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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예지 Jan 28. 2019

스윙의 시간성 2

 

 재즈에서의 스윙이란 개념의 시간성은 위의 두 가지 상이한 시간의 개념을 모두 포함한다. 스윙은 고정된 시간의 개념 속에서만은 그 의미를 찾을 수가 없다. 다시 말해서 스윙은 고정된 악보로 표기할 수 없으며, 기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그 무엇이다. 스윙하기 위해서는 우선 연주자들이 공유하는 규칙적인 비트가 필요하다. 이를 중심으로 연주자들은 리듬을 당기거나(push) 밀어서(layback) 반복적인 긴장과 이완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이것이 스윙을 만들어내는 과정의 시작이 된다. 스윙은 이렇게 계속되는 변화의 과정 속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여기서 다시 베르그송의 ‘지속’으로 돌아가면, 순수지속이란 고정시길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시간의 일정한 지점을 ‘현재’라고 이름 붙인 순간, 그것은 곧 과거가 되어 버린다. 시간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음악에서의 비트 또한 분할하여 고정된 ‘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베르그송의 현재란 수학적인 ‘점’이 아니라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연속되는 하나의 지평 혹은 차원이 된다. 인간의 감각이란 과거에서 기인하며, 운동은 미래를 지향한다. 예를 들면 내가 가시에 손끝을 찔렸을 때, 아픔을 느끼는 것은 이미 과거의 상황에 대한 신체의 반응이며, 고통을 유발한 가시를 빼려고 움직이는 것은 고통이 사라진 미래를 지향하는 것이다. 베르그송의 현재는 이러한 과거와 미래가 연결된 연속이며, 그래서 점으로는 표현할 수 없는 ‘넓이’를 갖는 차원의 개념이 되는 것이다. 베르그송은 멜로디에서 이러한 시간의 기본 개념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멜로디는 음과 음 사이에 다양한 질과 규정을 갖고 있음에도, 어우러져 흘러감으로써 그 차이와 구별된 성격을 없앤다. 한 음은 다음에 오는 음과 연속성을 가짐으로 분리없이 계속된다.

 

 스윙은 규칙성을 띠고 연속되는 비트 속에서 연주자의 현재를 이루는 감각과 운동이 어우러져 밀거나 당기면서 만들어진다. 연주자들은 감각을 통해 비트를 인지하고, 함께 하는 연주자들의 리듬 또한 인지한다. 그리고 그러한 복층적 리듬 속에서 자신의 리듬을 적절한 순간에 위치시키기 위해 운동한다. 드럼과 베이스의 리듬적 관계, 솔로 주자와 리듬 섹션의 리듬적 관계 속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긴장과 이완은 끊임없이 반복되며, 연주자와 청자 모두가 동의하는 흐름, 즉 스윙을 만들어낸다. 이것이 다양한 질과 규정을 가진 연주자들의 리듬이 어우러지는 지점이 된다. 여기에서 주목해야할 것은 절대적 시간개념과 상대적 시간의 개념 사이의 변증법이다. 스윙은 연주자 모두가 규칙적인 비트에 정확히 맞춰 연주한다고 해서 생겨나는 것도 아니고, 모두가 규칙성을 무시한 채 자유롭게 연주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찰스 카일(Charles Keil)은 스윙의 이러한 음악적 특성을 ‘참여적 불일치(Participatory Discrepancies)’라는 자신의 용어를 통해 설명한다. 카일에 의하면 ‘참여적(participatory)’이란 자연이나 사회 노동으로부터의 ‘소외’와 반대의 뜻을 의미하며, ‘불일치(discrepancies)’란 ‘discrepare’라는 라틴어에서 유래된 단어로 일관되거나 일치하지 않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뜻을 가진다. 그는 ‘불일치’를 참여적 의식이나 운동에 있어 음악이 강력한 수단이 되는 현상을 설명하기에 좋은 용어라고 말한다. 재즈에서 드러머가 만들어 내는 일정한 비트 안에서 일어나는,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솔로 주자와 리듬 섹션 사이의 작은 불일치가 우리를 스윙하도록 만든다는 것이다. 이를 본 고에서 주목하고 있는 스윙의 시간성의 관점에서 다시 말하자면 연주자들이 규칙적인 비트를 공유하고 있는 것, 그리고 서로의 연주를 들으며 자신의 자리를 찾으려고 하는 것이 참여적이라고 할 수 있으며, 각자가 다른 리듬적 표현, 예를 들면 ‘밀고 당기는 정도의 차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불일치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스윙은 이러한 이원적 세계의 변증법 속에서 탄생한다. ‘불일치’의 정도는 수적 체계로 고정시키기 어려운 특성을 가진다. 왜냐하면 이 ‘불일치’를 만들어내는 데에는 수많은 변인이 작용하며, 그 변인들은 연주 시에 통제될 수 없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스윙이 만들어지는 데에는 영향을 미치는 변인으로는 연주자의 기억이나 악기의 숙련도, 음색, 블루스의 굴절 정도, 내면적인 감정이나 인지과정 뿐만 아니라, 함께 하는 연주자들과의 상호작용이나 청자들의 반응까지도 포함된다.   


