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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Jul 29. 2017

내 한계에 대한 생각

백수여행자의 깨달음

나는 지금 여행중이다.


길고 긴 길의 끝을 한시간, 두시간 정도를 지나 하루에 열시간 넘게 쳐다보고 있노라면 오만가지 생각이 든다. 언젠가 고민하다 깊숙히 가라앉혀 놓았던 쓸데없는 고민부터 눈 앞에 펼쳐진 파란하늘에 널부러진 두둥실 구름 같은 행복한 기억들까지 제비뽑기 하듯 정신없이 나타났다 사라진다.


직장 다닐 때  여행다니며 수없이 탔던 비행기 안에서는 돌아가면 어떻게 다시 회사를 다닐까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돌아가면 어떻게 먹고 살아야하는지 질문을 하게 된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나는 어느 직장에 들어갈 것인가. 얼마나 벌 것인가. 그 직장은 내게 어떤 지위를 줄 것인가. 과연 나는 다시  뛰쳐나오지 않을 직장을 구할 수 있을 것인가.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일단 여행에서는 답이 없다. 어차피 떠나온  이 곳에서 걱정이란 쓸데없는 시간낭비이다. 그러나 한가지만은 확실해졌다. 스스로 자유롭게 살 수 있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나는 정규교육 12년과 전문교육 5년, 사회생할 9년을 거치며 사회 속에 가능한 삶을 꿈꾼다는 것이다.


처음 퇴사를 했을 때의 기분이란 뭔가 사회에서 뛰쳐나온 신나는 기분이였다. 나 내멋대로 살아볼꺼야. 당차게 외치며 주머니 가득 쑤셔넣은 퇴직금이 큰 위안이 되었다. 물론 9년 동안 한직장에서 일했고 그 직장을 얻기까지 공부를 5년이나 하며 전문직 여성으로서 당당히 일하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일년동안의 준비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한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그 말도 안되는 일을 어쩌면이라는 단어하나로 부여잡으며 국가가 주는 실업급여를 받으며 재취를 위한 준비를 했던게 여행전의 상황이다.


떠나보면 알게 될꺼야. 라는 책이 있다. 누군가에게 선물받았던 것 같은데, 예쁜 사진들과 적당한 단어와 글들이 여행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을 만나는 것에 대한 즐거움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책의 내용도 좋았지만 제목만큼은 아니다. 떠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으니 일단 떠나보라고 부추기는 묘한 제목. 그래서 떠나면 뭘 알게 될지는 각자의 몫이겠지만 어쨌든 떠나지 않으면 넌 절대 모를꺼라고 말한다. 현실에서 깨닫지 못하는 걸 떠나서 알게 된다고 뭐가 달라질까. 삶은 지금의 현실에 발을 붙여야 하는 거라고 콧웃음 쳤던 때가 있다. 아주 자만심이 하늘을 찔렀던 시기였다. 백수로 떠나본 여행에서 깨닫는다. 떠나야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는 것을.


모든 걱정과 고민들이 내가 살아온 지난 날에 빗댄 추억팔이에서 시작된다. 꼬리를 무는 질문들은 당연하게도 지난 날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여전히 벗어나겠노라 말했던 지난 날의 범주 안에서 갇혀 있다. 돈과 지위, 그리고 남들의 시선에서 벗어나 살아갈 정도의 대담함과 용기가 나에게 있기나 한걸까.


백수에게 주어진 자유란 당장 출근과 퇴근을 반복하며 매달 월급받는 날을 기다리지 않는 것과 통장을 스쳐지나가는 돈에 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평등이란 매달 받는 월급을 미리 비축해 기간 동안만 유지되는 당당함이다. 그 자유와 평등은 십여년을 살아오며 내 뇌리에 박혀있는 한국에서의 평범한 삶을 유지하는 것을 기초로 한다. 그 삶이 하나의 이미지가 되어 나에게 다시 한번 적당한 직장을 찾으라고 말한다. 걱정이 시작된다.


돈 없이 사는 일상을 꿈꾸지 못한다. 뭔가를 소유하지 않고 아무것도 없는 삶을 견뎌내지 못한다. 적당한 재산 위에 몇가지 부유해보이는 취미를 유지할수 없는 일상이 두렵다. 나의 부모는 지금의 나보다 가난했다. 나의 엄마는 직장을 다니지 않았고 아빠는 평교사로 은퇴하셨다. 나의 은퇴 후 삶이 부모보다 초라해질까봐, 태어나지도 않은 내 자녀의 유년기가 나의 유년기보다 풍족하지 못할까봐 두렵다.


지금 당장 여행의 여유가 있다. 그 여유를 잃지 않기 위해 나는 다시 돈을 벌어야 한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데 남들 정도의 교육을 시키고 보통의 일상, 가지고 싶은 장난감을 사주고 싶다면 다시 직장을 다녀야 한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게 아니라면 부모와 남편에게 기대어 살아야 한다. 내가 그리는 미래의 삶이 이럴진대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것은 모순이다. 그럼에도 백수의 삶을 꿈꾸는 이들을 쉽게 현혹된다. 흔한 백수탈출+대박성공신화를 포장한 감동스토리가 진실이라고 믿는다.  다르게 산다는 것이 내가 살아온 사회에서 얼마나 달라질까. 결국은 내가 지쳐서 벗어나고 싶은 굴레안에 맴돌 뿐이다.


여행지에 만난 부자 나라의 가난한 이들, 가난한 나라의 부자들이 있다.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들과 태어나면서 가잘 수 있는 것의 크기가 너무 차이나는 세상이다. 가난한 이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며 진정 자유를 느꼈다는 헛소리를 어디선가 들었던 것 같다. (내가 속세의 때가 많아서 헛소리로 들리나보다.) 모든 경험과 기회는 크든 작든 돈에서부터 시작한다. 누군가의 가난한 일상이 소중해보이는 것은 돌아갈 나의 편안한 일상에서 느껴보지 못했기 때문이고 힘을 가진 자들의 차라리 없는 이들이 부럽다는 거짓말에 한번도 힘을 가져보지 못한 이들만이 속을 뿐이다.


여행의 중반을 넘어서자 장비들을 교체하게 된다. 예상치 못한 지출로 인해 통장의 숫자들이 사라져 간다. 그럼에도 돈을 준대도 안 바꿀 시간들이다. 여행은 많은 것을 보여주고 깊은 생각의 시간을 준다. 때론 매우 가볍게 넘길 일에 눈물이 솟구치지고 하고 엄청난 일 앞에서 웃어버리기도 한다.  어쩌다 여기까지 왔는지 스쳐지나가는 시간들에 앞으로 더해질 시간까지 합해져 많은 것들이 변해갈 것이다.


백수의 여행은 긁어댄 카드를 막아줄 돌아갈 직장이 없기에 더 즐겁고 더 신중해진다. 내가 보는 세상은 내 시야의 좁은 각을 통해서 왜곡되고 편향되어 있음을 알아가고 있다. 시야를 넓힐지 좁은 각을 더 좁혀서 내 멋대로 삐뚤어져 갈지는 시간이 지나가야 알 수 있을 듯하다.


생각만큼 가벼운 마음으로 기대만큼 무거운 생각들을 하고 있다.


때로는 떠나봐야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바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가서 해야 하는 것이다.

하늘에 뭐 그냥 줄하나 그어져도 좋은게 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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