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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Oct 19. 2018

 자아존중감에 대하여

#1. 나의 자존감은?

 임보라씨가 자아존중감이란 주제를 제안했을 때(나는 TBS 달콤한 밤 황진하입니다의 월요일 코너에 재즈피아니스트 임보라씨와 격주로 출연하고 있다), 내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자아존중감(Self-esteem)이 무엇인지에 대해 찾아보는 것이었다. 이런저런 글들을 찾아본 후 내가 내린 결론은 자아존중감이란 ‘스스로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는 것, 이로써 스스로 행복해질 권리와 능력이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의 자아존중감은 어느 정도인가. 평소 나의 행동과 내가 일으킨 사건들을 돌이켜보건데 형편없이 낮을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감사하게도 로젠버그라는 학자가 누구나 쉽게 자아존중감을 측정해볼 수 있는 ‘자아존중감 척도’ 라는 것을 만들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본 결과, 다음과 같았다.                                             


1. 나는 내가 다른 사람들과 같이 가치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2. 나는 좋은 성품을 가졌다

3. 나는 대체적으로 실패한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4.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일을 잘 할 수 있다

5. 나는 자랑할 만한 것이 별로 없다.

6. 나는 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7. 나는 내 자신에 대해 대체적으로 만족한다.

8. 나는 내 자신을 좀 더 존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

9. 나는 가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10. 나는 가끔 내가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총 10개의 문항으로 이루어져있고, 각 문항은 5점 척도로 답을 하게 되어 있었다. 1, 2, 4, 6, 7문항은 매우 그렇다가 5점, 나머지 3, 5, 8, 9, 10 문항은 역척도로 매우 그렇다가 1점이었다. 점수가 높을수록 자아존중감이 높다는데, 난 29점이었고 만점이 50점이라고 볼 때 난 중간 정도의 자아존중감을 가졌구나, 라고 혼자 판단했다. 1번, 나는 가치있는 사람임에는 틀림없었다. 가족이나 직장 등에서 내가 맡고 있는 역할들이 있고, 그 부분에서 내가 없어지면 당황스러운 상황이 일어날 것임에는 분명하니까. 2번, 나는 좋은 성품을 가졌을까? 운전할 때의 나를 돌이켜보면 그다지 좋은 성품을 가진 것 같지는 않다. 3번, 나는 실패한 사람일까? 성공한 사람도 아니니 중간 정도라고 하자. 4번, 나는 대부분의 사람들과 같이 일을 잘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예전부터 잘 알고 있었다. 예를 들면 어린 시절부터 공부든 음악이든, 미술이든, 체육이든 최고는 아니어도 늘 평균 이상은 했다. 보통 음악하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하면 회사원이나 공무원처럼 매일 같은 시간에 출퇴근하는 일은 못하겠다는 사람이 대부분인데, 나는 평생 뮤지션으로 살아왔지만 지금 당장 출퇴근하는 일을 해야 한다면 언제 뮤지션이었냐는 듯 매우 잘 적응할 것이 분명하다. 5번, 나는 그래도 내가 부른 노래들을 아주 가끔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다. 6번과 7번이 문제였다. 나는 대체적으로 내 자신에 대해 부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으며, 늘 만족하지 못한다. 내가 하는 모든 일에는 분명히 어딘가에 구멍이 있을 것만 같고, 운도 따르지 않을 것 같으며, 늘 불길한 상상이 따랐다. 중요한 이메일을 보내고 나서도 내가 주소를 제대로 적지 못했거나 엉뚱한 첨부파일을 보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몇 번이고 다시 확인해본다. 심지어 가끔씩은 스케줄표에 내가 적어놓은 내용들이 혹시 실수로 다른 칸에 적힌 것은 아닌가 의심할 때도 있다. 비록 5번에서 나의 노래들을 자랑하고 싶을 때가 있다고 했지만 그건 정말 아주 가끔있는 일이며, 대부분의 경우 내 노래들이 부끄럽다. 요즘 조금씩 쓰고 있는 내 글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글을 쓴 직후에는 간혹 ‘오, 신이시여 이게 정말 내가 쓴 것이란 말입니까’하는 느낌이 들 때도 있으나, 시간이 흐른 후에 보면 이불킥을 하게 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래서 8번, 나는 나를 좀 더 존중하고 싶은 마음이 늘 절실하며, 아주 적은 확률로 불길한 상상들이 실제로 일어나게 되면 9번, 내 자신이 쓸모없게 느껴지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10번, 누군가가 죽도록 미워져서 온갖 저주를 퍼붓게 될 때면 동시에 난 내가 그다지 좋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을 느끼게 된다.


