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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Dec 13. 2021

명상이 필요해지는 순간

 비는 벼락의 가능성을 예비한다. 어두워지고 스산해지며 비가 쏟아질 때 느껴지는 그 음침함과 불길함. 그런 날 하늘을 가르는 벼락은 일면 당연해 보인다. 그런데 마른하늘에 벼락이 친다면 얼토당토않은 일이 벌어진 것이다. 이는 도저히 상식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마음의 준비가 하나도 되어 있지 않은 사건의 발생이다. 마른하늘에 벼락'은 그야말로 '마른하늘에 날벼락'인 것이다.    


 그런데 살면서 마른하늘에 날벼락 맞을 일이 몇 번이나 있을까. 나는 최근에 내가 좋아하는 양평에서 날벼락을 맞았다. 그것도 한 달짜리로. 아, 거 참 세다. 잉~



 "옹벽 공사를 해야 하는데, 공사 담당자분이 선생님(나) 댁에 사람 다닐 통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하네요. 1미터 정도만 땅을 파도 될까요?" 12월 초 옆땅 주인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다. 옆집은 정원을 가꾸고 텃밭의 작물을 키우러 주말에 양평을 찾았다. 집은 아직 짓지 않은 상태였는데 경사지를 깎아서 옹벽을 세운 뒤 나중에 집을 지으려는 계획이었다.


 앞으로 계속 보고 살아야 할 '이웃사촌'이라는 조항 때문에 쉬이 "그렇게 하세요."라고 답을 드렸다. 며칠 동안 포클레인이 땅을 파고, 돌을 깎고 하더니 우리집 땅을 1미터 정도 파내었다. 이야기 들은 대로 여기서 끝이라고 생각했다. 선의로 1미터를 선뜻 내어드린 것으로 이웃으로의 책무는 끝났으려니 했다. 


 다음날, 아침 마당에 나가서 내 눈을 의심했다. 정말로 눈으로 본 광경이 믿기지 않는 경험을 했다. 만화에서 보면 놀라운 광경을 볼 때 손으로 눈을 비비는데, 진정 그런 행동이 나오려고 했다. 이사 온 뒤 앞마당을 꾸미느라 여력이 없어서 경사지는 내년에 어떻게든 가꾸어야지 작정을 하고 있었는데, 그 경사지가 눈앞에서 완벽히 사라져 있었다. 4미터 정도 도려내졌는데, 흙이 살짝 파인 것이 아니라 수직의 절벽으로 민낯을 드러내고 있었다.


 날벼락이 떨어지니 정신이 혼미해 잠시 방전되었다가, 이내 가출한 정신을 되찾아 옆집에 전화를 걸었다. 공사 담당자의 일방적인 행동이라는 설명이었다.


 옴, 샨티 샨티! 인도 여행 때 배운 만트라 옴! 평화를 뜻하는 샨티!를 찾게 되는 순간이었다.




 매일 마당에 나갈 때마다 텃밭을 바라보며 자연스레 눈이 가는 곳이었는데, 이제는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지내고 있다. 마음이 쓰라려서, 파인 땅이 흉물스러워서, 내 허락도 없이 본인들 편의를 위해 내 땅을 건드려 놓은 것이 억울하고 불쾌해서 드라마 속 엄마들이 흰 천으로 이마를 감싸고 끙끙 앓아눕듯이 누워 있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 찾게 되는 북한강 산책로, 나의 명상 나무를 찾아갔다.(이전 글 <명상 나무 아래에 앉아> 참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먼지와 흙은 가라앉고 조금은 뽀얀 물이 되자, 날벼락 속에서도 '긍정'을 찾게 되었다. 날벼락이 '균형'을 위한 자연발생적인 사건이라면, 이 날벼락은 경사지를 활용할 방도에 대한 아이디어를 주며, 경사지의 숨겨진 가치를 확인하게 해주는 계기였다고 나는 나를 위로했다.




 양평에서는 땅의 경계 때문에 종종 분란이 생긴다. 울타리는 쳐져 있는데 측량을 해보니 내 땅이 옆집으로 편입되어 있다! 이런 식이다. 또한 토목 공사를 할 때는 할 수 없이 옆집의 땅을 건드릴 수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나도 집을 구할 때 앞으로 집이 지어질 '대지'가 있거나, 공사를 하고 있는 곳 등은 피하려고 했다. 


 하지만 양평 여기저기 땅을 안 파는 곳이 없다. 파인 산에는 집이 들어서고, 메워진 논은 '대지'로 형질이 탈바꿈된다. 수많은 집들이 지어지는 곳이 양평이다.  


 양평이라고 완벽하지 않다. 어떠한 것도, 어떠한 장소도 완벽하지는 않다. 완벽하지 않은 빈틈이 삶에 찾아올 때, 명상이 필요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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