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마을, 길냥이 마을

길고양이와의 공존과 동거

by 유진

코로나 백신 2차 접종을 한 후유증으로 3일 동안 관절이 욱신욱신, 열감이 올랐다 내렸다 하며 잠이 들었다. 휴일이어도 8시나 8시 반이면 일어났는데 9시 반쯤 비몽사몽 간에 눈을 떴다. 그래도 벌떡 일어날 수가 없어 이불속에서 버티고 있었는데 '딴 딴 딴 딴'하며 벨소리가 울린다. 누가 아침부터 전화를 했나 보니 우리 동네 '동물연대 아주머니'였다. 이 아주머니는 내가 이 동네에 이사 왔을 때부터 동네분들로부터 이야기를 들었던 분으로서 우리 동네 길냥이들의 대모, 캣맘이다.


이사를 온 뒤 한 달이나 지나서였을까, 동네 구경을 한번 해보겠다고 어슬렁거리며 천천히 동네를 한 바퀴 도는데 넓은 공터에 고양이 약 15마리 이상이 여기저기에서 사료를 먹고 있었다. 한 여성분이 나오셨는데 그분이 바로 오늘 아침 전화를 하신 분이었다. 그 당시는 성함을 알 수 없어 '동물연대' 아주머니로 불렀다. (실제로 동물권 단체의 대표이시기도 하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이 전원주택으로서는 3번째 집인데, 이 마을에 오니 고양이들이 자주 보이고 우리 집에서도 잘 놀다가 간다. 왜 이렇게 고양이들이 많은가, 고양이들이 잘 지내나 했더니 이 분 덕이었다.

우리 집 창고 위에서 젖을 먹는 아기들

사람이 없어 방치되어 있던 마당에 화단을 만들고 자갈을 깔고 한 달 넘게 공을 들여 마당꼴을 갖춰 가고 있을 때였다. 창고 위에서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엄마 고양이가 나타났다. 작은애가 흥분하며 찍은 사진을 공유해주었다. 그 이후부터는 언제 또 고양이 가족이 놀러오나 수시로 지켜보았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작은애가 또 사진을 보내주었다. 새끼들과 엄마, 그리고 또 다른 고양이까지 총 4마리의 고양이였다. 그 후에도 우리가 없어진 마당은 길냥이들의 집, 놀이터와 수유실이 되곤 했다.


냥이들 놀이터가 된 뒷마당

우리 집에도 고양이 두 마리가 있다. 내 첫 고양이였던 럭키는 총 6마리의 새끼를 낳았었다. 한 마리는 태어나서 하루 만에 죽었지만 나머지 새끼들은 살아남았다. 내 손으로 받은 그 새끼들을 나는 내 자식처럼 애지중지 키웠다. 매일 더럽혀진 산실을 청소하며, 혹여 새끼가 깔려 죽지는 않을까 밤에도 몇 번이나 깨어 산실을 지켜보았다. 삶은 닭고기를 갈아 이유식을 만들어 한 마리씩 붙잡고 먹여주었다. 두 달 동안은 외출도 잘하지 못했다. 그렇게 키운 새끼들을 모르는 사람에게 보내기 싫었는데, 고양이예찬론자가 된 내게 물든 친구 둘이 새끼들을 데려가 주었다.


어쨌든 나도 나 나름대로는 환경, 동물 보호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는 이야기이다. 그린피스나 동물연대 단체도 팔로우하면서 '좋아요'를 누르고 내가 할 수 있는 응원과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런 사람도 동물에게 피해를 받았을 때에는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그리하여 나에게도 놀라운 이면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사건의 발단은 이러했다. 동물들의 놀이터와 수유실, 침실이 된 우리 집 마당이었는데,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울타리를 에워싼 장미 화단은 소나무 바크로 채워졌다. 그런데 소나무 바크는 가볍고 발로 파기도 편해서 고양이들의 화장실로 제격이었다. 소나무 바크를 깐 다음날 바크가 불록 모여 있어 이상해 건드려보니 고양이 똥이 떡 하니 버티고 있었다. 집에서 키우는 고양이의 그것과는 모양과 냄새가 달랐다. 질척였으며 회색이었고 냄새도 지독했다. 며칠 동안 계속 고양이 똥을 건져 구석에 옮겨 버리는 날들이 이어졌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가시가 있는 나뭇가지를 군데군데 깔아놓았지만 그 후에도 종종 고양이들 똥이 발견되었다. 이렇게 되고 보니 고양이는 예쁘지만, 고양이들이 사라졌음 좋겠다는 생각이 올라왔다. 노력과 정성과 돈이 들어간 내 첫 화단을 지키고 싶었던 것이다. 이렇게 고양이들을 미워하는 마음이 올라올 때쯤 권정생 아동문학가의 <강아지똥>이 떠올랐다.


길바닥에 놓인 강아지똥은 '똥, 똥 , 에그, 더러워' 하며 멸시받는 존재였지만, 비가 내리고 시간이 흘러 그 위에서 민들레꽃이 피어난다는 내용의 동화였다. 현대인들에게 똥은 더럽다고 인식되지만 사실 똥은 자연의 순환에 의해 자연으로 돌아가 다른 식물의 영양분이 되며 되살아난다.



<강아지똥>에서 민들레를 안고 있는 강아지똥

'강아지똥' 생각이 나니 저 고양이 똥도 더 이상 더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물론 보기에 좋지 않은 마음이야 여전했지만 비가 내리면 저 똥도 녹아내리고 우리 집 화단으로 돌아가 식물이 살아나는 데 도움을 주고 식물과 한 몸이 되리라 싶었다. 그 후로는 고양이 똥에 스트레스를 덜 받고 그저 놔두게 되었다. 또 나는 인간으로 태어나 자연을 더럽히고 자연에 피해를 주며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데, 나는 조금도 피해를 받지 않겠다고 난리를 부리다니 얼마나 이기적이랴 싶었다.


그래도 무작정 번져나가는 길냥이들을 두고 볼 수는 없으니 동물연대 아주머니께서 엄마 고양이와 새끼들을 포획해 중성화를 시켜줘야겠다고 했다. 그러다 오늘 아침 드디어 엄마 고양이를 포획했으며, 잠시 내 집 차고에 포획한 고양이를 놓겠다고 아침에 전화를 건 것이었다. 전화를 받고 차고로 내려갔다. 엄마 고양이는 화가 나서 하악거리고 가르랑거리며 날을 세우고 있었다.


길냥이들에게 사료를 주고 있는 동물연대 아주머니도 보였다. 한 달에 사료값만 15만 원이 들고, 중성화는 구청에서 시켜주지만 이외에 사료값, 병원비, 약값 등은 사비로 한단다. 그렇게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냥이들이 경계하는가 싶어 멀찌감치 떨어져 있었는데 또 한 마리가 포획되었다. 한쪽 눈이 병들어 안구 척출을 해야 할 것 같다고 포획된 아이였다.


지금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에도 나의 차고에는 두 마리 고양이가 겁에 질려 포획틀 안에 갇혀 있다. 너희들을 괴롭히려는 게 아닌데, 이를 알지 못하는 고양이들에게는 이 순간이 얼마나 공포스러우랴. 왜 이리 미안하고 마음이 쓰이는지, 수술을 할 때는 또 얼마나 아플지 계속 이런 생각이 머리를 맴돌고 있다. 이렇게 마음만 쓰는 내가 부끄럽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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