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가림의 기억 1
어릴 적 우리집에 내 친구 아닌 누군가가 오면 나는 방에 틀어박혀 없는 척 하는 경우가 많았다. 들킬까싶어 장농이나 벽장 속에 들어가 있는 때도 있었다. 숨 죽이고 손님이 가실 때 까지 기다린다. 아무리 땀이 나고, 다리가 저려도 어쩔 수 없다. 인사하는 것 보다는 그 편이 나았으니까. 나는 부모님 친구 분들을 아저씨, 아줌마 혹은 이모, 삼촌이라는 호칭으로 다정하게 불러본 적이 거의 없다. 그들 앞에만 서면 몸이 배배 꼬이고, 어찌할 바를 몰라서 어색한 웃음만 지어댔다. 학교에 가서 교수님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노래를 하게 되면서 만나는 선생님들 앞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마음은 늘 ‘선생님, 안녕하세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어요, 너무 보고 싶었어요. 건강하시죠?’ 막 이런 말들을 하고 싶은데, 막상 앞에만 가면 '안녕하세요~아..어..음...’ 이러기가 일쑤였다.
낯가림의 기억 2
수능 시험이 끝나고 처음으로 남자친구라는 존재가 생겼다. 하지만 말이 ‘남자친구’였지, 나에겐 그냥 ‘몇번 더 본 낯선사람’에 가까웠다. 특히 나는 허스키하고 굵은 목소리에 대한 컴플렉스로 전화를 하는 것조차 엄청나게 부담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에, ‘남자친구’라는 존재와 좀처럼 친해지기가 힘들었다. 몇번을 고문(?)당하는 기분으로 만난 뒤, 결심을 했던 것 같다. 이렇게는 안되겠다, 그냥 헤어지자! 하지만 ‘낯선사람’에게 상처를 줄 수도 있는 말을 꺼내기란 정말 어려웠고, 보다 못한 내 친구는 헤어지자고 말했을 때 그쪽에서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경우의 수를 모조리 적어 그 상황에 대한 나의 대답을 모조리 대사로 적어주었다. 이것만 읽으라고 신신당부한 뒤, 전화를 걸었다. 철저한 준비에도 불구하고 난 결국 말을 꺼내지 못했고,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미안하지만 이후에 그 친구가 나인척 하고 전화를 해서 헤어져줬다. 내 친구도 목소리가 허스키하고 굵었다. 그렇게 내 첫번째 남자친구는 내 친구와 헤어졌다.
낯가림의 기억 3
나는 ‘무대체질’이 전혀 아니다. 어떻게 여지껏 무대에 설 수 있는지 나도 그게 늘 신기하다. 남들은 무대 뒤에서 떨리다가도 무대에 막상 올라가면 안 떨린다던데, 나는 무대 뒤에서 떨다가 올라가면 급기야 욱하고 토할 것만 같은 적이 많았다. 나의 첫 데뷔무대는 당시 김광민, 이현우씨가 진행하시던 ‘수요예술무대’였는데, 무대에 올라가서 마이크를 잡은 오른손이 너무나 떨려서 왼손으로 꽉 붙든 뒤 눈을 감고 노래했던 기억이 난다. 너무 떨다보니 정신이 없어 딱 그것밖에 기억이 안난다. 노래를 어떻게 했는지, 무대가 어땠는지는 하나도 기억에 없다. 이후로도 ‘무대공포증’은 계속 됐다. 무대 위에서 떨다보면 목이 건조해져서 물을 마셔야는데, 물을 마시기 위해 물컵을 든 손이 떨려 물이 쏟아질 정도였다. 물론 경험이 쌓이다보니 떨리는 나를 숨길 수는 있었다. 호흡도 흔들리지 않도록, 표정도, 손짓도, 그 누구도 내가 토할 것 같은 상태라는 걸 알 수 없도록. 훌륭한 연기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이가 들면 무대공포도 좀 나아지겠거니 했는데, 서른살이 넘어가며 점점 더 심해져서 무대에 올라가면 집중도 안되고, 그러니까 가사도 다 까먹고, 노래도 틀리고 그러는 통에 한동안은 누군가 공연하자고 불러도 온갖 핑계를 대면서 도망쳐야만 했다. 