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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Aug 07. 2017

끝없는 길을 보았다.

하바롭스크에서 270km

작렬하는 태양이 뜨겁다. 길에서 아지랑이가 올라올법도 한데 주변의 거대한 초록물결탓인지 어느 순간에는 숨이 막히다가도 그럭저럭 견딜만하다.


첫날 달렸던 750km의 여파가 아직까지 남아있다. 어제의 기억을 더듬어 대략 걸리는 시간을 계신해보고 나선 길이다. 오전 11시, 다시 한번 시동을 걸어본다.  오전의 끄트머리는 한낮처럼 덥다. 러시아의 큰 도시임에도 길의 상황은 난감하다. 그저 아스팔트의 크랙뿐이면 나을텐데 경전철의 바닥과 일반 자갈들이 애매한 위치에서 등장한다.


조심!


짝꿍의 목소리가 세나를 타고 들려온다. 앞서 가는 그의 바퀴를 뚫어져라 바라보며 뒤따라간다. 아직은 옆, 뒤를 볼 여유가 없다. 특히 도심에서는 어설프게 살피다가 그를 놓치면 심정적인 불안함이 더해져 괜시리 잘타다가도 멈칫하게 된다. 도심에서는 아직도 어깨 힘이 빠지지 않는다.


간신히 도심을 벗어난다. 다시 드넓은 대지에 내던져졌다. 헬맷 뒤로 바람이 지나간다. 아니, 바람을 헬맷이 뚫고 간다.


조심!


앞서 가는 그가 한 쪽 다리로 음푹 패인 도로 끝을 가르킨다. 눈으로 시선이 가자 바이크가 흔들, 놀란 가슴과 몸이 따로 논다. 이제는 반응속도가 예전보다 빨라졌다. 그래도 항상 조심을 외치는 짝꿍이다.  데려온 아내가 행여나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그런 나 때문에 원숭이 나무에서 떨어지듯 실수할까 걱정이다. 같은 길을 가면서도 우리는 서로를 다른 방식으로 아끼고 있다.

평생을 우리는 이렇게 관계 맺고 살아가게 될까. 앞서가는 짝꿍의 뒤그림자를 조심스럽게 앞바퀴로 밟아본다. 따라갔다치면 다시 멀어지고 열심히 뒤쫗아간다. 앞서가는 그는 사이드미러를 통해 나를 계속 주시하면서도 앞과 옆, 그리고 어디선가 나타나는 뒤 차량을 의식해야 한다. 스스로 주체적인 아내, 여자, 사람으로 살겠다고 다짐해보지만 결혼이라는 한 고리로 이어진 이후에 우리의 관계, 그 안에서도 나의 위치는 많이 변하였다. 저절로 낮아진 건가. 당연한 수순인건가.  그걸 낮아졌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이다. 백수가 된 이후로 나의 존재에 대한 고민이 다른 쪽으로 변해갈 때가 있다. 비빌 언덕이 되어준 그에게 비비고 있는 나를 말리지 않았다고 탓하는 격이다.


문득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고, 그저 잘타는 이가 앞이고 서툰 이가 뒤일 뿐이다는 것을 깨닫는다. 때론 과한 생각과 비유가  더없이 편했던 현재를 불편하게 한다. 한국에서 남자와 여자의 결혼 후의 위치라는 것, 정확한 정의가 있기나 할까. 매일 쏟아지는 조언들 속에 너무 다른 각각의 상황이 정확히 들어맞기나 하는 것일까.  언제부터인가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정의가 매스컴에 나온 이후로(특히, 행복해보이는 가정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들이 나온 이후로) 모두들 그 삶을 만들기 위해 나, 그리고 내가 속한 우리의 진짜 모습을 잊는다. 복잡하고 힘든 관계가 결혼의 기본 개념인데 남편은 이래야 하고 아내는 이래야 한다는 정의에 그저 고개만 주억거린다.  


달리면서 많은 것들이 깨끗하게 보여진다. 아무 생각 없이 그만둔 9년차 직장인에서 백수가 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어하는 걸까.  그저 한 남자의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삶을 원하는 것인지 그 동안의 내가 살아온 삶과 달라지는 시간들이 낯설없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앞으로의 시간들을 고민하고 걱정했다. 살아가는 지금보다 살아갈 내일의 모습만을 그려보느라 지금을 못보고있는 것 아닐까. 이렇게 달리는 순서에 과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처럼 말이다.


지금 우리의 모습을 바라본다.  앞을 달리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을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삶, 뒤에 달려오는 아내를 바라보느라 앞만 보기도 바쁜 시간을 쪼개서 달려야 하는 삶. 부부의 삶에 정답이 있기나 한걸까. 지금 우리의 삶은 그저 라이딩이다. 앞으로도 그렇게 그저 둘이서 살아가면 되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부부의 앞날의 관계는 지금 이렇게 달리는 것과 비슷할 것 같다.  같은 길을 그저 달리는 것.  누가 앞인지, 뒤인지 그리고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이가 누구인지는 삶이라는, 길이라는 큰 흐름 앞에서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쩌다 같은 길이 아닌 다른 길을 가고 싶은 이가 생길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건 두 사람 모두가 원인 제공자이다.  끝이 없는 길을 가는 동안 아무 얘기도 하지 않았거나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거나, 결국은 두 사람 모두가 다른 길을 원했던 것이나 마찬가지일 테니.


매우 더운 오후이다. 뜨거운 해도 달구어진 아스팔트도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넓은 대지도 처음 겪어본다. 다들 내륙으로 갈수록 더워질거라며 구멍이 슝슝 뚫린 자켓을 권했다. 다양한 기능에 보호구가 장착된 투어링 자켓과 고민하다 결국 가져온 자켓인데도 뜨거운 바람 탓인지 덥다.  짧지만 강렬한 인상의 라이딩이다.


길고 긴 광활한 대지 위로 끝이 보이지 않는 길이 있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는 막막함이 이제는 받아들여진다. 태어난 순간부터 죽음이 언제 올지 몰라도 그저 길고 긴 인생을 묵묵히 살아가는 것처럼, 라이딩을 하게 된다. 당장 눈 앞에 목적지가 오늘까지의 내게 주어진 몫이다. 그 이상을 간다한들 잘 곳도 없다. 그런다 한들 내일 또 달릴 것이다.


백수의 여행의 가장 큰 장점과 러시아의 끝없는 길이 만나니 그저 담담하다. 어차피 언젠가는 지나갈 길, 내일이든 모레든 가게 될 길, 그런다고 끝이 있을 것 같지도 않은 여행 이틀째, 그 끝없는 길 앞에 지치지 않기로 한다.


기왕이면 9년동안의 첫번째 직업을 지나, 결혼한 여자의 인생으로 접어든 내가 가야할 끝없는 인생 앞에서도  지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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