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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Jul 16. 2017

블라디보스톡에서 하바롭스크까지

라이딩 시작

러시아의 도로는 반갑지가 않다. 여기저기 구멍은 필수이고 금이 가있지 않은 도로가 있기나 할지 감이 안잡힌다. 오래된 도로들은 유지보수를 한번도 하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도 큰 도시라는 블라디보스톡에서 빠져나가는 길이 험상궂다. 날씨는 쨍한데 길은 흐림이다. 긴장을 풀지 못한 채 외곽까지 숨한번 고르지 못한다.


팔차선의 도로가 나온다. 일방향의 꼬불꼬불한 시내 중심가의 길과는 차이나게 넓다. 상태는 고만고만하지만 그래도 조금 더 나은 것 같다. 일부러 동해에서 가득 채우고 주행을 한 탓에 아직은 기름에 여유가 있었던지라 한참을 지나고 나서야 주유소에 들어간다. 인터넷의 후기들을 통해서 이 곳의 주유소의 시스템은 인지하고 있었으나 실전에 들어가려니 긴장이 쫙 들어간다.


화려한 우리나라의 주유소의 간판들과 언제나 대기하고 있는 직원들이 보이지 않는다. 러시아의 주유소는 포장이 어설프게 되있는 마당에 오도카니 기름통이 종류별로 늘어서 있고 차주가 원하는 기름통 앞에 주차를 한 후에 정산소에 가서 돈을 내야 하는 시스템이다. 만일 넘치면 중간에 끓어서 남은 차액을 돌려받고 모자라면 새로이 넣어야 하는데 단위가 10리터부터인게 대부분이다.


도시 언저리의 주유소인데 허름하다. 게다가 쇠창살로 꽁꽁 싸맨 정산소 안의 사람의 얼굴은 보이지도 않는다. 손짓으로 저기 두 대의 바이크에 95 짜리 기름을 20리터 넣어달라고 얘기한다. 다행히 카드로 결제까지 성공이다. 결제를 마치자 대기하고 있던 짝꿍이 셀프로 주유를 시작한다. 기름이 20리터가 들어갈 정도가 아니였는지 몇 리터가 남았다. 다시 쪼로록 달려가서 환불을 받는데 카드로 결제했다 취소하려니 여간 귀찮은게 아니다. 그 사이 몇 대의 자동차가 왔다간다. 불편함을 느끼는 건 친절한 대한민국에서 온 나밖에 없다.


아침 일곱시에 출발해 3시간이 지났다. 천천히 달리기도 했고 중간에 주유를 했으니 3시간 중 끓임없이 달린 시간은 2시간 정도이다. 1/3 지점쯤인 것 같다. 이 정도 속도이면 오후 5시면 도착할 수 있을 꺼란 예감에 가슴이 뛰었다. 햇살은 뜨겁고 주유소에는 먹을 곳이 없다. 식당은 11시에 문을 연단다. 화장실을 물어보자 저 멀리 떨어진 간이 화장실을 가리킨다. 이 화장실이 그나마 나은 상태임을 이 때만 해도 몰랐다.



다시 두시간 여를 달린다. 쉴 곳이 나오지 않는다. 다리가 아파온다. 엉덩이가 저린다. 손이 뜨겁다. 헬맷이 무거워지기 시작한건 이미 오래 전이다. 결국 그늘이 있는 어느 길가에 세우고 잠시 돗자리를 편다. 일단 주저앉아서 이렇게 쉽게 먹을지 몰랐던 비상식량에 물을 부어버린다. 먹어야겠다. 제일 좋은 자리에는 이미 러시아 모녀가 자리를 잡고 앉아있다. 감자를 파는 모양이다. 앞으로 다양한 과일을 만날테지만 이 때만 해도 너무 생소했다. 뭔가 아이에게 주고 싶어 선물받은 사탕을 몽땅 집어서 주었다. 좋아한다. 엄마는 다가와서 짝꿍의 담배를 하나 가져간다.



