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 모기
한달 전,
추석 연휴 시작 전에
오랜만에 연차를 내고 지방에 살고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보통 때라면 친구가 서울로 와서 보겠지만
"어차피 남은 연차 쓰는고 얌. 이번엔 내가 갈게"라고 했지만,
사실은 매번 친구들을 만나러 서울로 오는 너의 수고스러움도 덜어줄 겸,
드라이브를 좋아하니 다가오는 가을도 느껴볼 겸
이번엔 내가 출동.
역시나
조금만 수도권을 벗어나도
한적하고 고요한 시골길이 정답고 평화롭고
힐링 그 자체.
도시여자가 내려갔으니
오늘은 답답한 실내에서 보지 말고
날씨도 좋으니 밖에서 볕도 쬐고 그러자고
해송이 우거진 숨은 명당으로 목적지 설정.
친구 오기 전까지 선물 받은 책
휘리릭 읽고
낭만에 빠져 주위 둘러보며 사진도 찍고
나무며. 꽃이며. 멀리 보이는 바다도. 하늘도
그야말로 날을 잘 잡았다.
친구가 일찍 일을 마무리하고 도착한 늦은 오후부터
우리는 해가지고도 한참 동안 그곳에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시시콜콜한 일상부터, 회사일, 사춘기 아이 키우는 일,
또 이제는 중년에 접어드는 우리이기에
부모님의 건강, 일, 나의 연애까지 천일야화처럼 이야기는 끝이 없다.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나에게
"이래서 여길 골랐지."라는 너의 말에
"역시 잘 통해."라는 나의 속마음.
잊을 수 없는 소중한 장면이 내 맘에 켜켜이 새겨진다.
그리고 한참을 지는 해 바라보고,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노을에 취하는지, 함께 마신 와인에 취하는지,
마음도, 얼굴도 저 노을빛이 되었더랬지.
(이날 우리의 다음 만남은
말할 수 없는 사연으로 인해 그날은 몰랐지만
결국 이젠 언제라고 기약할 순 없는 안타까운 다음이 되어버렸지만)
그날의 대화와 온기를 나눈 기억이
한동안은 우리의 마음에
쉼이 되고, 희미한 미소가 되어 우릴 지켜주는 힘이 되겠지.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산모기가 팔다리를 수십 군데를 물어뜯어놨다.
이야기하는 동안은 물리는 줄도 몰랐지.
(쓸데없이) 살성이 약해 산모기에 물리면 멍까지 드는 나는
유명하다는 일본 호빵맨 모기패치와 독일 모스킨토까지
덕지덕지 붙이고 3주 넘게 고생했다.
흉도 오래갈 것 같고 간지럽고 아프고 제법 고생했는데
너와의 그날이
어찌나 따뜻하고 좋았는지
이 상처가. 이 흉터가 사라지는 것조차
못내 아쉬운 건
이미 그날은 내게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이 되었기 때문일 테지.
누굴 만나며 생긴 마음의 상처도
결국 끝내 상처로 남느냐, 추억으로 남느냐는
이렇게 한 끗 차이.
간지러움은 사라졌고,
딱지도 떨어졌고,
멍든 자국, 딱지가 떨어진 자국이 아직 남아있는데
조금 천천히 사라져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봤다.
그 시간을 좀 더 오래 간직하고 싶어서
그날
친구를 기다리며 읽다가
찍어뒀던 페이지
오늘 다시 읽어보니 책 속 문구는
"어떤 이야기는 결과를 모르기에 시작할 수 있다"는 말.
참 인상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어떤 이야기는 결과를 알지만 기어코 시작하기도 한다"가
더 용기 있는 것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
내게 이런 자주 보지 못해도
마음이 통하는, 진심으로 응원하는 서로가 있음에
너무 감사하고
우리가 딱 맞는 서로를 알아보아
말하지 않아도 진심을 알아줄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계절은 바뀌었고
우린 또 바쁘고 고단한 일상의 연속이겠지만.
다시 만날 그 언제 때까지 안녕!
그래서,
그날 모기에 물린 상처는
상처가 아닌 추억이 되었다.
상처가 추억이 되는 경계, 그것 역시 감정 한끗 차이구나
그리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