 한편 찰스 카일은 레너드 마이어(Leonard Meyer)가 『Emotion and meaning and music』에서 언급한 음악의 ‘구체화된 의미(Embodied Meaning)’를 통해 ‘생성된 감정(Engendered Feeling)’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다. 마이어의 ‘구체화된 의미’가 고정된 악보나 레코딩된 음악에 한정된다면 카일의 ‘생성된 감정’은 재즈와 같이 연주를 통해 의미가 만들어지는 음악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용어이다. ‘구체화된 의미’가 작곡되어진 음악에서, 그리고 그 음악의 재현에서 발생한다면, ‘생성된 감정’은 즉흥적인 음악에서, 그리고 유일한 연주에서 발생한다. 악보나 레코딩으로 고정된 음악은 음악문법적인 분석을 통해 그 의미를 구체화시킬 수 있다. 그러나 재즈와 같이 즉흥연주에 비중을 둔 음악은 그보다는 연주 과정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감정들이 음악의 의미와 연결된다. 또한 ‘구체화된 의미’가 악보의 재현을 통해 표현된다면, ‘생성된 감정’은 연주되는 순간 생겨났다가 연주가 끝나면 사라진다. 매 순간의 연주는 유일한 연주가 되며, 재현적 연주란 존재할 수가 없다.


 카일은 ‘생성된 감정’이 “맥박에 대항하여 당기는 것(Pulling against the pulse)”으로부터 발생한다고 보았다. 여기서 맥박이란 비교적 일정하고 규칙적인, 곡 전체를 이끌어가는 비트를 의미하며, 이에 대항하여 박을 움직이는 것에서 발생한다는 것이다. 결국 스윙의 리듬은 지속적으로 변화하며 생성되는 ‘살아있는 리듬’인 것이다. 매튜 버터필드는 이를 설명하기 이해 만들어진 앙드레 오데어(Andre Hodeir)의 용어인 ‘생명적 욕동(Vital Drive)’을 언급한다. 이는 연주가 행해지는 상황 속에서 음악을 살아있게 하고, 청자들이 움직이도록 유도하며, 느낌이 충만하게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정신분석에서는 인간의 사고와 감정을 유발하는 내면적 동기를 ‘욕동(drive)’이라고 하며 이러한 내면적 힘이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이론을 ‘욕동이론(drive theory)’라고 한다. 이에 ‘Vital Drive’ 또한 인간의 내면에 작용하여 행동으로 이어지게 만드는 음악적 힘을 의미하기에 ‘drive’를 ‘욕동’으로 번역하고자 한다).      


 결국 우리는 여기서 베르그송의 ‘지속’으로서의 시간개념을 다시 상기하지 않을 수 없다. 스윙은 참여적 불일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악보로 고정되기 어려운 음악이며, 연주되는 과정에서 그 의미가 생성된다. 그리고 스윙은 연주자들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리듬적인 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이 연주자 모두가 공유하는 규칙적인 비트를 기반으로 하며, 즉흥연주이기는 하나 사전에 합의된 고정된 화성진행이나 테마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스윙의 시간성은 ‘존재론적 시간’과 ‘심리적 시간’, ‘개량된 시간’과 ‘살아있는 시간’이 공존하는 변증법적 개념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참고문헌


소광희, 『시간의 철학적 성찰』, 문예출판사, 2001.


Charles Keil, 「Participatory discrepancies and the power of music」, 『Cultural Anthropology』 volume 2-Number 3, 1987.


Charles Keil, 「Motion and feeling through music」, 『The Journal of Aesthetics and Art Criticism』 Volume 24-Number 3, 1966.


Matthew Butterfield,  「Participatory Discrepancies And The Perception Of Beats In Jazz」, 『Music Perception』 Volume 27-Issue 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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