러시아의 도시에 대한 인상은 우리나라의 소도시와 다를게 없다. 오래된 건물, 팔리지 않아 그대로인 물건들, 좌판을 내놓은 상인들과 가끔 엉뚱하게 툭 튀어나온 세련된 상점들의 오묘한 조합이다.  유라시아 횡단을 시작하는  AH30 도로의 풍경은 난생 처음보는 거대한 영화 같다. 바람결에 움직이는 푸른 물결이 저 멀리서 다가온다. 작은 조합들이 가까워질수록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늪지에서 올라온 잡초들의 물결은 초록바다 같다. 차이점은 그 초록바다에서 끓임없이 올라오는 날파리의 존재이다.


오늘의 목적지까지 반을 찍어갈 무렵 앞서가던 짝꿍의 사이드백 위의 연료통이 벌러덩 누워버린다. 블루투스로 연결되어있기에 나도 모르게 소리치고 말았고 놀란 짝꿍은 급하게 갓길에 바이크를 세운다. 평소와는 다른 길 탓에 바이크의 진동은 우리의 예상을 넘어섰고 연료통을 감싸던 끈들은 그 진동에 의해서 계속 고리와 마찰을 일으킨 모양이다. 왼쪽의 끈이 끓어져버렸고 다른 쪽도 반쯤은 끓긴 상태이다. 주유소를 찾아헤매기 시작하던 때였기에 비상연료통을 각자의 바이크에 비워버리고 가볍게 다시 장착한다. 첫날의 긴장감에 이렇게 깜짝 놀란 일까지 더해지니 어깨가 결리기 시작한다.


오후 2시, 태양이 가장 뜨꺼운 시간, 초록의 대륙이 가장 싱그럽게 스스로를 드러내고 있는 와중에 우리 역시 땀으로 몸이 뒤범벅된다. 파란 하늘과 초록의 땅, 그 가장 중심에서 끝없이 이어지는 길이 자꾸만 나타난다. 언덕이였다가 지평선이였다가 왼쪽, 오른쪽 길들은 항상 다른 모습으로 다음을 예고한다. 눈으로 보고 바퀴가 쉴새없이 굴러가는데도 나는 내가 보고 있는 풍경이 믿겨지지 않는다.


아득히 멀어져 가는 집과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저 길의 끝 중간 쯤 어딘가에 내가 서있나 보다.


앞을 향해 열심히 달려가는 데도 마치 길을 잃은 것만 같다.


드디어 끝인가 싶다가도 한참을 더 가야한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는다.


몸이 지쳐가는지 한시간을 버티는 것이 힘겹다. 다시 한번 휴게소를 찾는다. 주유소 옆의 까페는 시원하다. 너무 오래 머물면 안될 것 같지만 에어컨이 있는 깨끗한 곳에서 십여분을 머문다. 어쩌면 다시 만나는 휴게소도 이와 같을 꺼라 생각해본다.


다시 휴게소를 찾는다. 이번엔 에어컨도 없고 마당은 비포장이다. 컨테이너 트럭 운전자 아저씨 한분이 넉넉한 풍채를 자랑하며 늦은 점심을 먹고 있다. 물 한병과 콜라 한병, 한숨에 들이킨다. 헬맷에 죽어있는 벌레 탓인지 멈춰있는 우리를 향해 파리 떼가 돌진한다. 어쩔 수 없이 헬맷을 쓴 채로 상대방의 쉴드를 딱아준다. 물티슈 챙겨오길 천만다행이라고 어깨를 으쓱해본다. 편의점은 어디서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아 불안하면서도 당장 눈앞의 물티슈를 보니 안도감이 든다.


마지막 주유소를 찾은 건 오후 6시, 바이크에 올라탄지 11시간 째이다. 거의 다 와간다. 남은 거리는 100km 가 되지 않는다. 지나온 길이 600km 이상이기에 별거 아닌 것 같아 흐믓해졌다. 그런데 고민과 번뇌가 시작된 것은 이 남은 짧은 거리부터였다.


눈 앞에 펼쳐질 것을 알기에 더 불안한 순간이 있다. 한시간마다 체크하던 것을 십분마다 체크한다. 이것밖에 오지 못했음에 절망하고 좌절한다. 이와 비슷한 느낌이 떠오른다. 오지않을 것만 퇴근시간을 기다리며 집에 가고 싶어 죽을 것 같았던 직장인 시절, 바로 딱 퇴근 30분전의 기분이다. 회사에 머무르는 9시간 중에 고작 30분인데, 가장 길고 지겹고 우울했던 시간. 750km를 지나왔음에도 마지막 몇 십km 앞에서 나는 절망한다.