#2. 자아효능감이 생각났어!

 심리학과를 다니던 시절, 공부를 남부럽지 않게 안 했지만 자아존중감을 듣자마자 자아효능감(Self-efficacy)이란 단어가 떠올랐다. 이것은 내가 어떤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다는 믿음, 어떤 과제를 수행하기 위해 내 자신을 잘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 같은 것이었다고 기억이 된다. 난 평소에 대체적으로 내 자신에게 만족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자아존중감은 낮을 것이라 예감했지만, 왠지 자아효능감은 높은 사람일 것이란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위의 문항 4번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이상하게도 난 예전부터 무슨 일이든 남들만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이건 자만심과는 조금 다른 것 같은데, 자만심, 자존심 같은 것들이 타인과의 경쟁관계에서 자신의 역량을 과장하기 위해 갖게 되는 것이라면 자아효능감은 온전히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것이다. 나는 어떤 일을 하는 데에 있어서 나를 통제해야만 하는 경우, 예를 들면 잠을 줄여야 한다든지, 노는 시간을 줄여야 한다든지, 활동량을 늘려 몸을 혹사해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에 대해 늘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새로운 상황에 대해 순간 스트레스는 받을지언정 적응을 잘할 자신도 있었다. 새로운 음악에 대해서 그랬고, 새로운 학업, 새로운 사람들에 대해 그래왔다.

 내가 꽤 괜찮은 자아효능감을 갖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생각해보니, 결국 경험이었던 것 같다. 일전에 말했듯이 난 거절을 잘 못하는 병이 있었던 탓에 무슨 일에든 일단 예스를 거듭하게 되었다. 그런데 하고보니 그 결과들이 그다지 나쁘지는 않았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다보니 자아효능감이 높아지게 됐던 것 같다. 자아효능감이 높아서 좋은 점은(물론 검증된 건 아니고 내 ‘느낌적인 느낌’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아주 다양한 일들을 하고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난 백세시대를 맞이하여 평생 한 직업만을 갖는 삶을 영위하는 것이 아주 지루한 삶이라고 생각하는 일인이기 때문에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내 삶의 질을 위해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수업을 하다보면 가끔 자아효능감이 매우 낮은 학생들을 발견한다. 1교시 수업은 잠이 많아서 못와요, 어려운 음악은 못해요, 영어를 못해서 팝송을 못 불러요 등등. 그럴 때마다 나는 일단 해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결과의 질에 관계없이 시도한 것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마치 나라를 구한 것 같은 칭찬을 해준다. 그러면 그 학생은 백발백중 그 과제에 대해 자신감을 갖게 되고 심지어 좋아하게 된다. 이로써 교육에 대한 내 자아효능감은 또 높아지고 이런 일들이 반복 되다보면 학생들도 자아효능감이 높은 사람이 되겠지. 바람직한 선순환이군.      


#3. 그래서 자아존중감이랑 자아효능감이 뭐?

 자아효능감이 온전히 내가 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듯, 자아존중감도 그런 것 같다. 이것은 자만심이나 자존심처럼 타인과의 관계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감정들이 아니다. 한 마디로 내가 나를 믿고 사랑해야만 가질 수 있는 것들이다. 이게 왜 중요하냐고? 그건, 내가 행복하기 위해서는 우선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두에게 사랑을 받는다 하더라도 내가 나를 사랑하지 않으면 행복은 오지 않는다. 왜냐하면 타인의 관심과 사랑은 언제나 지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 친구들과의 사랑도, 이성 간의 사랑도 영원할 수는 없다. 언젠간 나를 떠나고, 나를 슬프게 하고, 나와 멀어진다. 그럴 때마다 흔들리고 상처받고 무너진다면 나를 온전히 지탱할 수가 없다. 나라는 존재는 오로지 나로 인해 지속될 수 있다. 내가 나를 믿고, 의미를 부여하고, 소중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한다. 나를 의미화하는 것은 오직 나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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