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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NanA Dec 30. 2017

프로젝트 폴더를 만들다.

기획, 검토, 실행 그리고 결과까지도 모두 나를 위함.

일 년 만에 윈도우 피씨를 쓸 일이 최근에 생겼다. 무척 당황스럽게도 파일을 찾으며 매우 버벅거렸다. 직장인 일 때, 가장 좋은 컴퓨터로 몇 개의 프로그램을 동시에 돌리며 간간히 웹서핑도 하고 은행일도 회사 컴퓨터로 했기에 가장 익숙했던 게 윈도우이다. 현재 같이 살고 있는 짝꿍을 만나며 아이폰부터 아이패드를 차곡차곡 쌓아오며 언제부터인가 내 돈 주고 사는 전자제품은 모두 사과였다. 회사 컴퓨터가 있기에 대한민국의 생활에 큰 어려움이 없었는데 백수가 되고 귀찮은 일은 바로 그 윈도우를 사용해야만 하는 일들이었다. 그래도 가끔 남편의 컴퓨터에 깔린 윈도우를 슬쩍 빌렸기에 내가 이렇게 쉽게 윈도우 체계를 잊은 줄 까마득히 몰랐다. 


윈도우도 이 정도인데 캐드는? 스케치업은? 레빗은?

9년 동안 지지고 볶고 했던 프로그램들인 데다 나름 손이 빠른 편이라 자부하기에 항상 후다닥 내가 하고 말지 라는 생각으로 모든 것을 주무르곤 했는데 지금 내 앞에 익숙하던 그 프로그램들이 놓이면 어떨까. 


인생에는 언제나 얻는 것과 잃는 것이 있다. 사람들은 그중에서도 나 같은 방황하는 어른이들은 잃는 것을 두려워한다. 얻는 것은 언제나 사소하고 작은 것만 같고 잃는 것은 거대하고 엄청난 것인 듯해서 잃지 않기 위해 얻는 것을 외면하게 된다. 얻는 것에 집중할수록 행복함과 만족감은 높아진다. 너무나 당연한 이치지만 쉽게 정신을 놓아버리게 된다. 특히나 주변 사람들이 모두 얻어가는 것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을 땐 더욱이 그렇다. 


'딱히 얻어지는 것도 없다면?'


그런 인생을 잘못 살고 있는 거라고 자꾸만 채찍질하고 싶어 질 것이다. 그 불안함이 백수에게 가장 위험한 요소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다시 기어들어가야 하는지를 고민한다. 갖고 싶은 아이는 하늘이 점지해 주신다는데 나 역시도 심드렁하고 쓰고 싶은 이야기는 조심스럽게 꾹꾹 눌러 써내가느라 도무지 진척이 없다. 배움의 길은 끝이 없으나 아직도 배우냐는 이야기가 나를 움츠러들게 만든다. 


'비어 가는 인생의 한 토막을 메꾸며 점점 스스로 강해지고 있다'


한없이 작아지는 (요즘 유행하는 말로는 자존감, 내가 좋아하는 말은 ego) 존재감을 느낄 때마다 조용히 스스로를 다독이는 방법이 늘어가고 있다. 흔들리는 갈대처럼 마구마구 헝클어진 머릿속을 그대로 내려놓고 가만히 무료한 시간을 보낸다. 그 무료한 시간이 주변 사람에겐 놀고 있는 백수의 끝도 없는 방황이겠지만 나에겐 웅크리는 시간을 다잡는 각오의 시간과 앞으로 다가올지 모르는 실패를 감당할 마음의 준비이다. 

세상이 언제나 뿌린 대로 거두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안다. 열심히 하면 안 될 일이 없는데 너희들은 너무 노력을 안 한다는 지난 세대의 조언이 귓가에 웅웅거린다. 그러나 그 조언 잠시 내려놓으라.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겐 노력으로도 되지 않는 일들이 너무 많았다. 노력하는 동안 잃어버린 시간을 늙어서 보상받을 수 있는 시대가 우리에겐 오지 않을 것이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무조건 노력이 아니다. 영리한 노력, 나를 다치지 않게 하는 적당한 도전이다. 그 영리한 노력, 적당한 도전은 덜 실패하기 위해 조심스럽게 그리고 아주 작게 내가 할 수 있는 찾아가는 것이다. 


첫 직장이자 현재 마지막 직장의 합격 통지서를 받고 매우 오타쿠인 친한 친구에게 물어봤다. 

"난 그림도 그리고 싶고, 글도 쓰고 싶고, 엄마도 되고 싶고, 유학도 가고 싶은데 말이야. 이 통지서가 좋긴 한데 내가 하고 싶은 일은 하나도 못하고 그냥 이 직장만 다니면 어떡하지? 진짜 좋고 편안한데 말이야, 나 너무 쉬운 선택을 한 거 아닐까."

"야, 인생 길어. 너 아마 60년은 더 살 건데. 나중에 글도 쓰고 그림도 그리고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지금 당장 못하면 좀 이따 하면 되잖아."

좀 이따 하겠다는 게 9년이 지난 후지만 말이다. 바로 그 지금이 그때의 '나중에'이다. 


작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뭘까. 빙글빙글 돌아가는 선택지는 중학교 시절 문과 이과를 선택하기 전에 난 뭘 잘할까를 고민하는 것처럼 두 가지 중 하나가 아니다. 이렇게도 하고 싶고 저렇게도 하고 싶고. 마치 유치원 다닐 때 자라나서 되고 싶은 꿈을 말하는 노래가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 것처럼 매일이 다르다. 


세상엔 참 작은 일이 많다. 슈퍼에서 물건을 하는 사는 것도, 지금처럼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도, 친구의 부탁으로 명함을 만들고 로고를 만드는 일도 그렇다. 아주 사소하고 작아서 나와 내 주변의 몇 명 말고는 모르는 채 세상이 다아는 성공한 사람들의 일분일초와 비교도 안 되는 티끌 같은 일이다. 그 티끌을 끌어모아 본다. 


사과박스 안에 프로젝트 폴더가 생겼다. 일단 이름이 다른 두 개의 상자에 수많은 파일들이 들어갔다. 하루에도 몇 개의 파일이 생겼다 사라진다. 갈대 같은 마음은 그 안에서도 계속 춤을 추나보다. 


예전에 내가 납품한 도면이 어디선가의 배달사고로 인해 다시 돌아온 적이 있었다. 내 이름이 찍혀 있었던 터라 내게로 연락이 왔다. 그 프로젝트는 지금은 적폐의 한가운데 있는 이를 위한 쇼 중에서도 가장 큰 예산이 들어간 사업이었다. 내 이름이 한없이 부끄러웠던 순간이었다. 건축을 하는 이들은 알 것이다. 이름이 적힌 도면, 그리고 건축을 하는 내가 그려내는 협력업체와의 아름다운 하모니, 고생스럽고 당황스러워도 납품이라는 거대한 산을 넘고 나면 뿌듯함에 자다가도 이불 킥을 하게 되는 묘한 자부심이 있다. 그것을 해냈던 매우 큰 프로젝트였는데 내 이름이 적혀있다고 다시 돌아온 도면을 보며 누가 이걸 또 봤을까 싶어 전전긍긍했다. 한마디로 쪽팔렸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오직 나와 내 지인, 그리고 어쩌다가 마주칠지도 모르는 몇십 명의 사람들을 위해 어설프게나마 지금의 공백을 메꾸고 있다. 티끌 같은 나의 프로젝트가 생겼다. 


아직도 나는 여전히 백수다. 적당히 노력하며 실패하지 않으려고 조바심을 내는 노련한 백수다.

아슬아슬, 달랑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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