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최초의 장애아동 시간제 돌봄터 ‘나무와 열매’
우리 마을 길음역 환승주차장 7층에는 특별한 이야기가 있다. 장애아동과 비장애 아동 모두가 함께 모여 놀고, 배우며, 서로의 가족의 되어주는 곳. 장애아동 시간제 돌봄터인 <나무와 열매>의 따뜻한 풍경이다. 이곳의 시작은 장애아동 부모들의 작은 모임이었다. 장애아동들은 방과 후에 마땅히 놀거나 쉴 만한 곳을 찾기가 어려웠다. 또한 부모들이 급하게 아이를 맡겨야 할 경우에도 가족이나 이웃의 도움 외에는 별다른 대안을 떠올릴 수가 없었다. 이러한 고민들을 함께 나누던 부모들의 작은 모임은 어느 날 ‘이심전심 부모마음 장애아동 품앗이 마을 만들기’라는 장애 돌봄공동체가 되었다. 그리고 2013년 마을기업으로 선정되며 지원금과 사업비를 받아 지금의 공간을 마련했고, 2014년에는 <나무와 열매>라는 이름으로 사회적 협동조합으로 정식 인가를 받았다. “부모 사후 부모 되기”를 목표로 “영속적인 평생 돌봄 시스템”을 지향하는 전국 최초의 장애아동 시간제 돌봄터인 <나무와 열매>는 이렇게 만들어졌다.
<나무와 열매>의 로고에는 이 모임을 만든 부모들의 세심한 마음이 가득 담겨 있다. 나무는 부모를, 열매는 아이들을 뜻한다. 동그란 원은 아이를 품고 있는 부모의 모습이며, 그 원이 점선으로 되어 있는 이유는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공간임을 나타낸다. 장애인 관련 시설들은 대부분 폐쇄적인 경우가 많은데, <나무와 열매>는 장애아동에게는 물론이고, 그 장애아동의 가족들, 비장애 아동, 자원봉사를 원하는 누구에게나 활짝 열려있는 곳이다. 실제로 길음역 환승주차장 7층 <나무와 열매>의 입구에는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탁자와 의자가 마련되어 있으며, 원한다면 견학이나 탐방, 사진 촬영까지도 얼마든지 가능하다. 내부를 둘러봐도 숨겨진 공간이 전혀 없을 정도로 모두 오픈된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로고에서 약간 짧게 그려진 ‘열매’의 ‘매’자는 장애아동을 표현한 것으로, 장애가 있는 가족을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히 사회의 일원으로 내세우려는 부모들의 열린 마음이 나타나 있다. 아이를 단단히 품으면서도, 행여 폐쇄적인 돌봄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노력하는 부모들의 마음이 담긴 <나무와 열매>의 로고는 밝고 경쾌한 공간의 느낌과 잘 어우러지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2007년부터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이나 ‘장애인 활동 지원’ 등의 돌봄 서비스 정책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이는 일상적 돌봄 위주이기 때문에 서비스의 범위가 제한적이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최복천 연구위원이 2016년 발표한 『장애아동 돌봄 지원제도 현황 및 개선 방안』에서 지적된 ‘장애아 가족 양육지원’ 제도의 문제점을 살펴보면, 서비스 대상자가 전국 가구 평균 소득 100% 이하 가정으로 한정되어 있다 보니 서비스 이용자가 제한되어 있고, 1인당 돌봄 서비스 제공시간도 월평균 40시간에 그치고 있었다. 또한 양육지원사업 제공 기관의 수도 전국 18곳에 그쳐 접근성과 인력 배치의 한계가 있었다. 그리고 돌봄 인력의 처우가 적절하지 않아 돌보미 이탈의 문제도 심각했다. ‘장애인 활동 지원’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지적되고 있었는데, 첫째, 서비스 대상자 연령이 만 6세에서 64세까지로 만 6세 미만의 장애아동을 둔 가족은 서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는 한계가 있었다. 둘째, 대부분의 서비스 내용이 성인장애인의 신체적 활동 지원 및 요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어 장애아동의 발달 및 성장기의 필요를 적절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활동 지원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의 대부분이 발달장애 아동임에도 불구하고 서비스는 성인장애인 중심으로 이루어져 제공 인력의 전문성에도 문제점이 대두되고 있었다.
