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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May 26. 2017

갈 곳이 없다.

가고 싶은 곳도 없다.

절망으로 바닥까지 쳐본 이들은 안다. 

이제 이쯤 되었다 싶을 때쯤, 그보다 더 강한 녀석이 오고, 어느 정도 안정되었다 싶을 때쯤 전혀 생각지 못한 곳이 터진다. 엎친데 덮친 격이라고, 때로는 불행의 연속이 사람을 더 강하게 만든다. 대부분 그렇게 열심히 살아간다. 평범한 이들이 그렇다. 


직장인이었을 때, 회식자리에서 한 번쯤 나오는 얘기가 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만 가면 행복할 줄 알았는데 취업해야 하고 취업했을 때 이제 좀 살만 하겠구나 싶었는데 여기는 지옥이라고. 취업해서 돈 모아서 결혼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이를 가져야 하고 아이가 생기면 남들처럼 단란한 우리 집이 저절로 될 줄 알았는데 빚을 내 집을 사고 아이 학원 보내느라 등골이 휜다고. 삶은 계속 내 피를 빨아먹듯 에너지를 소모하게 만들고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아무것도 즐겁지가 않다고.


어느 인생에나 한 두 가지의 애로사항이 생기기 마련이다. 커다란 절망에 빠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현실을 부여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간당간당하게 살아가고 있다. 정말 빠져나올 수 없는 늪에 빠진 이들은 힘들다 투정할 정도의 기운도 없다. 위로하기도 겁나는 그런 이들을 만날 때면 정말이지 남의 불행 앞에 나의 소소한 불만 따윈 입 밖에 꺼내기조차 민망하다. 그래도 뒤돌아서면 내 인생이 제일 힘들고 외롭고 거칠더라며 방구석에서 찔끔거리거나 길가다가 눈물이 주르륵 흐르곤 한다.


희망퇴직은 말 그대로 희망이다. 적어도 내게는 희망이다. 절망이라 말하기엔 지금 내가 서있는 이 곳은 너무나 평온하다. 오히려 그 평온함이 무서울 때도 있다.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기만 해도 되는 걸까. 누군가가 나를 찾아주기를. 아무도 찾지 않는 순간에는 결단을 내려 사장님 한번 해보자 하며 이렇게 시간을 보내도 되는 걸까. 꼬리를 무는 생각조차 사라지자 곧 실업급여가 끝이 난단다. 


한 달에 네 번 이력서를 낸다. 경험이 많은 사람은 조건이 까다로워진다. 새로운 도전이 무조건 낫다는 말도 못 하겠다. 대기업만 한 연봉을 주는 곳은 없다. 적어도 내가 있던 업계에서는 말이다. 창업은 아주 신중해야 한다. 대박을 치겠다는 마음으로 도전할 일도 아니고, 자선 사업하듯이 내가 가진 것을 퍼 나르는 바보짓은 하지 말아야 하니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다른 분야 기웃거려보니 알겠다. 세상에 평범한 사람의 노동력만큼 싼 것이 없다. 세상에 공평한 업계가 이리도 없는 것일까. 그 나물에 그 밥이라면 나의 희망퇴직은 절망일 수도 있다. 


사람마다 직장을 잡는 기준은 다르다. 나의 조건을 나열해본다. 

연봉이 적다면 근무시간을 정확히 지켜야 한다. 

연봉이 많아도 철야는 이제 무리이다. 

직급을 낮춰서 대리급으로 가고 싶지 않다. 승급은 아니더라도 동급 수준으로는 가야겠다. 

기왕이면 집 가까운 곳으로 고르고 싶다. 

나는 여자이고, 언제든 가까운 시일 안에 아이가 생긴다면 낳을 것이다. 

어떤 조건이 나를 가장 직장인으로 돌아가기 가장 힘들게 만드는 것일까. 과연 어느 직장이 흔쾌히 나를 받아줄 것인가. 내 능력에 대한 의문을 뒤로 보내더라도 결혼한 여자, 그 벽이 얼마나 공고한지는 겪어봐야 안다. 그 벽을 만든 게 같은 직장인들이기에 더 어렵다.


돈을 번다는 것은, 어딘가에 소속되어 자기 몫을 한다는 것은 나의 시간과 능력을 그 회사를 위해 바친다는 것이다. 예전 신입시절이야 우리는 가족이고 회사의 성공이 나의 성공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지금의 나의 생각은 아주 깔끔하다. 회사에 소속된 직장인은 보수만큼 자신의 인생을 써야 한다. 하고 싶은 것 참아야 하고 갖고 싶은 것 포기해야 한다. 내 작품 하듯 일하지 않고 회사와 사장의 입장에서 접근해야 한다. 비록 회사와 사장이 나를 위해 경영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연봉이나 직장의 비전을 어느 정도 타협한다고 해도 지금 나의 눈 앞에 펼쳐진 수많은 대기업, 중견기업, 공기업, 영세 소기업, 혹은 프리랜서 그 수많은 길들이 모두 다 나를 받아주지 않을 것만 같다. 그리고 그 길 앞에 나는 어디도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나의 열정은 어디로 다 날아간 것일까. 회사를 사랑했던 20대 시절의 1 % 라도 솟구친다면 좋을 텐데.  어디라도 뛰어들겠다는 불나방이 다시 될 수는 없는 것 같다. 그럴 의욕이 생기지 않는다. 


