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향력
며칠 전, 지하철 탈 일이 있어서 기다리다가,
너무 맘에 드는 시가 있어서 찍어놓고
며칠이 지난 후에야 글을 쓰는 건
이 시를 가지고 며칠 동안 틈틈이 생각을 했다는 것,
"어떤 사랑들이 모여 나를 만든다. 나를 사랑하게 만든다"
절절하게도 맞는 말이지 않은가.
지나온 사랑들이 남긴 무언가로 만들어지는 오늘의 나,
어릴 때 부모님의 사랑, 선생님의 사랑이 유년시절의 나를 만들어갔고,
청춘을 지나며 여러 번의 사랑이 중년의 나를 만들어왔다.
사랑은 그렇게 끝났다고 끝난 것이 아니라,
어쩌면 평생 내 삶에, 인생에 영향력을 주는 것이라 생각이 든다.
인생 또는 사랑은 끝났다고 해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스타트지점에서 리셋이 안되기에,
항상 끝난 그 자리 언저리에서 시작하기에
나는 나이지만,
10년 전의 내가 다르고, 5년 전에 내가 다르고, 오늘의 내가 다르듯,
그를 만나기 전에 내가 다르고, 그와 사랑한 내가 다르고, 그와 헤어진 후의 내가 다르다.
그래서 과거의 시간, 사람, 추억, 습관 모든 것들이
켜켜이 쌓여 나만의 나이테의 무늬를 만들어가는 것 일터,
라면을 끓일 때 액젓을 반숟가락 넣으면 국물 맛이 깊어진다.
운전을 할 때 눈이 오는 날은 운전 모드를 이 버튼을 눌러 변경하면 미끄러짐이 덜하다.
차엔 여자 운전자라는 티를 낼 필요가 없으니 남자 모자 같은걸 하나 두면 좋을 것 같다....
나의 지나간 어떤 사랑은 사랑이 끝났지만,
이런 소소한 꿀팁으로 조금 더 야무진 나를 만들어 주었고,
또 상대방의 기억에도 내가 알려준, 또는 나와 함께 한 여러 가지 들이
사랑은 끝났지만 종종, 여기저기, 생각지도 못한 구석구석에서
영.향.력.을 주고 있겠지.
그렇게 시처럼,
사랑은 필히, 우리에게 무언가를 남기고,
그것은 하루하루 다른 나를 만들어간다.
나를 다듬어주고, 성숙하게 하고, 진화하게 한다.
그래서 가끔
'그때의 너를 지금의 내가 만났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긴 하지만
'그때의 네가 지금의 나를 만들어주어 참 고맙다'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드는 건,
이제 좋은 추억으로 아름다운 사람으로 마침표를 잘 찍었다는 의미이겠지.
1년 전에 나와
1년의 시간을 보내며 달라진 나는
- 혼자 하고 싶은걸 씩씩하게 해 가며, 시간을 꽤 잘 보내는 사람이 되었고,
- 등산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 졌고,
- 한동안 쓰지 않던 글을 다시 쓰게 되었고,
- 그땐 그렇게도 귀찮다고 잔소리로 듣던 영양제를 꼬박꼬박 잘 챙겨 먹게 되었고,
- 지나간 시간이 이제 슬프지 않게 되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 했던 어느 노래 가사가 떠올랐던 출근길 아침,
문득, 예전에 어떤 사람에게
내가 사용하는 핸드크림과 똑같을걸 사주면서
"이걸 쓸 때마다 내 손에서 나던 향이 나서, 내 생각이 났으면 좋겠어요"라고 선물한 적이 있는데,
핸드크림이 꼭 필요한 계절,
그 사람에게 나의 영향력은 지금쯤 어떻게,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궁금해지긴 하네요.
아, 그래도 좋았지,라고 떠올려주었으면, 다 쓸 때쯤에 아쉬워해줬으면
내심 그런 욕심을 내어봅니다.
(아 좋았지라고 똑같은걸 다른 여자 친구한테 사주고 있는 건 상상하지 않기로 ㅎㅎㅎㅎㅎ)
아, 근데 정작 난 지금 다른 거 쓰고 있구나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