<나무와 열매>는 이러한 제도적 여백을 채워주는 틈새 돌봄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고 있다. 우선 <나무와 열매>에는 이용 아동의 연령 제한이 없다. 만 6세 미만의 아동들도 얼마든지 돌봄을 받을 수가 있는 곳이다. 또한 가구 소득과 관계없이 이용할 수 있으므로 이용 가정의 범위가 제한적이지 않다. 장애아동의 발달 및 성장기의 필요에 따라 다양한 프로그램도 마련되어 있어 이용자라면 누구나 무료로 참여할 수 있다. 페이스 페인팅이나, 보드게임, 요리 등등 아동들이 재미있게 노는 가운데 사회성을 기르고 생활에 필요한 여러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프로그램들은 물론이고, 동화구연 프로그램을 통해 아동들이 정서적 안정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놀이를 통한 체육수업에서는 ‘빙빙 점프’를 통해 순발력과 균형감각을 키우며, ‘볼링 치기’를 통해 힘을 조절하여 표적을 맞히는 능력을 기르고, ‘링 던지기’를 통해 집중력을 향상시킬 수 있다. 레벨업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아동들이 학교에 있는 시간 동안에 생기는 유휴(遊休)공간을 이용하여 성인장애인들의 돌봄도 이루어지고 있었다. 2016년 8월부터는 가정으로 선생님들이 직접 찾아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인 활동 지원사업도 시작하였다. 지금은 이러한 틈새 돌봄의 기능을 하는 기관이 전국을 통틀어 <나무와 열매> 단 한 군데뿐이지만, 점차 확대되어 비슷한 성격의 기관이 전국 곳곳에 생겨날 수 있다면 양육지원사업 기관의 수적인 한계를 보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장애 아동들은 교육이 이루어지는 환경이나, 비용, 접근성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하여 교육기관을 선택할 수 있는 데에 반해, 장애아동들이 이용할 수 있는 기관은 한정되어 있고, 비장애 아동들이 주로 이용하는 기관에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차별을 당할 소지가 있으므로 선택의 여지가 매우 적다. 장애아동들은 생활과 관련된 다양한 기술을 습득하는데 비교적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대인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도 어려움을 겪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장애아동의 부모들은 양육에 더 많은 에너지와 시간을 들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애아동의 양육을 도와줄 수 있는 돌봄 기관이나 제도적 장치가 여러 가지 문제점을 갖고 있다는 것은 장애아동의 가족들이 또 한 번의 좌절을 겪게 하는 지점이기도 하다.
2017년에 김유리, 최복천에 의해 이루어진 『장애아동 가족을 위한 돌봄 지원 개념화 연구』를 보면 장애아동 돌봄 지원의 구체적 내용 및 범주를 ‘일상적 돌봄’, ‘활동 중심 돌봄’, ‘부모 돌봄역량 강화’, ‘가족관계 강화’로 나누어 살펴보고 있었는데, 이러한 4가지의 지원범주 모두가 꼭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특히 ‘일상적 돌봄’에서 긴급상황이 발생했을 때 일정 시간 동안 장애아동을 돌봐줄 수 있는 단기 보호에 대한 필요성과 ‘가족관계 강화’의 부분에 있어 비장애 형제를 위한 장애 이해 교육에 대한 필요가 절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필요성을 보완해줄 수 있는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나무와 열매>와 같은 장애아동 돌봄 협동조합이다. 시간제 돌봄터인 <나무와 열매>에서는 갑자기 급한 사정이 생긴 부모가 아동을 맡겨야 하는 경우에도 언제든 이용할 수 있으며, 주·야간 보호센터, 활동 지원서비스 등의 기존 돌봄 서비스를 이용하면서 중간의 빈틈을 채울 수 있는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다. 영국이나 호주 등에서는 일찍부터 장애아동 돌봄의 하나로 휴식서비스(respite care)를 제공하고 있는데, 부모는 장애아동 돌봄의 스트레스로부터 잠시나마 벗어나 재충전의 기회를 얻거나, 비장애 형제·자매들과의 시간을 보낼 수 있으며, 장애아동은 한정된 공간을 떠나 다양한 사회적 체험을 해볼 기회가 마련된다. <나무와 열매>의 이용자 중 한 발달장애 아동의 부모는 형제인 비장애 아동을 축구교실에 보내고 있었는데, 장애아동의 양육으로 인해 한 번도 축구교실에 데려다주거나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해본 적이 없었다. 그저 아이를 혼자 보내거나, 장애아동과 함께 차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던 중 <나무와 열매>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는 필요한 시간에 장애아동을 돌봄터에 맡기고 직접 아이와 함께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게 됨으로써 장애아동의 양육으로 인해 그동안 소홀할 수밖에 없었던 비장애 아동의 일상적 양육에 함께할 수 있게 되어 가족 모두의 삶의 질이 향상된 사례가 있었다.