연로하신, 그래서 지금 임원이란 타이틀을 움켜쥔 어른들이 말한다. 

요즘 애들은 패기도 없고 끈기도 없어. 세상에 쉬운 게 어디 있겠냐. 나 때는 말이야.......


젊은, 그래서 지금 취준생의 열정 넘치는 후배들이 말한다. 

인생을 가치 있게 살고 싶어요. 돈보다는 내 삶이 소중해요. 그게 안정이든, 열정이든.


경력 단절의 길에 서있는 30대 중반의 나는 어떻게 말해야 할까.

 

패기와 끈기를 20대부터 지금까지 빌어먹을 회사에 다 쏟아부었다. 그리고 박차고 나왔다. 내 인생, 가치 있게 살아야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달라졌다. 바보같이 열정만 쏟아부을 수 없다. 영리해져야 한다. 그러다 보니 한걸음 내딛는 게 너무나 쉽지가 않다. 


'마흔 통'이라는 책이 생각난다. 누가 봐도 열정적으로 살아온 지은이는 어느 정도 성공한 언론인이지만 알 수 없는 우울증에 무너지고 만다. 그리고 극복하기까지의 기록을 담은 책이다. 공감과 동시에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누구에게나 닥칠 수 있는 증상이었다. 누가 그렇게 열심히 살아가라고 했냐며 다 자업자득이라고 빈정댈 수도 있다. 그것도 성공한 사람의 투정에 불과하다고 삐딱하게 바라보자면 배부른 자의 소소한 불만일 수도 있다. 절망은 항상 자기 것이 최고이고 내 인생이 세상에서 제일 힘드니까. 나만큼 힘들 사람은 없을 거라고 다들 무의식 중에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인생을 산다는 것이 돈을 버는 것, 명예를 얻는 것과는 다른 의미가 있다고 믿고 싶다. 내가 지금 여기서 찾고 있는 것도 바로 그것이 아닐까. 직장을 얻어 다시 사회에서 '나'라는 사람의 가치를 눈부시게 빛내기 전에 단단해져야 하는 것은 내 인생, 그 자체가 아닐까. 연봉이 낮아도, 지나친 야근이 몰아쳐도 내 직장을 사랑할 수 있는 무조건적인 애사심이 아닌 프로다운 일처리 능력만으로 당당히 내 권리를 요구하고 그 이상으로 보답할 줄 아는 모범적인 직장인으로 거듭나고 싶다. 그러려면 내 인생의 확신, 거침없는 자신감이 꽉 들어차야 하는데 과연 나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 걸까. 


원하는 것을 다 가질 수 없다고 일방적인 한쪽의 희생을 치르신 선배 시대의  끝자락을 밟고 그나마 콩고물이라도 주워 먹었던 나이다. 오늘의 시시콜콜한 세상에 대한 불만은 어느 인생에나 하나씩은 있는 그저 그런 힘겨움에 불과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된 삶이 시작될 것이고 그러면 또 다른  불만과 힘겨움이 찾아올 것이다. 그런 게 인생이겠지. 한 가지가 해결되면 또 다른 고민이 시작되는.


조만간 실업급여가 끝이 난다. 그마저도 고마운 회사 덕이다. 그게 고맙다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지금 우리나라의 노동시장이 참 안타깝다. 회사 밖의 수많은 사람들이 4대 보험의 바깥에 서 있다. 신문에서 읽고 뉴스에서 들어도 직접 만나보면 당연하다 느꼈던 많은 것들이 지켜지고 있지 않는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지키지 않는 이들이 평범한 우리들이었다는 모순 앞에서는 그 누구도 욕할 수가 없다. 모두가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는데,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지겠는가. 


갈 곳이 없고 가고 싶지도 않다. 어쩌면 이 시기가 끝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통장의 잔고가 바닥을 보여도 말이다. 이러다 아이라도 생기면 그저 일하지 않고 아이를 키우는 일에 몰두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한 때는 직장이었던 이가 환멸을 느끼며 등을 돌리게 되는 과정이 단지 개인의 선택이 아님을 어쩔 수 없이 등을 돌리게 되는 요인도 있음을 이제야 알겠다. 


직장인이었을 때, 능력 있으면 당연히 일하는 것이고 노는 이들은 모두 무능력자에 게으르다 욕했더랬다. 그런 내가 지금 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하니 아찔하다. 내가 만든 세상이었음을 알아도 바꾸는 방법을 모르니 더 아찔하다.  


모든 직장인들에게 일하지 않을 기회, 그래서 다시 재취업하며 비슷한 고민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오늘도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을 경력자이자 백수들의 고민이 모두의 공감을 얻는다면 조금은 바뀔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세상이 변해도 또 다른 문제점이 생길 것이지만 말이다. 마치 인생처럼.  


인생의 고민은 끝이 없다. 세상의 모순도 계속 변할 뿐 항상 거기에 있을 거다. 문제는 내가 어떻게 살아있느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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