그 땐 무대 위의 나에 대해 믿음이 전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연주자 한분이 이런 내게 ‘넌 혼자가 아니야’ 라는 말을 해준 적이 있다. 그 분은 별 생각없이 한 말일 수 있으나 나에게 그 말은 정말 어두운 터널 속으로 갑자기 들어온 한줄기 빛처럼 반짝거렸다. 그래, 왜 나는 늘 혼자라고 생각했을까. 내가 실수하면 늘 감싸주는 동료들이 있는데! 그 이후로 마치 드라마처럼 무대공포가 싹 낫고 새 사람이 되었다! 로 끝나면 참 좋았겠지만 그런건 아니었다. 여전히 나는 무대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하지만 그 일을 계기로 나의 무대공포를 냉정하게 바라보고 극복해보고자하는 용기가 생겼고, 그래서 나는 지금도 이런저런 실험을 해본다. 무대에 올라가기 전 어떤 음악을 들으면 좋은지, 어떤 음료가 좋은지, 무대 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덜 긴장될지, 긴장될 때 발성과 호흡을 어떻게 해야 할지 등등에 대해. 이러다보면 언젠가는 무대위에서 진정 자유로울 수 있는 날이 오겠지!
낯가림의 기억 4
내 대신 남자친구와 헤어져준 친구처럼 내 주위에는 다행히도 내 성격을 보완해 줄 좋은 친구들이 많았다. 공연하러 가서 딱히 혼자 있을 수 있는 공간이 없으면 난 화장실에 있는 게 편했다. 화장실에서 목도 풀고, 간식도 먹고 그랬는데, 이런 나를 위해 공연장에 따라다니던 친구들도 있었다. 내 대신 선생님이나 동료들과 얘기도 나눠주고, 내가 긴장을 풀 수 있도록 수다도 떨어주던 친구들. 지금 생각해보면 돈도 한 푼 안받는 매니저가 있었던 셈이다. 심지어 계약 문제로 회사와 미팅을 할 때도 함께 나가서 내가 말 못하는 부분들을 대신 얘기해줄 때도 있었다. 나와 같이 다니다가 내가 잘 가는 재즈클럽의 음악감독님 밑에서 아예 직원으로 일했던 친구도 있다. 내가 술자리에서 아무말도 못하고 웃는 얼굴인 채로 굳어 있으면 잠시 나가자고 해준다거나(낯선 정도에 따라 화장실 간다는 말을 못해서 끝까지 참고 앉아 있을 때도 있었다), 내가 원래는 이렇게 재미없고 말없는 아이가 아니라는 것을 설명해주는 것도 친구들의 일이었다. 친구들 덕분에 그나마 인간답게 살고 있나보다 싶을 때도 많다.
낯가림에 대한 나의 결론
낯을 가린다는 것, 다시 말해서 상대에 따라 나의 말과 행동을 다르게 보여준다는 것은 내가 관계의 중심을 나보다는 남에게 둔다는 뜻인것 같기도 하다. 좋게 생각하면 타인에 대한 배려에서 출발하는 것일 수도 있으나, 결국 나도, 상대방도 불편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결국엔 처음의 의도가 왜곡되어 버린다. 나는 타인들이 모여있는 자리에서 그들과 내가 다르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하면 극도의 낯가림의 상태로 들어가게 되는데, 막상 겪어보면 어떤 사람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외국인이 아니고서야 우리 모두는 같은 사회, 같은 문화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이므로 세계를 바라보는 것에 있어 전혀 다르기는 힘들다. 심지어 외국인들도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가끔씩은 사람 사는게 다 똑같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러니 누군가의 말이, 표현이 나와 조금 다르다고 해서 지레 겁먹고 ‘낯가림’의 모드로 들어갈 필요는 없다. 분명 어떤 부분에서는 반갑게 만나게 될테니. 우린 서로에게 ‘낯선 사람’들이지만, 어떤 점에서는 같은 세상을 함께 살아내고 있는 동지들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