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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나나 Oct 14. 2023

편의점 일이 제일 쉽다고요???

#5. 사장님 바뀌었어요?

바람이 심하게 불어 춥고 을씨년스러운 11월의 끝무렵, 그토록 바라고 바라던 편의점 입성이 이루어졌다.

몇 개월을 수시로 들락날락거려 익숙해져 버린 이곳이 이제는 내 것이라니, 나만의 요새라니...

막상 내가 점주가 되었다는 사실에 얼떨떨하기만 했다. 믿기지 않았다. 그동안 몸 고생, 마음 고생했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아저씨를 처음 만났던 날, 내가 좋아 무보수로 일했던 날, 본사에서 승인이 늦게 떨어져 마음 졸였던 날들... 모든 것들이 오늘을 위한 불가피한 일이었다고 여기니 묘한 기분과 함께 내심 뿌듯했다.

몇 년 전 남편과 함께 했던 슈퍼는 전반적으로 남편의 몫이 컸기에 주인 의식이 덜 했었다는 것이 사실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혼자 힘으로 꾸려나가야 하는 만큼 감회가 새로웠다. 그만큼 책임감도 막중했지만.

처음 가게를 차려 보았던 사람들은 알 것이다. 처음 가진 열의는 누구도 막을 수 없고 내 앞길은 순탄 대로를 향해 뻗어나가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는다는 것을. 나 또한 거기에 한치도 벗어나질 않았고.

하루도 쉬지 못한 슈퍼에 비하면 편의점은 소위 말하는 껌이라 생각했다. 일요일 하루만 쉬면 됐지, 이틀이나 쉴 필요가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든 나는 토요일까지 편의점 일에 매달렸다.

원하고 원했던 일이라 하루하루가 너무 재미있고 신이 났다. 아무리 집안을 쓸고 닦아도, 아이들 케어에 힘을 쏟아도, 돈 한 푼 나오지 않고 힘이 나지 않은 생활을 하다 돈을 버니 기운이 불끈불끈 솟아올랐다.

전부터 아저씨의 동생으로 여겨져 손님을 상대하는 어려움은 없었다. 다만 아저씨가 보이질 않자 손님들은 하나같이 묻기 시작했다.

"사장님은 어디 가셨어요?"

"사장님 바뀌었어요?"

"남자 사장님, 정말 좋았는데..."

이 년 정도 편의점을 운영했던 아저씨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손님들 누구 하나 아저씨를 찾지 않은 사람은 없었고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다. 살갑고 호탕한 성격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설마 이 정도 일 줄은 몰랐다. 나는 매번 같은 질문에 일일이 답하느라 귀찮기는 했지만 부러운 마음이 컸다. 나도 나중에는 손님들에게 이런 말들을 들을 수 있을까? 하루에 백 명이 넘는 손님들 중 과연 몇 명이나 나를 기억해 줄까.

새로운 면에서 의지가 불타올랐다.




아저씨가 본사와 맺은 5년 계약을 끝까지 마치지 않았기에 나는 아저씨가 운영했던 매장을 그대로 인수받아 따로 재오픈할 필요가 없었다. 솔직히 기분은 영 나지 않았다. 반짝반짝 빛이 나는 집기, 빳빳이 각져있는 새 상품, 새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곳에서 새로운 마음으로 해야 하는데.

변화가 필요했다. 주인이 바뀌었으니 매장도 바뀌어야 했다. 나는 밖으로 나가 멀찍이 서서 편의점을 바라보았다. 가게는 정면으로 바라보았을 때 직사각형으로 길게 누워있는 형태로 오른쪽은 얼음컵과 냉동식품의 냉장고와 아이스크림 냉장고 두 대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티슈와 화장지 묶음이 올려져 있었다. 또한 왼쪽에는 묶음 생수병이 위태롭게 쌓여 있었고 옆에는 우산꽂이에 키가 맞지 않아 들쑥날쑥한 우산 몇 개가 꽂아 있었다. 전체적으로 어수선하고 지저분했다.

우선 생수병과 우산은 매장 안으로 들이고 그 자리에 행사매대를 두어 매달 할인상품을 진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3단 정도의 진열대면 딱 좋은 사이즈일 것이고 출입구 옆으로 세로형 냉동고를 배치해 냉동식품과 얼음컵을 진열하면 깔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바로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어 문의를 했다. 매니저는 3단 진열대는 신청하면 며칠 안으로 배송이 되겠지만 냉동고는 안된다고 딱 거절했다. 밖에 냉동고를 두면 금방 고장 날 수도 있다며.

아이스크림 냉장고나 얼음컵 냉장고도 밖에 있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냐라는 나의 말에 매니저는 새로 오픈한 매장이 아니어서 아마 승인이 떨어지지 않을 거라며 말을 얼버무렸다.

깔끔한 외장을 위해서, 고객의 편리를 위해서, 매출 활성을 위해서, 두루두루 좋은 점 투성이인데 고작 그런 이유로... 열심히 해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를 하는 점주를 밀어주지는 못할망정.

내가 느낀 실망감은 생각보다 컸다. 그리고 그때 느꼈던 실망감이 좌절감으로 바뀌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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