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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31. 2021

전원에서 보내는 연말

 2021년 마지막 날이다. 조명이 화려한 도시와는 달리 전원에서 맞이하는 연말은 조용하기만 하다. 동네를 돌아다녀도 연말연시 느낌은 들지 않는다. 사실 겨울이면 나무에 전구를 매다는데 이 불빛이 어둡고 추운 겨울을 밝혀주는 도시의 겨울 '꽃'이 되며, 이 꽃들로 연말연시 분위기는 한껏 고양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통스러워하는 존재-나무가 있다. 전구는 나무를 쉴 수 없게 하는 빛공해이며, 그 열기가 때로는 나무를 말라죽게 한다.   


 요즘 <고통은 나눌 수 있는가>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고통을 받는 자는 고통이 닥쳤을 때 가장 먼저 '왜 내가 이 고통을 겪어야 하는가' 하는 억울함을 느끼고, 자신의 곁을 지켜주는 사람들에게 '너는 이 고통을 모른다'라는 말을 주문처럼 왼다고 한다. 이 말은 고통을 받는 자와 지켜보는 자를 가르는 심연이 되고, 지켜보는 자는 사랑과 희생으로 그를 지켜주려 하지만 절망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비록 비껴가는 언어라 하더라도 인간은 아프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나무는 죽어간다 해도 자신의 고통을 표현할 수 없다. 말라가는 모습으로만 자신의 고통을 증명할 뿐이다. 이 고통은 우리가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그들을 자세히 들여다보아야만 알아차릴 수 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중에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던 나태주 시인은 말 안 듣는 학생을 보며 미운 마음이 들었는데, 그때 얻은 깨달음을 위의 시에서 간소하지만 분명하게 읊고 있다.

 

 이 시처럼 어떤 존재의 목마름과 고통,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들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자세히, 오래 들여다보면 그들을 알게 되고, 그들을 알게 되면 이해하게 되고, 그들을 이해하게 되면 사랑으로 가는 문도 열리게 된다.


 그러니 사랑은 사실 들여다보는 행위에서 시작하는지도 모른다.


새로 산 다육이들

 

  나는 요즘  이 식물들을 '들여다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 양재동에 있는 화훼단지에서 지름신이 강림해 기어코 다육이 한 판을 구매해 왔다. 낱개로 사면 비싸지만 많이 사면 싸지는 가격 덕택에 3만 원어치를 덜컥 산 것이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고 다육이 화분이 더 비싸다는 후폭풍을 예상 못하고 일단 질렀기에, 아직도 위 상태 그대로이기는 하지만 이 상태로도 충분히 아름답다. 그래도 얼른 적당한 화분을 구해 포트보다 넓은 땅에서 편히 자랄 수 있게 해주려 한다.  



 5.4미터 정도로 층고가 높은 2층 집이기에 키가 큰 식물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다육이와 함께 나무, 화분도 구매했다. 나무, 화분, 흙, 마사토까지 해서 시중가의 약 1/3 가격으로 우리집 반려식물이 생겼다. (근사하게 이름도 소개해주고 싶은데, 가게 주인이 말해준 이름을 5G의 속도로 잊어버렸다. 이럴 때는 '모야모'  같은 앱을 이용한다. 재야의 고수가 많으므로 가서 한 수 배운다.)


어제 산 파는 화분 속으로

 어제 양수리의 로컬푸드 매장에서 산 대파 한 단은 오늘 아침 화분의 흙 속으로 옮겨졌다. 농사를 짓다 보면 마트에서 채소를 사는 게 아까울 때가 있다. 땅에 심어놓기만 하면 되는 것을 게을러서, 땅이 좁아서, 날이 추워서 등의 이유로 사 먹어야 하니 말이다.


 "비닐하우스가 시급합니다"라고 떠든다고 비닐하우스가 뚝 떨어질리는 없으니, 대신 작은 화분이나마 실내에 들여놓고 대파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려 한다. (혹시 시도해보고 싶은 분이 있을까 싶어 팁을 공유하자면 대파는 녹색 부분만 잘라서 먹는 게 좋단다. 하얀 부분은 자라는 데 오래 걸리지만 녹색 부분은 금세 자라니까 이렇게 해야 자주 먹을 수 있다고.)

 

 새로운 반려식물의 색다름과 싱그러움에 반해 있는 내게 볼품 없는우리집 토박이 식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식물들은 '자세히 들여다보지 못했구나' 나의 모순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토박이 화분을 분갈이하고, 마사토를 덮어주었다. 분무기로 영양제도 뿌려주었다.  




  2022년에는 사람도, 동물도, 식물도 덜 고통스러운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아니 덜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라 더 평온하고 평화로운 해가 되기를 빌어본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자세히 들여다볼 것인가를 고민하고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우선 나부터 무한 반성을 하며 말일을 마무리해 본다. 새해에는 내 옆에 있는 식물부터, 동물부터, 사람부터 자세히 들여다보는 사람이 되자고 결심해 본다.      


 글에 대해 더 많이 고민할 수 있게, 한 편이라도 더 쓸 수 있게 힘이 되어주신 브런치팀과 구독자분들에게 감사를 전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보내드리며, 더 평온하고 행복한 2022년을 맞이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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