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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Nov 14. 2018

수능시험의 기억

#1. 내 수능의 기억


재수를 하지 않아 수능의 기억이 한 번밖에 없다는 사실은 참 다행이긴 하다. 수능을 볼 무렵, 나는 꽤 공부를 잘했던 것 같다. 중학교 1, 2학년 때는 그저 그렇던 성적이 중학교 3학년 때는 갑자기 반에서 1등을 하는 바람에 선생님의 관심을 한몸에 받아 외고 시험을 준비했던 것처럼, 고등학교 1, 2학년 때는 역시 그저 그렇던 성적이(실은 수학 같은 경우에는 20점을 맞는 일이 다반사였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자 거짓말처럼 반에서 1등을 하게 되었다. 그만큼 나는 벼락치기에 능했다.

그러나 암기로만은 한계가 있었던 수학이 항상 내 발목을 잡았다. 부끄럽지만 지금도 나는 돈 계산이나 날짜 계산을 할 때 손가락으로 세지 않으면 안되고, 계산 후에도 그 답에 대한 확신이 없을 정도로, 숫자는 나에게 공포였다. 그래서 나는 수능시험 하면 수학 시간이 가장 강렬히 기억에 남아있다. 수학 시험지를 받아든 순간, 나는 1번부터 문제를 읽고 또 읽어도 풀 수가 없었다. 수학이 결국 내 인생을 망하게 할 것이란 공포심이 극에 달해서 아예 난독증이 왔던 것 같다. 심장은 두근거리고, 눈물이 나올 것 같은 순간을 견디며 거의 모든 문제를 찍었던 것 같다.

시험이 끝나고 피씨방에서 답을 맞추고 펑펑 울면서 엄마한테 전화를 했다. “엄마, 나 재수할 거야.” 그리고 롯데월드에 가서 오늘이 생의 마지막인 것처럼 놀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재수할 결심으로 일단 점수에 맞춰 입학한 학교에서 나는 그만 평생의 친구들을 만나 버렸고, 그 녀석들이 너무 좋아 재수 생각은 싹 달아났다.

(참고로 난 수학을 피해서 문과로 갔건만, 내가 입학한 심리학과에서는 예상치도 못했던 통계라는, 온통 숫자 계산 투성이의 과목이 도사리고 있었다..으윽!)


#2. 입시, 우리 땐 어땠냐면.


입시에 닥친 순간에는 그것이 마치 내 일생을 결정하는 지표가 될 것이란 두려움이 나와 가족의 일부를 지배한다. 소위 ‘좋은 학교(넓게는 ‘인in 서울’이나 ‘2호선 대학’ 혹은 특정 학교들을 지칭하던 ‘SKY’ 등등)’에 입학해야만 앞으로의 인생에 행복을 허락받을 수 있는 것인 양, 그렇지 않으면 인생의 패배자가 되어 아무리 노력해도 ‘그저 그런’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처럼 우리를 몰아가던 학교와 학원의 지배자들. 그 시절엔 그런 공포가 학창시절 내내 계속되었다. 오죽하면 문화 대통령 서태지는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교실 이데아)”라고, 소녀들의 영원한 오빠 젝스키스는 “학교 종이 땡 하고 울리면서 우리들의 전쟁은 다시 시작된다(학원별곡)”라고 외쳤을까.

요즘은 입시나 학업에 대한 부담감을 담은 노래들을 찾아보기가 힘든 것 같다. 인구가 줄어서 입시에 대한 부담이 줄어든 탓일까, 아니면 이제는 ‘좋은 학교’가 인생의 행복을 결코 보장해주지는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이들이 늘어났기 때문일까.



#3. 수능날의 풍경


시대는 변했지만 예나 지금이나 수능날의 풍경은 비슷하다. 학교 근처에서 팔고 있는 합격이란 글자로 포장된 온갖 엿과 사탕과 떡, 수험생 할인 광고들, 간절함을 담아 학교 앞을 서성거리는 부모님들, 그리고 긴장된 표정의 학생들. 나는 송파에 있는 창덕여고에서 수능시험을 봤는데, 창덕여고의 넓은 운동장에 들어서는 순간 괜스레 눈물이 났던 기억이 난다. 일단 두렵기도 했고, 이제 드디어 끝이라는 생각, 그간의 고생스런 기억들이 한꺼번에 밀려오는 이상한 기분이었다. 그때가 떠올라서 그런지 수능시험 보러가는 학생들을 보면 늘 마음 한 켠이 울컥한다.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중독성있는 반복적인 후렴이 머릿속에 계속 남아 집중을 할 수 없게 만드는 곡들을 ‘수능 금지곡’이라고 해서 각별히 조심해야 한다는 재미있는 글들을 종종 볼 수가 있었다. 특히 모 음악플랫폼에서 10대 사용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시험을 앞두고 피해야 하는 중독성 갑(甲) 노래’ 조사에서 김연자의 <아모르파티>가 1위를 했고, 이어서 태진아의 <진진자라>, 레드벨벳의 <덤 덤>, 프로듀스 101의 시즌 2 주제곡 <나야 나>, 동요 <상어가족> 순으로 나타났다는 기사를 보고 노래들을 하나씩 찾아 들어보며 ‘아, 그래 큰일 나겠다’ 싶어서 웃음이 절로 났다. 다행히도 내가 수능시험을 보던 시절에는 이런 식의 후크송들이 아직 유행하기 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도 ‘수능금지곡’이 있었는데 머라이어 캐리의 <My All>이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당시 언제부턴가 긴장하거나 집중해야되는 순간이 오면 어김없이 나는 머릿속으로 이 노래를 열심히 부르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안을 견디기엔 괜찮은 방법이었지만, 시험문제를 풀 때 머릿속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에 수능시험 몇 주 전부터는 절대 부르지도, 듣지도 않았었다.


노래추천 1. Desree의 <You Gotta Be>
이 노래 또한 반복적인 후렴으로 ‘수능금지곡’이 될 소지가 있으나, 수능이 이미 끝났으므로. 가사 몇 구절을 설명해보자면,

Listen as your day unfolds 당신의 날이 열리는 것을 들어보세요
Challenge what the future holds 미래의 일들에 도전해 보세요
Try to keep your head up to the sky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고 시도해보세요

You gotta be hard, you gotta be tough, you gotta be stronger
당신은 더 단단해져야 하고, 거침없어져야 하고, 강해져야 해요

You gotta be cool, you gotta be calm, You gotta stay together
당신은 더 침착해져야 하고, 차분해져야 하고, 함께할 수 있어야 해요

수능시험은 끝났지만, 아직 입시는 끝나지 않았다. 누군가는 원하는 학교에 갈테지만, 누군가는 그렇지 못할 수도 있고, 논술시험을 준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다음 수능을 준비해야겠다고 결심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모두가 더 단단해지고, 강해지고, 침착해지길. 결과에 상관없이 당신의 세상은 어김없이 펼쳐질테니.

노래 2. Sarah Mclachlan의 <Angel>
“힘든 하루가 끝나고 여러 생각들이 떠오를 때, 저를 편안하게 놔두세요. 그러면 오늘밤 저는 평화를 찾을 수 있어요.”라고 노래하는 곡. 수능시험이라는 힘든 시간이 지나고 앞으로도 남아있는 험난한 입시 여정에 지치지 않기 위해 잠시나마 쉼이 되시길 바라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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