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시간

버텨준 날들 이후에

by 남연

요양원으로 가신 뒤 할아버지는 요양원의 프로그램에 따라 하루의 일과를 보내기 시작하셨다.

한동안은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계실 때보다 오히려 생기가 있어 보이셨다.


하지만 그것도 오래가지는 않았다.

처음 병원에서 말했던 6개월이라는 시간 중

2–3개월은 대학병원에서 보냈고, 집에서 2달, 요양원에서 2달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마치 6개월이라는 시간을 맞춰 떠나시려는 것처럼 할아버지의 병세는 갑자기 빠르게 나빠졌다.


요양원에서는 이제 요양원이 아닌 요양병원으로 모셔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요양병원으로 가신 할아버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의식이 거의 없는 상태로 계속 누워만 계셨다.

할아버지가 계신 병동은 집중치료실이었고, 그곳에 계신 분들은 대부분 이미 치료를 하기에는 너무 늦은 분들이었다.


할아버지를 뵈러 병실에 들어가면 그 공간을 채우고 있는 공기에서 형용할 수 없는 무게와 설명할 수 없는 중압감이 나를 짓눌렀다.


집에서 가까운 병원이었기에 자주 찾아뵐 수 있었지만, 병원에 다녀오고 나면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 때문에 일주일에 한 번을 겨우 갔다 오곤 했다.


할아버지는 그 병원에서 의식이 없는 채로 6개월이라는 시간을 보내셨다.


그리고 2025년 10월 24일 새벽,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할아버지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는 연락이었다.


부모님은 바로 병원으로 향했고, 집에서 전화를 기다리던 나는 고비를 넘기셨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렇게 이틀 후에도, 사흘 후에도 비슷한 전화가 왔고,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고비를 잘 넘겨주셨다.


그리고 처음 전화가 온 지 6일 만에 할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할아버지는 병원에서 말했던 6개월이라는 시간의 두 배 가까운 시간을 우리 곁에서 버텨주시고 가셨다.

우리 가족은 연명치료를 반대했기에 연명치료 없이 그 시간을 버텨주신 것이었다.


할아버지가 의식 없이 누워만 계실 때에는 그만 고생하시고 편히 가셨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지만,
막상 할아버지가 떠나시고 나니 그렇게라도 우리 곁에 있어주신 시간이 감사하게 느껴졌다.


병을 알기 불과 두세 달 전까지만 해도 할아버지는 동네 분들과 게이트볼을 치고,
하루 만 오천 보씩 걸으시며 휴대폰 만보기를 손주들에게 자랑하시던 분이었다.

스마트폰도 능숙하게 사용하시고 카카오톡으로 사진과 영상을 보내주시던 분이셨고,

할아버지 댁에 가면 봉투에 ‘사랑한다’고 적어 용돈을 건네며 마음을 표현하시던 분이었다.


항상 정정하시고 건강하셨기에 할아버지가 그런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믿을 수 없었다.
하루하루 병세가 심해져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일이 무서웠다.

누구보다 건강하시다고 생각했던 분이 한순간에 병으로 무너지는 모습을 보며 삶의 무기력함을 느꼈다.


그리고 엄마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렇게 짧고 허무한 것이 인생이라면, 정말 행복하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삶은 생각보다 짧고, 시간은 정말 빠르게 흘러간다.

하기 싫은 일을 하지 않고 살 수는 없겠지만,
하기 싫은 일을 할 때 인상만 찌푸리며 불평하기보다 그 안에서 조금의 재미를 찾아보고 싶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며 내 유한한 삶을 건강하고 의미 있게 살아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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