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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May 03. 2017

도로에 들어서기까지

두 바퀴로 달리는 것의 두려움.

위이잉.

부릉.

차르륵, 덜컥.


스크램블러로 시동을 켜고 도로에 나서본다.

엔진음이 손바닥을 타고, 무릎을 타고 허리를 지나 가슴까지 울린다. 자동차 면허를 딴 이후로, 네 바퀴 또는 두 바퀴로 도로에 나가는 일은 수없이 많았지만 아직도 가슴 한견의 울림의 정체는 두려움이다.


도로의 차들보다 작고 날렵한 바이크 위에 올라탄 나는 신호를 기다린다. 창문을 내린 택시기사 아저씨가 힐끔 나를 쳐다본다. 긴장한 듯 핸들을 꽉 쥐고 있는 손과 함께 팔꿈치는 하늘로 올라가 있다. 다시 한번 어깨를 으쓱한다. 긴장을 풀고 심호흡을 한다. 손가락으로 스로틀과 클러치를 가볍게 잡아본다. 의식적으로 팔꿈치를 툭 떨꾼다. 배에 정신을 집중하며 힘을 최대한 뒤쪽으로 보내본다. 가슴과 등이 둥그랗게 말린다. 커다란 곰 인형을 안은 듯한 자세이다. 다시 신호가 켜진다.


차르륵, 덜컥. 일단부터 이단까지 그리고 삼단까지 올려본다. 도시를 주행하는 일은 매번 정지와 출발의 연속이 전부이다. 꽉 막힌 도로에 가득한 차들은 모두 자동일 것이다. 딸각딸각 발 하나로 조정하면 바이크도 편할 텐데. 발끝의 감각과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미세한 힘을 기억하며 머릿속으로 몇 단까지 올렸었는지 계산을 끝마친다. 덜컥, 덜컥 그리고 가볍게 톡, 왼손의 힘을 풀어본다. 중립을 찾는 일이 쉬워졌다.


사람들은 내게 무섭지 않냐고 물어본다. 바이크가, 바이크가 내는 속도가 무섭지 않다.  바람이 속도를 잊게 해 주고 바이크는 나를 지탱해주는 친구가 되어준다.


무서운 것은 도로의 차들과 보이지 않는 곳에서 튀어나오는 사람들이다.


스스로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나의 몸과 바이크는 무섭지 않다. 브레이크를 갑작스럽게 당기에 만드는 사람들이, 깜빡이를 켜지 않고 내 옆으로 다가오며 밀어내는 차들이 무섭다.


두려움을 이겨내기 위해 바이크를 오늘도 내 몸처럼 다룰 수 있을 때까지 익숙해지기 위한 훈련을 계속한다.

초보운전자를 당당히 붙이고 거북이 운전을 하는 차들이 간혹 눈에 띈다. 그들도 나와 비슷한 마음으로 도로 위를 달리고 있을까.  잔뜩 웅크린 마음을 티 내지 않으려 노력한다. 이제는 익숙해진 기어 변속을 하며 다시 한번 어깨의 힘을 풀어본다.


속도가 올라간다. 내 옆을 스쳐 앞질러가는 자동차들이 하나둘씩 줄어든다. 도로의 흐름에 벗어나지 않는 주행속도까지 맞춰 본다. 헬멧 속으로 바람소리와 엔진 소리 들어온다. 다시 한번 어깨의 힘을 풀며 몸을 웅크려본다. 바짝 엎드린 몸은 바람의 저항을 줄여준다. 그럼에도 내 몸은 바람 앞에서 흔들린다. 바람 때문인지 바이크의 속도 때문인지 판단할 겨를도 없이 내 몸이 나부끼지 않도록 다시 한번 견고하게 몸을 지탱하며 유연하게 등을 말아보려 애써본다. 속도계를 의식하지 않아도 이제는 주행속도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조금 더 속도를 올려야겠다 생각하며 기어를 변속한다.


