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클아저씨는 틀렸어(3) 인생의 원

by Little Tree

-인생의 원 이야기(지은이 : 나)-


‘인생’이라는 신이

사람들 각자에게 알맞은 인생의 원을 주었다.

어떤 사람에게는 아주 큰 원, 어떤 사람에게는 작은 원이 부여되었다.

사람들은 그 원을 ‘삶의 과업, 직업, 혹은 나의 역할’ 이라고 부른다.

원이 작은 사람 일부는 자신의 원이 작다고 불평했다.

초라하고 보잘 것 없다고 원망하며 원을 내팽개쳐 버렸다.

원이 큰 사람 몇몇은 원이 크다고 불평했다.

부담스럽고 버겁다며 짜증을 냈고,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웅크리고 있었다.

신은 그들에게

“내가 당신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지금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을 하세요. 원의 의미를 찾으세요”라고 말했다.

그러자 한 청년이 신에게 말했다.

“제 친구는 상담소를 열고 사람들을 돕고 용기를 줍니다. 하지만 전 그저 재단사 조수에 불과합니다. 제가 뭘 할 수 있나요? 제 행동이 어떻게 삶에 의미를 줄 수 있느냐 말입니다!”

신은 말했다.

“개인은 자기만의 구체적인 인생의 원 안에서 대체 불가한 존재이고, 이는 변명할 수 없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제단을 해야 하는 일을 부과했고, 당신이 그것을 성취했는지가 중요합니다. 재단사 조수로서 책임감을 깨닫지 못한 상태로 살고 이를 저버리는 한, 구체적인 환경에서 더 이상 행할 능력도 없고, 자신이 부러워하는 사람보다 의미 있는 삶, 의미를 충족시킨 삶을 영위할 수도 없습니다.”


빅터프랭클의 ‘그럼에도 삶에 예라고 답할 때’에 나오는

재단사 조수와 프랭클의 대화를 읽다가

찰나의 순간에 ‘상담사의 원이 재단사 조수의 원보다 크며 의미있다.’ 라고 생각한 나를 질책했다.

(내가 프랭클이었다면 재단사 조수로서의 일에 의미를 부여하며 만족할 것인지, 좀 더 공부를 해서 재단사가 될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을 것이다.)


프랭클이 재단사 조수에게

‘개인은 자기만의 구체적인 인생의 원 안에서 대체 불한 존재다.’ 라고 힘을 주어 말할 때

나는, 내 인생의 원에 대해 생각했다.

내가 원하는 원을 가지기 위해 애썼던 시간들이 지났고

그 원을 책임지며 살아가는 삶에 만족하기에

원의 크기 앞에서 자유롭다고 자부하였지만

친구가 해외 출장을 다니면서 보내는 사진에 부러움을 느꼈고

변호사나 의사들을 만났을 때 위축되었던 것을 나 스스로는 알고 있다.


“그래, 아직도 개개인의 ‘인생의 원’ 앞에서 겸허할 수 없구나.”


재단사 조수의 삶에 진심 어린 경의를 표현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닫게 된 오늘은, 조금 헛헛한 밤이다.


그치만....

이왕 헛헛한 밤이니 만큼 잠깐 삐딱하게 생각해보고 싶다.


어떤 이들은 원의 크기를 모르기도 하며, 크기를 착각하기도 한다.

누군가는 단순히 주어진 것만 하기도 하며, 다른 이들은 무지개 빛깔로 채우려고 한다.

원을 키우려고 애쓰면서 그것에 만족감을 누리는 사람들도 있고

큰 원이 버거워 원을 작게 만든 후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원이 채워지든 말든 그냥 되는대로 사는 사람도 있다.


“프랭클아저씨. 왜 꼭, 인생이 던진 원을 꽉 채우는, 수동적인 존재여야만 하죠?”


프랭클 아저씨는 이렇게 말하는 나를 참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며 말하겠지.


“원은 고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늘 변화하죠. 그리고 원을 채운다는 것은 변화하는 원 안에서 부여된 과제를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고 -미래의 결과는 상관없이- 그것은 인생에 능동적으로 답하는 것이에요. 원을 채우는 사람은 모두가 능동적인 사람입니다. ”


크기를 착각하든, 어떤 것들로 채우든 책임지며 살아가는 사람은 능동적인 사람이다.

원의 크기가 커지든 작아지든 삶에 부여된 것들을 하나라도 행하며 살아가는 사람은

삶의 물음에 답한 사람인 것이다.


"죽음이 턱끝까지 찾아온 사람에게 의미를 찾으라는 것은 너무 잔인한 요구 아닐까요?"


"개인에게 주어진 인생의 원은 시시각각 변하며 늘 좋은 일들만 찾아오지 않습니다. 인생 가운데 마주하는 문제나 고통이 의미가 있고 없고는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실직을 당하여 빚 가운데 놓인 사람이 있는 힘을 다해 살아가는 것은 옆에 있는 가족을 위함이지요. 무엇을 좋아하고 무슨 일을 해야하는지 알 수 없지만, 학교에 와서 1교시만 듣고 집에 가는 것은 졸업장이라도 따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의미입니다. 내일 죽는 다고 해도 나를 사랑했던 이를 떠올리며 눈물 흘리는 것이 의미라는 것입니다. 죽음만이 의미가 되는 삶은 없습니다. "


삶이 우리에게 언제나 의미 충족을 위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말이 결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렇기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오롯이 개인의 몫이란 말도 백번 천번 맞는 말임을 안다.

그렇게 할말이 없어진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하고

터덜 터덜 집으로 걸어가겠지.


하. 삐딱한 밤이지만, 프랭클 아저씨의 말이 맞아서 더 삐딱해진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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