또한 <나무와 열매>는 장애아동의 비장애 형제·자매들이 장애에 대한 특수성을 사회 속에서 자연스럽게 체득할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실제로 <나무와 열매>에는 장애·비장애 아동 통합 돌봄 시스템을 통해 비장애 아동들이 장애에 대한 자연스러운 인식전환을 경험한 사례들이 많이 있다. 내 형제·자매들이 겪는 장애의 특수성을 ‘나만 겪는 일’이 아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일로 받아들이고, 결코 숨기거나 부끄러워할 일이 아님을 어릴 때부터 체화(體化)하게 되는 것이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은 성인이 되어서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나 선입견을 갖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며, 더 나아가 우리 사회에 깊숙이 뿌리 박힌 장애인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전환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나무와 열매>의 김경예 센터장 또한 장애아동을 양육하는 부모로서 비장애 형제·자매들의 장애에 대한 인식전환을 몸소 경험한 장본인이다. 그러므로 김경예 센터장은 장애·비장애 아동 통합 돌봄 시스템에 대한 더욱 확고한 믿음이 있다. 장애아동을 형제·자매로 둔 비장애 아동들은 장애가 있는 가족에 대한 경험을 공유하며, 상대방의 멘토가 되어주기도 한다. 그야말로 서로에게 또 하나의 가족이 되어주는 셈이다. <나무와 열매>에서 자라난 아이들은 이곳으로 돌아와 봉사하기도 한다. 마을 안에서 ‘영속적인 평생 돌봄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나무와 열매>의 꿈은 이렇게 현실이 되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나무와 열매>가 계속해서 지속가능한 발전을 하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난관이 존재한다. <나무와 열매>가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장애 유형별, 생애주기별 돌봄에 있어 가장 큰 문제는 협소한 공간이다. 15명이라는 한정된 인원밖에 수용할 수 없는 현재 상황에서 장애 유형별, 생애주기별 돌봄은 아직 먼 미래의 일일 수밖에 없다. 또한 인건비의 문제도 있다. 장애아동들을 돌보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이 필요하나, 현재 틈새 돌봄 기관으로써 받을 수 있는 연 850만 원가량의 지원비를 제외하면, 최소한의 시설 이용요금이나 국가의 사업지원을 통해 사업비를 받아야만 제대로 운영할 수가 있다. 지속해서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서는 또한 인력이 필요하다. 결국 시설의 규모와 환경이 개선되기 위해서는 인력의 필요성이 점차 높아지나, 현재의 지원금 안에서는 사실상 해결이 힘든 상황이다. <나무와 열매>가 기본적인 지원금을 받기 힘든 이유는 제도권 내의 기관이 아니라는 것 때문이다. 그러나 제도권 내의 돌봄 기관의 수는 제한되어 있고, 이에 장애아동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나면 원치 않아도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떠나 낯선 곳으로 가야 하는 경우가 많다. 제도화된 기관에 비해 관리가 쉽지 않더라도 <나무와 열매>와 같은 변용된 돌봄 기관에 대한 지원이 반드시 필요한 이유이다.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김경예 센터장의 환한 미소 속에서는 우리 아이들과 가족 모두의 행복에 대한 자신감이 엿보인다. 현재 보건복지부와 서울시에서 공동으로 진행하고 있는 ‘다 함께 돌봄 사업’을 신청해놓은 상황이며, 이 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고질적인 문제였던 인건비에 대한 고민이 상당 부분 해결 가능해진다. 또한 3년째 성공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공동모금회 사업을 통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더욱 활성화하고 있으며, ‘중증장애아동 마을이 함께 돌보면 행복합니다’라는 주제로 사회적 경제 한마당 행사 때마다 통합시설 확충에 대한 서명도 받고 있다. 얼마 전부터 일본 오사카의 어린이집·유치원 연계형 세이아이엔 유치원의 사회복지법인인 로코칸과 교류 활동을 하게 된 것도 <나무와 열매>가 꿈을 향해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각국의 복지시설에 대한 탐방과 연구를 통해 양국 사회복지의 발전을 도모하려는 계획이다. 최근의 사립유치원 비리 문제로 학부모 중심의 협동조합형 유치원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는 상황에서 사회적 협동조합인 <나무와 열매>는 좋은 선례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김경예 센터장은 말한다. 간절히 꿈꾸면 그것은 결국 현실이 된다고. 이 좌우명 하나로 부모들의 자조(自助) 모임에서 시작한 <나무와 열매>를 여기까지 이끌어왔다. <나무와 열매>의 꿈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장애아동과 가족들이 집이나 학교, 치료실에 고립되어 있지 않고 마을 안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우러지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것, 그들이 넘지 못할 어떤 문턱도 없는 공유·공생의 마을을 만드는 것. 이것이 바로 <나무와 열매>가 꿈꾸는 미래이자, 존재하는 이유이다.
길음역 환승주차장 7층에 있는 <나무와 열매>는 긴급, 일시, 상시 돌봄이 필요한 장애아동을 위한 시간제 돌봄 기관으로 회원, 비회원, 비장애인의 구분 없이 사전예약을 통해 4000원의 이용료를 내면 사용할 수 있으며, 오후 6시 이후에는 6000원의 사용료를 받고 있다. 이용시간은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토요일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이다. <나무와 열매>의 견학이나 탐방을 원할 시에는 방문 일주일 전에 방문 인원과 방문시간을 예약하면 가능하다. 자원봉사는 직접 연락하거나 이메일을 통해 신청할 수 있으며, 410101-01-285839(국민은행 예금주: 나무와 열매)를 통해 후원에 참여할 수도 있다. 자세한 문의는 전화(02-909-4125, 02-909-4122) 혹은 이메일(namu4125@naver.com)을 통해서 가능하며, 홈페이지(http://www.나무와열매.kr/)를 통해서도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