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히 그런 날

아기새의 졸업

by 레몬트리

나는 어김없이 작아진다. 씩씩하게 버티던 일 년이, 그날만 오면 무너진다.


아기새의 졸업식이었다.

일 년 내내 씩씩한 척 잘 지내다가도

입학식, 졸업식만 되면 나는 참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유치원 때도 그랬고, 초등학교도 그랬고, 역시나 중학교도.


아빠의 빈자리에도

누구보다 잘 자라준 귀한 내 새끼만 바라봐도 모자란 순간인데

나는 왜 늘 그 자리에선

그 빈자리에 마음이 휑하고,

더욱 못난 건,

그리도 남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여나 그 빈자리가 아이를 향한 구설수가 될까, 아이에게 언젠가의 아킬레스건이 될까

노심초사하며,

알아보는 이를 마주칠까 눈빛은 평소 같지 않게 흔들렸고,

식 내내 자꾸 움츠려 들었다.

그런 나 자신이 너무 한심스럽고 후회스러워서

아닌척해도 집으로 오는 걸음은 늘 무겁고, 힘들었다.


그래도 6년, 3년 이렇게 제법 긴 시간을 지내고 나면

다음엔 안 그러겠지,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막연한 기대로 애써 마음을 다잡았는데...

올해도 망했다!


누구나 말하지 못하는 비밀,

누구나 남과 나누지 못하는 마음의 짐

누구나 꽁꽁 숨겨놓고 싶은 구석진 방하나

마음속 지니고 살아간다.


내게 이혼은 여전히 그런 비밀이자 짐이다.

그나마 아기새와 관계없는 나만의 관계나 일상에선

나 혼자 감당하면 되는 상황들에 조금은 익숙해졌고 조금은 무뎌졌는데

아이와 관계가 있는 경우엔

속절없이 흘러나오는 아이에 대한 죄책감과 미안한 마음에

여지없이 무너지곤 한다.


입학 예정인 고등학교는 이미 학부모들 단톡방이 생겨서 입학 전 공지사항이나 정보를 나누는데

요즘은 다들 자식이 귀하다 보니

아빠들도 엄청 열정적이신 분들이 많다.

예전 같으면 이런 학부모방은 엄마 아빠 둘 중 한 분만 들어오는 분위기였는데

여긴 뭐 온통 엄마아빠 두 분 다 단톡방에 들어와서 수시로 이것저것 질문하는 열정적인 부모님들이 많다.

교복 맞추는 날에도 엄마아빠동생 온 가족을 대동한 경우도 많다.


외동이기까지 하니

그런 날 단둘일 때 아무도 그렇게 안 본다고

남들은 별 것 아닌 것에 예민한 거 아닌지 대수롭지 않게 이야기하곤 하지만

정작 당사자는 그 어느 때보다 움츠려든다는 건 경험해보지 않은 이는 잘 모를 듯.

괜히 쓸쓸하고,

괜히 서럽고,

괜히 작아지고,

괜히 미안해진다는 걸


그렇게

괜히 머쓱해지고 괜히 눈치 보게 되는 내 모습을 아이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애를 쓰지만

사실 아이는 아이대로 나처럼 느끼는 감정이 있겠지.

우린 서로에게 말하지 않지만 서로 느끼고 있고, 알고 있다.

그 마음을.

아무리 비밀이 없는 우리 사이지만,

오늘의 감정만큼은 서로를 위해 조금 눌러 담아 놓는다는 걸.



아기새가 앞으로도 살면서

본인의 선택과 본인의 잘못도 아닌

부모의 이혼으로

얼마나 이런 순간을 더 겪어내야 할지 괜스레 미안해진다.

곧 있을 - 고등학교 제출 서류나 기숙사 입소식, 입학식에서도,

먼 훗날 - 결혼 적령기쯤엔 상견례나 결혼식에서도,

돈으로 살 수 없는, 억지로 만들어 낼 수 없는

아빠의 빈자리가 가끔은 아이의 가슴을 쑤시는 건 아닐까.


내가 불행하고 싶지 않아 선택한 이혼이라는 결정이

너의 행복을 조금 갉아먹는 게 아닌지.


살다 보면

여러 번 경험하면서 익숙하고 무뎌지는 감정도 있지만

여러 번 경험하면서 미리부터 걱정되고, 공포스러운 감정도 있다.


십 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무뎌지지 않고, 여전히 나를 움츠려 들게 하는 상황들.

피할 수 없기에 겪어내고

피할 수 없기에 한 번씩 주저앉는 날이

오늘처럼 오고야 말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뎌내야 하는 내 몫.


그래도 아기새는 언제나처럼 씩씩하게, 웃는 모습으로 졸업을 했다.

유치원 졸업식, 초등학교 입학식과 졸업식 모두 참석해 준

고마운 동생네 가족들의 요란스러운 응원과 격려를 받으며.

기억하고 갚아야 할 고마운 내 빚.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 순간,

혼자라고 생각하고 주저앉기엔

나를 생각해 주는 주변의 고마운 마음들이 너무나 환하고 따뜻해서

쭈그리고 앉아 등을 들썩일 틈이 없다.


그렇게

이번에도 아기새는 한 뼘 자랐고, 어미새는 또 일어선다.


"천천히 그러나 앞으로"







덧)

글이 좀 슬퍼 보이지만, 졸업식은 무사히 잘하고 왔습니다. ^^

무대에서 춤도 추고, 고양시에서 주는 대외상도 받아오고, 여러 선생님들과 축하도 받으면서

아기새는 꽃보다 예쁘게, 햇살보다 환한 모습으로

엄마의 그동안의 시간을 위로하는 듯 예쁘게, 아이답게 잘 다녀왔어요!!

그런데 그냥 모,,

다른 글들이 밀려있지만 뭔가 오늘의 글은 미루지 않고 꼭 오늘 쓰고 싶어서

날 것의 감정으로 올려보아요


이렇게 추운데 사진 찍는다고 외투를 벗고 사진을 찍는 용기 있는 여성, 아기새

못 말린다! ㅋㅋㅋ


덧)

늦은 밤 확인해서 잠을 깨울까 답을 못했지만

카톡사진 한 장 바뀐 것만 보고도

소곤소곤 톡으로 졸업을 축하해 주신

여전히 따뜻한 우리 작가님들께도 너무 감사합니다~!


그리고

비록 이런 내 마음을 미리 헤아렸는지, 아닌지 알 수 없고

요란한 티도 안내지만

그저 듣기만 해도 마음을 토닥여주는 것 같은

반갑고 고마운 목소리도.


모두 오늘 나를 일으키는 소중한 마음.

기억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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