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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6. 2021

물, 좋은 곳

 물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중요 물질이다. 다들 알다시피 우리 몸의 약 70프로는 물로 이루어져 있고, 이 때문에 인간은 항상성을 유지하며 살아간다. 물은 1도 올리는 데 필요한 열량인 비열이 높다. 물의 1도를 높이고 낮추기가 어렵기 때문에 우리는 일정한 체온을 유지하며 살아가게 된다. 

 

 물은 두 개의 수소에 하나의 산소가 결합된 구조물이지만 '물'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야기가 많다. 성경에서는 물을 생명수라고 하며, 예수님이 요단 강에 몸을 담그고 나온 뒤 하나님으로서 역사하셨다. 물이 재생이나 정화의 이미지로 기능하면서, 이는 지금도 교회에서 세례 혹은 침례라고 하는 의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작금의 지구 환경에서도 물은 지구의 운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막강한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우리 몸의 대부분이 물인 것처럼 지구의 대부분도 물로 이루어져 있어 지구는 일정한 온도를 유지해 왔다.(물론 긴 역사에서 보면 등락이 있었다.) 그런데 인간이 유발한 지구가열화는 지금도 더욱 심각해지고 있으며, 우리나라 바다의 경우는 이전보다 약 2도나 높아졌다. 물의 높은 비열을 생각한다면 이 변화가 얼마나 큰 변화인지 실감이 될까.




 가까이 있는 물을 들여다보자면 내가 살고 있는 양평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양평은 상수도 보호구역이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 한자로는 양수(兩水)가 내 집에서 10분 거리에 있다. 이 두물머리의 물은 서울의 한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서울 시민의 식수로 음용되기 위해 양평 지역은 여러 제약을 받는다. 제초제, 농약 사용이 제한되며 '물 맑은' 양평으로서 존재해야 한다. 물론 제초제나 농약 사용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이런 제약이 불편하고 싫지는 않다.


 하지만 다시 한번 물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나에게는 '물'이 조금 불편하고 어렵다. 그 이유는 내가 사는 지역이 지하수를 이용하기 때문이다. 예전이야 믿고 지하수를 믿고 마실 수 있었겠지만, 대기 오염이 심해진 요즘 미세먼지를 머금은 비가 땅 속으로 들어가면 그 물이 깨끗하기는 할까.


 그러니 지하수를 사용하는 집에서는 여러 이유로 일, 이년에 한 번씩 수질 검사를 의뢰한다. 음용 가능, 불가능 판정과 함께 물의 여러 성분이 서류에 기입되어 집으로 날아온다. 지금 사는 이 집의 수질 검사 결과 석회질이나 철분 등의 성분이 높게 나왔다. 다른 집들도 대동소이할 것 같다. 그래서 내가 아는 한 어떤 집에서는 관정에 필터를 설치하고, 어떤 집에서는 전적으로 생수를 사다 마시며, 또 다른 집에서는 부엌에 정수기를 설치한다. 나는 마지막 방법을 선택했다. (여기보다 수질이 더 좋은 곳도 있고, 아무 도구도 설치하지 않은 집도 물론 있다.)


 그런데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기술이 지나치게 좋아서 정수된 물은 순수하게 H20만 남게 된다는 사실. 물 안에는 미량이지만 무기질 등의 좋은 성분이 있는데 이런 성분까지 모두 제거해 버리니 정수물은 일종의 '죽은 물'이 되어 버린다. 정수물과 질병과의 연관성을 밝힌 논문도 있다고 하는데 읽어보지는 못했고, 방송에서도 정수기 물의 문제점을 다룬 적도 있었으니 이는 어느 정도 신빙성이 있는 것 같다. (정수기를 설치할 때 상담 직원이 정수기가 무기질도 다 정수해버린다고 실토했다...) 


 생수를 사다 마시자니 플라스틱 통이 넘치도록 나오고, 생수 자체도 통의 미세 플라스틱이 녹아 오염되기도 한단다. 유리병에 든 물은 깨질 위험도 있고 가격도 비싸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정수기 물을 사용하는데, 그러면서도 찜찜함을 버릴 수가 없다. 

 


 처음 살았던 전원주택은 산속에 폭 들어가 있는 집이었고, 집 뒤의 산에서는 약수가 흘러나왔다. 졸졸 흘러 내리는 약수를 주전자에 담아 출렁출렁 물이 넘칠까 조마조마하며 들고 오던 기억이 난다. 그 산으로 올라가는 동안 졸졸 흐르는 작은 개울이 있었는데, 그 물에서 가재가 살았다. 1급수에서만 살아 아무 데서나 볼 수 없는 가재다. 

 


 살면서 알을 배고 있는 가재를 볼 일이 얼마나 있을까. 
 양평에 살면서 무수히 많은 작물을 키우고, 동물을 보고, 
 이런 가재도 만날 수 있었던 건 그 생명을 가능하게 했던 '물' 때문이다.


 내가 마시는 물뿐만 아니라, 이런 가재가 살 수 있는 1급수의, 물 좋은 곳, 이런 곳이 지구에 넘쳐나는 시기가 오면 좋겠다. 굳이 물 좋은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되게 말이다. 물론 지금으로서는 너무 요원한 소원이라는 것을 안다.    

 

 이 가재들이 정말 그리워지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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