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터프랭클의 ‘유일성’에 대한 나의 독백]
당신은 평범하지 않습니다.
당신은 이 세상에서 유일한 존재입니다.
동일한 지문을 가진 사람이 없듯
당신은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유일한 사람입니다.
당신이 재단사 조수라 할지라도 지금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곳에서 당신은 유일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유일할 수 있는 이유는 불완전성에서 옵니다.
급한 성미, 약간의 허세, 가방 구석에 있는 핸드폰을 찾느라 바쁜 손, 2024로 찍혀있는 보고서...
완벽하게 동그란 내가 아니라 숭숭 뚫린 곳과 빈틈, 찌그러진 것들이 유일한 나를 만들어 냅니다.
그런데 빈틈이 가지고 오는 이 유일성이, 가끔은 불편합니다.
모든 것이 완벽한 존재이길 바랄 때가 있습니다
모든 순간 차분하기, 잘났으나 겸손함, 늘 정리 정돈된 집, 실수 없이 꼼꼼한 보고서...
모든 것을 잘 해내는 그런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완벽한 동그라미였다면 내 인생이 순탄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나는 완벽하게 만들어낸 로봇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러한 유일성은 자기 스스로가 근거가 될 수 없습니다.
남들과의 비교 속에서 유일성이 탄생합니다.
옳고 그름, 1등과 2등이라는 비교가 아니라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며, 너의 유일성과 나의 유일성을 인정하는 것 말입니다.
거대한 방 안에 혼자 있다고 생각해 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갈 것입니다.
방 안에 혼자 있을 때, 내가 이곳에서 유일한 존재임에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 공간 안에 다른 사람이 들어올 때는 상황이 달라집니다.
너와 내가 존재하며, 너와는 다른 나의 유일성을 발견하게 되며, 너에게 나는 유일한 존재가 되게 됩니다.
그럴 때 유일성은 의미가 있게 됩니다.
공동체에 자신을 연관시킬 때 유일성이 의미가 있다는 프랭클의 말을 나는 백번 동의합니다.
공동체 안에서 자신만을 위한 유한성은 의미 있게 평가되지 못합니다.
물론, 나를 위한 행위 모든 것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나의 ‘생존, 안위, 만족’과 관련이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유일성은 공동체 안에서 의미 있기 때문에 개인의 유일성이 인간 공동체를 위할 때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내가 하지 않으면 누가 할 것인가?
하지만 나만을 위해 한다면 나란 사람은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 하지 않으면 언제 할 것인가?
(약 2천 년 전 랍비 힐렐이 신조로 삼은 경구)
빅터프랭클의 이론에 대한 생각을 정리하면서
저는 의문과 걱정이 생겼습니다.
유일성에 대한 의미를 인간 공동체 안에서만 찾는다면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사람에게는 어떤 말로 희망을 전해야 할까요.
혼자서도 괜찮다, 의미 있게 살 수 있다고 말했는데
그들에게 유일성은 의미가 없는 걸까요.
빈방에 홀로 있어도 당신은 의미 있는 존재라고 힘을 주어 말했는데
그에게 무어라 말해야 할까요.
가족마저도 고통인 사람들에게 이기적이어도 된다고 말했는데
타인을 위해 살라고 말해야 하는 걸까요.
개인의 유일성이 공동체 안에서만 의미 있을지라도
공동체를 위한 삶일 때만 유일성이 가치롭더라도
저는 홀로 있는 사람들,
평생을 아무도 없는 방에 혼자 있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