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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Oct 20. 2018

세상의 모든 변화는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일상 속 민주주의를 위한 성북시민정치학교

 현재 우리나라는 국가의 구성원들이 투표를 통해 뽑은 대표자들이 정부나 의회를 구성하여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채택하고 있다. 사회의 규모가 커지고 다양한 이해관계들이 공존하게 되면서 이러한 간접민주주의 제도는 구성원들의 다양한 의견을 전문가인 대표자들이 수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공간적, 시간적, 경제적 효율성이 높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구성원들이 투표 이후에는 별다른 정치적 참여를 하지 않게 됨으로써 대표자들의 부분적 의사만이 반영된 반쪽짜리 정치가 될 우려가 있으며, 대표자들을 중심으로 관계자들의 권한이 남용될 수도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지난 과거를 통해 경험한 바 있다. 


 스웨덴에서는 이러한 간접민주주의가 가질 수 있는 단점을 보완하려는 방안의 하나로 1968년부터 시작되어 매년 고틀란드섬의 비스뷔에서 열리고 있는 알메달렌 주간(Almedalen Week)을 통해 정치 소통의 장을 마련하고 있다. 정당 관계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까지 매년 1만여 명이 모여 사회문제에 대해 의견을 나눌 수 있는 이 행사는 스웨덴의 참여민주주의의 중요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 이러한 행사는 북유럽 주변국으로도 전파되어 덴마크, 노르웨이, 핀란드 등에서도 개최되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이들 북유럽 국가들의 시민참여를 기반으로 한 지방자치제도와 분권은 간접민주주의 제도를 성공적으로 보완 및 강화하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시민들이 생각하는 정책을 함께 논의하기 위한 ‘정책박람회’가 2012년부터 열리고 있으며, 올해 11월에는 유권자의 정치 참여와 소통을 통해 유권자 중심의 건전한 민주정치발전을 도모하기 위한 ‘유권자 정치페스티벌’을 개최함으로써 정치 참여의 장을 점차 확대해 갈 계획 중에 있다. 이러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에 있어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정책 결정에 관련된 투표나 정책에 대한 사후 비판 보다는 정책 결정의 과정에 있어 시민들이 지속해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문화가 형성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규모의 국가적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들이 직접 참여하기란 현실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다. 때문에 시민들의 지속가능한 정치 참여를 위해 보다 바람직한 첫 단계는 현재 내가 사는 마을 단위의 일상적 정치에 대해 관심을 가져보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풀뿌리 정치’의 시작이 될 수 있다.   


 2017년부터 성북구에서는 지역 시민사회의 자생적 활동 생태계 조성을 위해 활동 주체들의 역량을 강화하고 지역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성북구 시민협력플랫폼구축사업을 진행하고 있는데, 이 사업의 추진단인 ‘성북시민협력플랫폼’에서는 최근 성북시민정치학교를 통해 일상 속 생활 정치와 풀뿌리 정치의 토양을 마련하기 위한 학습의 장을 열고 있다. 9월 1일부터 시작된 본 커리큘럼은 시민정치란 무엇인가에 대한 오리엔테이션과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이해와 실습을 거쳐 지난 9월 29일과 10월 6일에는 우리 마을의 예산구조를 이해하고 감시할 수 있는 역량을 쌓기 위한 강좌가 진행되었다. 


 특히 10월 6일의 수업에서는 본 강좌에 참여하고 있는 성북구민들이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는 ‘성북동 문화재 야행’, ‘성북동 근현대문학기념관 조성’, ‘길음동 문화복합미디어센터 건립’, ‘석관동 공영주차장 건립’, ‘삼척 수련원 신축 건립’ 등의 다양한 사업들에 대해 예산자료를 중심으로 각자의 의견을 나누어 보았다. 예산 관련 정보는 성북구의 중기지방재정계획 자료를 통해 상세히 알아볼 수 있었는데, 이는 성북구청 홈페이지의 ‘열린행정정보’의 예산자료실에서 누구나 손쉽게 다운로드를 받을 수가 있다. 일반적으로 예산서는 1년을 기본단위로, 결산서는 과거의 자료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는 것에 비해, 중기지방재정계획은 5년 정도의 장래 계획을 전제로 하고 있어 우리 구가 앞으로 중점적으로 다룰 사업이 무엇인지에 대해 예측해볼 수 있는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중기지방재정계획 자체가 구속력이 있는 계획안은 아니므로 예산의 액수보다는 투자계획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방재정법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장은 예산 또는 결산의 확정 또는 승인 후 2개월 이내에 예산서와 결산서를 기준으로 앞에서 언급한 중기지방재정계획을 비롯하여 세입·세출예산의 운용상황, 재무제표, 채권관리 및 기금운용 현황, 공유재산의 증감 및 현재액, 지역통합재정통계, 지방공기업 및 지방자치단체 출자·출연기관의 경영정보, 투자심사사업, 지방채 발행사업, 민간자본 유치사업, 보증채무사업의 현황 등을 공시할 의무가 있다. 지역통합재정통계에서는 일일이 찾아보기 힘든 공기업이나 공단, 문화재단, 장학재단 등의 재정자료가 포함되어 있으며, 투자심사사업 및 민간자본 유치사업의 현황 등을 통해서는 우리 구에서 관심을 두고 있는 사업이 무엇인지, 그리고 각 사업이 어떠한 계획을 갖고 있는지에 대한 사업설명서도 함께 찾아볼 수가 있다.


 이러한 재정정보를 살피고 문제점을 발견하여 민원을 제기하기 위해서는 그 사업이 어떤 단위사업의 세부사업인지, 그리고 그 단위사업은 어떠한 정책사업의 일부인지를 확인하는 일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실제로 그 세부사업을 담당하고 있는 공무원들은 민원을 받는다고 해도 그 사업 자체의 방향성을 바꿀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재정정보를 통해 문제점을 발견하여 그 사업의 방향성을 바꾸고자 하는 경우에는 우선 사업을 포함하고 있는 정책의 지표를 파악하고, 이를 변화시키려는 방안을 강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김상철 나라살림연구소 연구위원은 이날의 강좌를 마무리하며 마을 주민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재정공시자료를 독해하는 시간을 가져볼 것을 제안하였다. 이러한 모임이 활성화된다면 주민들이 일상 속에서 지속적으로 마을의 예산을 감시함으로써 정책 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변화는 이렇게 작은 것들로부터 시작된다. 성북시민정치학교는 매주 토요일, 성북구 아리랑로에 위치한 무중력지대 내의 세미나실에서 10월 27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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