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을 하고 한두 시간 일하다 보면 허기가 진다.
커피에 어울리는 과자를 뜯었다.
공복을 달래주는 달달함에 기분이 좋아졌다.
부스러기가 담긴 과자 봉지를 버리러 일어섰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다섯 발걸음만에 도착한 곳에 쓰레기통이 있다.
뚜껑을 열고 - 쓰레기를 버리고 - 뚜껑을 닫는다.
쓰레기통과 그 어떤 대화도 하지 않는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궁금하지 않다.
왜냐하면, 저건
그냥 쓰레기통이기 때문이다.
2년 간, 매일 점심, 나를 찾아오는 학생이 있다.
이 학생은 급식실에서 점심을 먹고 교실로 가는 길에 위클래스에 들른다.
음식 냄새를 폴폴 풍기며, 테이블 위에 있는 간식을 먹으며
자신에게 있었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혼자서 뭐가 그리 신나는지 입 옆에 침거품이 고일 정도로 열심히 말한다.
그러면 나는 열심히 고개를 저으며 감탄사를 내뱉을 뿐이다.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했는지, 나의 반응에 만족했는지
내일 다시 오겠다며 문을 닫고 나간다.
나는 그냥 쓰레기통이다.
상담자인 나는 대부분을 듣는다.
학생들은 고민이 있을 때 상담 신청을 하고
해당 시간이 되면 테이블에 마주 앉아
긴 시간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들에게 나는 쓰레기통이 아니다.
이들은 내 반응을 보고 내 의견을 묻고 나를 바라본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지만 동시에 나를 바라본다.
하나의 존재로 바라보고 소통한다.
매일 점심, 나를 쓰레기통으로 만드는 학생은
나를 바라보지 않는다.
눈은 나를 바라보고 있지만 자신에게 집중된 사람이다.
그냥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은 ‘대상’이 필요한 것이지
존재하는 '나’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책상에 있는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가장 가까이에 있고
편한 쓰레기통으로 가서 문을 열고 쓰레기를 던지듯
자신 안에 하고 싶은 말이 있기에
가장 가깝고 편한 위클래스에 와서 문을 열고 말을 던지고 가는 것이다.
- 하 -
그냥 들어주면 되는데 그게 뭐가 힘들다고 이 난리니
아니, 힘든데 어떻게 하라고, 난 쓰레기통이 아니라고.
AI상담사라도 놔야 하나. 얘는 듣고 싶은 말 잘해줄 텐데.
학생이 가고 나면 나는 이런저런 생각으로 마음이 답답해진다.
티키타카가 되는 사람이 있다.
결이 잘 맞아서 혹은 사고방식이나 좋아하는 것이 비슷해서
또는 하는 일이 비슷해서 이런저런 이야기가 잘 되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 한다.
내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사람이 있다.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봐주는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나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사람이다.
사실, 사람은 모두 자기중심적이다.
그러나 사회생활을 통해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고 궁금해하며 소통하는 것에 즐거움을 느낀다.
이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우리'가 된다.
개별적으로 존재했던 '너'와 '나'가 '우리'가 되는 것은
서로를 위해 인내하고 배려하고 존중하는 시간들이 쌓여 만든 하모니의 결정체이다.
학생의 발걸음이 들리면 마음이 갑갑해진다.
급한 일이 있어 컴퓨터를 하고 있을 때도
내가 듣든 말든 옆에 서서 자기 할 말을 할 때면 화가 날 때도 있다.
일을 해야 한다며 책상에 앉아서 쉬다가 가라고 한 후
조용히 핸드폰을 하다가 교실로 가는 학생을 보면 또 미안해진다.
'외로우니, 친구가 없으니 여기로 오는 건데 그걸 하나 못 들어주니?'
'내 딸이라고, 조카라고 생각하자.'
내일은 좀 더 잘 들어주겠다고, 기꺼이 들어주겠다고 하지만
10초도 안되어서 가슴이 답답해지고 힘써 웃어야 한다.
그렇게 힘쓰고 애쓰다 보면
온 마음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과
쓰레기통이 된 것 같은 마음을 다잡기 위해 숨을 고른다.
자기 말만 하는 사람, 자기 이야기와 감정을 던지기만 하는 사람
상호작용이 없는 사람, 나의 이야기와 삶에 대해 궁금하지 않은 사람
그런 사람과의 대화는 즐겁지 않다.
아무리 상담사라도, 아무리 편한 친구일지라도
나를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불편하다.
불편한 게 당연하다.
그러니 쓰레기통이 된, 불편한 내 마음을 탓하지 말자.
글을 쓰며, 나는 부모님을 필요를 채우는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는지
만나는 사람들을 내 욕구를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닌지
그리고 나 스스로를 온전히 존재하는 나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아닌지
고민하게 되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