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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몬트리 Nov 19. 2024

[ 꺼내먹어요 ]  ft 만추


[ 꺼내먹어요 ]  ft 만추



쉽지 않죠. 바쁘죠. 왜 이렇게 까지 해야 하나 싶죠

바라는 게 더럽게 많죠

쉬고 싶죠. 시끄럽죠. 다 성가시죠?

집에 가고 싶죠?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을 거야

그럴 땐 이 노래를  초콜릿처럼 꺼내 먹어요

피곤해도 아침 점심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내가 칭찬해 줄게요

보고 싶어. 

많이 좋아해요

더 많이 안아주고 싶어요

사랑, 사랑 비슷한 걸 해요. 

어쩌면 정말 사랑해요



배고플 땐 이 노래를  아침 사과처럼 꺼내 먹어요

피곤해도 아침 점심밥 좀 챙겨 먹어요

그러면 이따 밤에 잠도 잘 올 거예요

힘들어요

아름다워서

알아봐 줘요 나를

흘려보내지 마요 나를

사랑해 줘요 날, 날

놓치지 마요


자이언티 노래 - 꺼내먹어요 가사 中





피곤하고, 힘들 때 꺼내먹고 싶은 날의 기록 




한 달 전부터 미리 낸 연차, 만추(晩秋)의 호수공원 

바로 집 앞인데도 호수공원이 크기도 하고, 딱 가는 곳만 가다 보니 

이렇게 한 바퀴를 다 둘러본 게 얼마만인지, 

한창 월든을 읽은 지 얼마 안 된 때라 소로우의 월든 호수가가 부럽지 않았던 우리 집 앞 호수공원



주말엔 워낙 사람이 많고 행사도 많아 시끄러운데

평일이라 그런지 적당히 사람들이 오가며 산책 중이고, 

날씨가 추워지기 직전이라 햇살도, 바람도 너무 좋았던 날 


이곳이 나의 월든 숲
밤엔 이곳이 월파정이겠지.
누군가와 함께 간다면 옷깃만 스쳐도 두근거리고 용기라도 내서 손잡아볼까 싶은 그런 길 ^^
힘 빼고 흐드러진 모습이 그냥 고마워
냄새는 별로지만 노랑을 좋아하는 나는 눈호강



중년을 가을이라고 표현을 많이 하는데, 

내 인생이 지금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라니,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걸으며 중간중간 조심스레 사진으로 담아보는 구석구석

평소 같으면 백만 장을 찍고 싶었을 텐데 이날은 최대한 아껴서 한 장 한 장 찍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내게 "예쁜 사진 보는 것도 좋아하시지요?"라고 질문을 한 적이 있다. 

그 질문에 

"사실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이 예뻐서 멋있어서 그 사진을 좋아한다기보다는 

저는 제가 사진을 찍는 걸 좋아하는데, 

그건 소중했던 그 순간을 찍어두면 저는 두고두고 그 사진을 볼 때마다 

그 순간의 햇살, 바람, 냄새, 감정, 소리가 다 생생하게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아서, 그래서 사진을 찍어두고 

그 사진을 다시 꺼내보는 걸 좋아해요"라고 답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누군가는 내게 "사진을 잘 찍는다"라고 칭찬을 해준 적이 있는데 

그 말에도 

" 저는 사진을 배운 적도 없고 기계치라 대단한 기술이 있지도 않지만 

대상을 좋아하면 잘 찍게 되는 것 같아요. 

사랑하는 사람도, 아이도, 하늘도, 구름도, 나무도, 내가 좋아하면 자꾸 바라보게 되고, 

자꾸 바라보다 보면 언제가 예쁜지가 보이고, 또 그 예쁜 찰나를 잘 찾아내기도 하니까,

그리고 예쁘게 담아주고 싶거든요, 사진에도, 마음에도"라고 답을 한 적도 있었지. 

(그런데 그렇게 찍어주기만 하다 보니 셀카는 못 찍는다는 게 함정 ㅋㅋ 이날도 내 사진 한 장도 없음,,ㅜ,ㅜ)



아무튼 이날 두 시간 넘게 이어진 산책은 

많은 말이 필요치 않고 

햇살과, 바람과, 흔들리는 나무, 떨어지는 낙엽, 그리고 이름 모를 가수의 사연 있는 목소리만으로도 

충분히 위로가 되고, 충전이 되는 그런 길이었다. 



몇 달 전에도 한번 걸어야지 마음만 먹고 가질 못했는데, 

중년, 가을이 지기 전에 

이렇게 다녀오니 너무 잘했다 싶었던 하루 




매일매일 잘 닦인 아스팔트 길을 달리고, 걷는 삶이지만, 

울퉁불퉁 투박한 공원 흙길을 걸으며 

걷는 이의 발자국소리, 숨소리까지 오롯하게 느껴지는 평온하고도 따뜻한 오후



무겁고 어려운 마음이 있다면,  흔들 그네에 등을 기대고 

흔들흔들 발을 까딱거리며 털어버리길, 


눈물이 날 것 같을 땐, 잘 타지도 못하는 춘향이 그네를 

두 손 꼭 쥐고 두발을 힘차게 굴려보며 용기를 내길,


지치고 슬픈 마음이 있다면

구석진 정자에 올라 바람이 눈물을 닦아주는 위로를 받길,


어둡고 막막한 마음이 있다면 

머리 위로 찬란한 햇살이, 호수 위에선 물결 위 반짝이는 윤슬이 만들어낸 환한 빛을 느끼길,


그리고 무엇보다 외로울 때

실없이 농담하며 함께 걸어줄 수 있는 발걸음을 기억하길,


호수공원은 그렇게 평일 오후, 선물 같은 하루로 

사진에, 눈에, 마음에 담고 왔다. 




그리고 연차는 소중하니까, 저녁엔 친구 만나서 참치 먹으러!!  



누가 술을 못 먹냐 물어보면 

정확한 답은


"술을 좋아하지는 않아요"이고 "분위기는 좀 마십니다" 인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혼술을 거의 하지 않고, 일부러 술자리를 찾는 일은 거의 없다. 

하지만 친한 동료, 친한 친구, 가족, 사랑하는 사람과의 술자리는 

술이 아니라 분위기를 마시는 것이기에

줄줄줄 이어지는 이야기와 함께 술술술 들어가는 듯, 


이날은 만추의 정취를 느끼고, 산책도 한창 하고 온 데다가 

반가운 친구도 만나 저녁에 분위기를 즐겁게 잘 마시고 왔다. ^^




초콜릿처럼, 아침사과처럼 

쉽지 않고, 피곤하고, 배고프고, 다 성가신날 꺼내먹고 싶은 날의 일기 



아참, 꺼내먹을 단풍잎도 소중히 하나 간직해 왔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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