곡들에서는 당시 급격한 개발 속에 변화하는 서울의 모습과 그 변화 속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모습이 굉장히 쓸쓸하게, 때로는 처절하게까지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서울의 지명이나 상호명 같은 것들이 직접적으로 언급되어 더욱 현장감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92년 장마, 종로에서' 中)

모두 우산을 쓰고 횡단보도를 지나는 사람들

탑골공원 담장 기와도 흠씬 젖고

고가 차도에 매달린 신호등 위에 비둘기 한 마리

건너 빌딩의 웬디스 햄버거 간판을 읽고 있지     

비는 내리고

장마비 구름이 서울 하늘 위에

높은 빌딩 유리창에

신호등에 멈춰서는 시민들 우산 위에

맑은 날 손수건을 팔던 노점상 좌판 위에

그렇게 서울은 장마권에 들고     

다시는

다시는 종로에서 깃발 군중을 기다리지 마라

기자들을 기다리지 마라

비에 젖은 이 거리 위로 사람들이 그저 흘러간다     

흐르는 것이 어디 사람뿐이냐

우리들의 한 시대도 거기 묻혀 흘러간다    


('압구정은 어디' 中)

동호대교 위론 바다 갈매기가 날고

철로 위론 전철이 지나가고

강물 위로, 고요한 그 수면 위로

유람선이 휘, 지나가고

강변도로 질주하는 자동차들

가파른 강둑 풀을 뽑는 할머니, 할아버지들

압구정은 어디, 압구정은 어디    


3.

 그나마 친숙한 언어인 영어와 한글을 비교해보면 한글이 얼마나 표현의 스펙트럼이 넓은지를 알 수 있다. 특히 노래 가사만 해도 팝송의 가사들을 보면 사용되는 단어가 가요에 비해 굉장히 한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가요를 영어로 번안한다면, 그 표현의 결에 있어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얼마나 많을까. 예를 들어 이적 노래 ‘거짓말 거짓말 거짓말’ 중에서 ‘그대 말을 철석같이 믿었었는데’를 영어로 표현한다면 얼마나 단조로워질까. 굳게 믿은 것도, 단단히 믿은 것도, 진심으로 믿은 것도 아닌 ‘철석’같이 믿었다는 것을 말이다. 김동률의 ‘그 노래’에서 ‘알량한 후회’를 대체 어떤 영어단어로 정확히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잔향’에서 ‘남 모르게 삭혀온 눈물 다 게워내고’는?    


4.

 태초에 인간이 생존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리 지어 사는 편이 나았고, 그 무리를 성공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현상과 감정과 사물들에 대한 공통된 기호체계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래서 만들어진 것이 언어이고, 언어가 생긴 이후의 인간들은 좀 더 원활한 소통을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그 언어라는 기호에 끼워 맞춰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행복하기도, 기쁘기도, 슬프기도, 떨리기도, 아프기도, 안정적이기도, 불안정적이기도, 외롭기도 한 그 오묘한 감정을 그저 ‘사랑’이라는 한 단어로 뭉뚱그려 놓았다. 그래서 언어는 온전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글은 무지막지하게 복잡한 인간의 감정을 최대한 분별하여 표현하고자 하는 언어라는 점에서 위대하다고 난 생각한다. 하나의 색깔을 표현하는 단어의 다양함만 봐도 알 수 있지 않은가. 장미는 발갛기도, 빨갛기도, 새빨갛기도, 벌겋기도, 뻘겋기도, 시뻘겋기도, 붉기도, 붉으스름하기도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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