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사랑 말고 올리사랑
찬 바람이 부는 계절이 오면
어릴 때 엄마가 집에 그나마 만만한 값이었던
귤을 박스째 사서 바구니에 담뿍 올려두시면,
우리는
학교에 다녀오자마자 책가방을 던져놓고,
밥을 먹고 배가 올챙이처럼 불러도,
자기 전에 엎드려 티브이를 보면서도,
손가락이 노래지도록
손끝이 쭈글쭈글해지도록
귤을 까먹었다.
요즘
우리 집에선 서둘러 먹지 않음 하얗게 곪아버리는 귤을 심심치 않게 보지만
그래서 아깝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버리는 게 많지만,
그때
우리 집에선 사놓기만하면 곧 귤껍질만 수북하게 쌓여 금방 먹어치우곤 했다.
그래서 한꺼번에 내놓으면 하룻밤새 없어질까 엄마가 나눠서 꺼내놓기도 하셨지.
아마도
아빠 엄마는
무섭게 먹어대서 금방 동나는 냉장고며 찬장을 보며,
또 무섭게 작아져버리는 제 새끼들의 옷이며 신발을 보며
심장이 쿵! 하셨겠지.
한편으론
기특하고 예뻐서
한편으론
벌어도 벌어도 모자란 것 같아서
며칠 전,
식탁 위에 올려둔 귤 한 접시를 야무지게 다 까먹은
아기새의 흔적을 보며,
안 먹어도 배부른 것 같은 기분에 배시시 웃다가
나 역시 심장이 쿵! 했다.
참 다행이다.
나는 기특하고 예뻐하기만 할 수 있어서.
나보다 어린 나이에 엄마아빠를 했던
내 엄마아빠보단
덜 고단하고, 더 여유로운 것 같아서
그렇게 키워준 우리 엄마 아빠 생각이 나서
쌓인 귤껍질 앞에서 괜히
심장이 쿵! 눈물이 핑! 했더란다.
한창 귤이 달콤하고 맛있는 계절,
야무지게 먹은 그 모습 껍질로만 봐도 행복해서
아침 출근하 기 전
아기새 먹으라고 모이를 담아두듯
반들반들 맨들맨들 예쁜녀석들로 접시에 골라 담아두고 나오는 길.
그렇게 아이들은
부모가
가장 아낌없이, 가장 고르고 고른, 가장 귀한 것으로
흡수하는 것보다 아래로 흘려버리는 게 훨씬 더 많은 줄 알면서도
콩나물시루에 아침저녁으로 마를새 없이 물을 쏟아부어주는
그런 아낌없는 마음, 거침없는 마음을
잘도 잘도 받아먹으며
조금씩 조금씩 소리 없이 자라다가
어느 날 훌쩍 나만한, 나보다 큰 모습으로 자라 있다.
그리고 똑같이 그렇게 자란 내 곁엔
내게 좋은 거, 귀한 거 다 내어주고
등이 굽고, 주름지고, 손가락 마디가 굵어진 부모님이 계셨다.
부모님의 젊음을 다 훔쳐먹고 자란 것처럼
미안하고 안쓰럽게, 작아지고 작아지는 부모님의 등.
수능 전날, 등산을 갔는데 작은 암자 앞에
자식들의 합격을 바라는 마음으로
자식이 알든 모르든
여전히 뜨거운 마음과 간절한 소망으로 기도하는 부모님들의 바람이
구석구석 기왓장으로, 녹아내린 촛농으로, 소원탑으로
쌓이고 쌓이고 있더라
간절함이 과연 하늘에 닿을 것처럼.
'내리사랑.
이런 것이구나.
이렇게 하염없이 자식을 내려다보며
겸손해지고, 간절해지고, 애틋해지는데,
정작 그때
후들거리며 주머니를 열고, 휘청이며 가계부에 한 줄을 더해가며
귤을 사다 날라주셨을 내 부모님을
돌이켜보며
하늘보다 높은 그 마음에
내 자식만 '내리사랑'하느라
미처
'올리사랑'하지 못한 나 자신이 부끄러워지던 순간.
스마트폰을 집어 들고 귤이랑 과일을 이것저것 주문해서 부산집으로 보냈다.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귤 까먹기 좋은 계절
우리 엄마아빠도
그 시절의 나처럼 맛난 부위로만 실컷 드셨으면 해서.
매번 우리에게 가장 달달하고 과즙 많은 맛있는 부분은 양보하고,
껍질 가장자리, 씨앗 심지 근처만, 무르고 시들해진 조각만 골라 드시던
내 부모님도
덧)
내리사랑의 반대말이 있는거 알고 계셨어요??
내리사랑의 반대말이 올리사랑, 혹은 치사랑이라고 한답니다.
얼마나 부모의 자식사랑이 절대적으로 컸는지 내리사랑은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인데
올리사랑, 치사랑이란 말을 마흔이 넘어 처음 알게 되었답니다.
이제는 아기새를 키우며
나를 키운 부모님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게되는 것 같아요
오늘 아기새 연재는 제 아기새 시절이 떠올라
아련~했습니다 :)
수능 학부모님들, 아이들
모두모두 고생많으셨고, 이 고비에서 더 많은걸 느끼고 배우고, 성장하는 인생의 한 페이지가 되길 응원합니다. 저는 이제 옆에서 보는것만도 두근거리더라구요.
갱년기가 오려나...수능고사장 사진만 봐도 울컥
가을 타나봐.....
그리고 모두 행복한 주말되세요
귤도 많이많이 드시고 감기 예방하시구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