이미 저 만치서 숙련자가 달리고 있다.  일정 거리를 지켜가며 서로를 주시하고 지켜주고 있다. 나는 앞서 가는 숙련자의 등 뒤 만을 눈으로 좇으며 헬멧 속으로 전해지는 지시사항에 귀 기울이던 생초보를 벗어난 지가 얼마 되지 않는다. 그래도 이제는 고개를 돌려 진입하려는 도로의 상황을 힐끔 쳐다보고 여유롭게 속도를 내기도 하고 사이드 미러로 좌우의 상황을 판단하며 차선을 변경하기도 한다. 속도를 내지 않고 천천히 가는 게 때로는 더 위험하다는 것을 몸으로 알게 된 후론 자신 있게 스로틀을 당긴다.


처음 자동차를 운전하던 때 운전병이었다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도로는 약육강식의 야생이라고.

그리고 두 바퀴는 네 바퀴의 자동차가 가득한 도로에서 스스로 바짝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으면 안 된다. 나만 조심하면 되는 것이 아닌 것은 자동차나 바이크나 마찬가지이지만 바이크는 보호막이 없다.


그리고 바이크를 타는 기분을 만끽하며 즐거움을 느끼는 것에도 보호막이 없다.


쭈뼛거리며 처음 올라탔을 때만 해도 이런 재미에 빠질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한참을 달리고 집으로 돌아와 주차장에서 바이크에서 내려오고 나면 손 끝에서 아쉬음이 남아 쉽게 헬맷을 벗지 못한다. 조금 더 타고 싶은 마음이 간질간질하다. 이미 바닥을 드러낸 체력을 알기에 집으로 돌아와 푸석해진 몸을 이불속으로 밀어 넣는다. 내일이면 긴장으로 온몸에 퍼진 피곤함이 사라지길 기대하며 눈을 감는다.


처음 박스를 까고 나온 스크램블러를 집으로 데려온 날 주행거리를 9km였다. 1,000km 주행 후 점검이 꿈같이 느껴지던 그 날부터 한 달 정도가 흘렀다. 곧 점검을 받을 날이 다가오고 있다. 훈장 하나 받는 것처럼 기쁘다.


어른이 되어서 스스로 배우기를 잘했다고 느껴지는 것이 몇 개 있을까.


배워야만 했던 많은 것들이 쓸데없는 시간낭비에 돈지랄이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생존을 위해 아둥거렸던 날들이었다. 승진을 위해 툴을 익혀야만 했고, 자격증을 따야 했고, 나를 증명하고 더 높은 스펙을 갖기 위해 내 젊은 청춘을 책상 속에 코 박고 보내야만 했다.


이번에는 좀 다르게 해보겠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 갈 수 있도록, 자신 있게 달릴 수 있도록.  발끝으로 손바닥으로 전해지는 떨림이 마음까지 덜컹이게 할 수 있는 흔치 않은 시간이다.  파란 하늘 아래 오롯이 나 하나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으로 거대한 도시 서울과 마주 서 본다. 그렇게 길 위에서 두 바퀴에 앉아 있노라면 나라는 사람이 커다란 존재가 된 듯하다.


바이크를 사고 연수를 받고 스르룡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지금보다 자신있게 도로에 나서기 위해 두 바퀴에 올라탄 두려움을 이해하고 극복하기까지 많은 시간과 훈련이 필요할 것이다.  아마도 가장 필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지금 이 순간을 즐거워하고 있는지를 기억하는 것일 테다.


그저 즐거워서 재미있어서 보냈던 시간이 참 오래간만이다.

그 시간 속에 두려움은 직장인으로 살면서 언제나 가지고 있던 불안함에 비하면 아주 작은 것일지도 모른다.


불안함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이미 지나쳐버린 나의 시간들이 후회되었다. 이미 돌이킬 수 없었던 날들이 지금, 여기 두려움을 마주하고 다시 한번 달리려는 나를 만들어 냈다.  지나간 풍경들을 돌아보는 대신 파란 하늘 앞에 파란 불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기로 한다.  


도로에 나가보자. 두려움, 무서움을 안고 오늘도 달려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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