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떠나면서
나는 서울 토박이다.
스무 살까지는 활동 반경이 집-학교-학원이어서 내가 서울 사람이라는 걸 자각할 기회가 없었다. 처음으로 지역 친구들을 만난 건 재수를 하면서부터였다. 전주에서 온 친구, 대구에서 온 친구, 구미에서 온 친구 등 서울의 한 복판에서 전국 각지의 사람을 만나며 그들의 사투리만큼 다양한 문화를 느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다양한 출신의 지역 친구들을 만났는데, 나는 그때 그들이 자취생활을 함으로써(불가피한 선택이었겠지만) 부모로부터 독립하는 경험을 부러워했다. 한 때는 혼자 사는 느낌이 어떤 건지 알고 싶어서 학교 근처에서 자취하는 친구가 집에 내려간 삼일 동안 친구 집에 머무르기를 자청했는데, 멀리서 봤을 땐 아늑해 보였던 원룸이 생활하기엔 불편하다는 걸 온몸으로 느끼고 독립에 대한 로망을 싹 지워버렸다.
나의 친한 지역 친구들은 스무 살 때 독립했던 게 당연한 거였어서 내가 왜 부모로부터 독립하지 않는지 의아해하지만, 생활 반경이 서울인 서울 사람들은 결혼이 아니라면 독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아, 생각해보니 이건 활동반경이 달라지지 않는다면 꼭 서울 사람이 아니라도 모두에게 해당되는 얘기인 것 같기도.)
아무튼, 나는 내가 나고 자란 서울에서 벗어날 일들이 살면서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내 나이가 어느덧 서른이다. 평소 나이에 얽매이지 말자는 주의이나, 이제는 가족과 떨어지게 될 미래를 자주 상상하게 된다.
엄마, 아빠가 없는 내 미래는 어떨까?
내 남자 친구는 독립해 평택에서 살고 있다. 그동안은 강남역 근처에서 데이트를 하곤 했는데, 남자 친구가 평택에 살고부터는 한 달/두 달에 한 번은 평택에 가고 있다. SRT를 타고 평택으로 떠날 때마다 나는 알 수 없는 기분을 느낀다. 나는 특히 엄마한테 미안함을 느끼는데 정확히 이게 무슨 감정인지 모르겠다. 비유하자면 철새 무리에서 엄마 철새를 졸졸 따라다니던 아기 철새가 제 짝을 찾아서 엄마의 경로를 이탈하는 느낌이다.
스무 살부터 혼자 살았던 남자 친구는 자신만의 생활 법칙이 있다. 우리 집에서는 문제 되지 않았던 행동들이 그에게는 꽤 거슬리는 행동이 된다.
"화장실에서 나올 때는 발에 물기를 닦고 나와야지."
"수건 둘 때는 세로로 말고 가로로 둬야 해"
우리 집에서는 내가 설거지만 해도 착한 딸이 되었는데 평택에서는 나의 집안일 보탬에 잔소리가 한 무더기로 날아온다. 한 번은 내가 맛있는 요리를 해주겠다고 남자 친구가 좋아하는 카레를 만들었는데, 재료를 다듬는 데 생긴 음식물 쓰레기를 싱크대에 그대로 버렸다고 요리하는 내내 잔소리를 퍼부었다.
"저렇게 하면 싱크대가 막혀요~~"
"...."
잔소리가 듣기 싫어서 무시를 하니 아예 내 옆에 서서 도마에 두고 썰어라 등 코치를 하길래 이제부터 나는 요리를 하지 않겠다 선언하니 꽤 반기는 눈치였다.
확실히 나는 서울에서 부모님의 울타리 안에 있었다.
내 방 전구가 나가면 아빠가 대신 갈아 주었고,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엄마는 나의 잠자리를 걱정해 주었다. 그렇게 당연한 챙김을 받았는데, 이제는 평택에서 공동 책임자가 되어 새로운 규칙들을 배운다. 나는 그게 꽤 낯설어서 마치 우리가 소꿉놀이를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한 달에 한 번 정도 있는 평택행인데도 가족이 많이 생각난다. 그리고 생각보다 엄마는 아무렇지 않아 한다. 역시 나는 아직 엄마 품이 좋은 어린 새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