처음으로 하루 종일 라이딩을 해본다. 중간에 지치면 어디서라도 자면 된다고 무리하지 말자고 했지만 무리하게 된다. 과연 이게 무리인건지 적정한건지는 앞으로 달려보면 알겠지만 처음은 언제나 신기하고 어려운 법이다.


누군가는 나의 여행 앞에 바이크가 붙은 것을 보고 고수라고 여기겠지만 나는 초짜다. 면허 딴지 이제 갓 4개월이 넘어간다.  스크램블러로 넘어가기 전 스쿠터까지 하면 총 주행거리는 5,000km 정도에 불과한다. 여행을 가기 위해 많은 연습과 투어를 다녔지만 지난 해에 다녀온 지인의 말이 딱 맞다. 유라시아 횡단은 스로틀을 당길 줄만 알면 된다. 무조건 직진, 거기에 안전하게만 붙이면 된다.


여행의 시작점을 찍고 나니 알겠다. 어떤 여행이든 준비에 필요한 것은 시간, 돈, 무엇보다 강한 의지이다. 내가 여기까지 어떻게 왔는지 기억나지 않을정도로 강렬하게 여행을 원했었나 보다. 시작점을 찍고 한참을 지나쳐 첫날을 마무리 하고 나니 나의 예상보다 훨씬 힘들다.


무엇이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까. 고생을 많이 한 힘든 여행일까. 그저 푸욱 쉬기만 한 몸과 눈이 즐거운 여행일까.


뭐가 되었든 유라시아 횡단을 하러 온 것이다. 열심히 달려서 대륙의 크기를 처음으로 경험하는 거다. 하루에 몇 백키로를 가더라도 내가 달리고 있다는 그것 하나면 된다. 첫날의 극한 체험이 내 몸을 두들긴다.


어렵게 찾은 숙소는 간판을 읽을 수가 없었다. 예약 싸이트에는 영어로 표기되있었고 간판은 러시아어이다. 당연한 순리인데도 코 앞에 호텔을 두고 뱅뱅 돌다가 넘어진다. 제자리 쿵, 제쿵이다. 팔에 힘이 스르륵 풀리고 손이 떨려온다. 짝꿍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이른다. 감정의 널뛰기는 여행마다 계속되는데 이번만큼은 안전과 관련된 것이라 부담이 커진다. 아홉시가 되어도 해가 지지 않는다.


첫 유럽여행을 했던 23살의 내가 파리에 도착했던 시간 역시 아홉시였다. 밤 아홉시임에도 밖은 환했다. 어린 나는 밤이라는 시간에 갇혀 환한 도시에 놓여있었음에도 눈물을 흘리며 길바닥을 헤맸다. 큰일이라도 생길 것만 같던 여름이였다.


세월이 훌쩍 흘러 첫 라이딩으로 도착한 하바롭스크의 밤 아홉시 역시 환하다. 더이상 나는 울지 않는다. 아무리 지치고 힘들어도 울지 않는다. 무슨 일이 생긴데도 그저 그럴 수 밖에 없음을 알겠다. 위험이 없는 여행을 원했다면 시작조차 하지 말았어야 한다.  뭐든지 시작하고 나서 이럴 줄 몰랐다고 징징거리는 어른이 세상에서 제일 못났다. 그럴 줄 몰랐다는 변명만 늘어놓는 바보 같은 이들을 많이 보았다. 몰랐다는 건 거짓말, 알면서도 아닐꺼라고 믿지 않았던 거겠지. 거짓말을 하고 모르쇠로 일관하는 사람으로 산다는 게 본인에게는 가장 현명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다만 나는 그 사람이 되고 싶지도, 엮이고 싶지도 않다.


최고조의 긴장감이 안도감으로 바뀌는 순간이 결국은 왔다. 짐을 풀고 가장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향한다. 오늘의 안전함을 자축하며 내일도 안전하자고 스스로에게 다짐해본다. 살려고 온 여행이다. 살아서 돌아가야지.


2017.07.05. Riding 1 Day.

From Vladivostok To Khabarovsk



*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여행 14일 째. 여기, 노보시비시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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